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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오동도 동백꽃 문병란 시인. 조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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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오동도 동백꽃이 무슨 빛깔일까 붉다 못하여 그 빛깔 마뭇 핏빛인 것을... 누그를 위하여 그는 50년간 피눈물 속 진한 핏빛으로 통곡해야 했는가. 我와 非我의 구분도 없이 敵과 同志의 분별도 없이 남의 총 남의 칼 손에 들고 형제의 가슴에 처철히 뿜었던 민족 분단의 눈 먼 총소리. 옥과 돌이 구분 없이 한꺼번에 마구 타버리고 이념과 사상이 눈 먼 애비가 된 깜깜한 밤 길 잃은 심청이는 애비의 지팡이보다 칼을 쥐고 있었느니라. 하룻밤 폭풍에 찢긴 여수 오동도 동백꽃은 어머니 가슴 쪽빛 바다에 제 그림자 드리우고 갈기갈기 무너진 가슴 잿더미 불바다 위에서 어버이는 땅을 치며 통곡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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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핀 동백꽃 너무 일찍 핀 진달래 그 눈먼 꽃을 위하여 다시 봄바람 불러오고 그날의 심봉사를 위하여 그날의 심청이를 위하여 여기 부르지 못한 노래를 쓴다 태우지 못한 향을 사르고 흘리지 못한 눈물을 태운다 원수고 동지고 한 자리 불러 모아 역사여, 거꾸로 흐르지 못하는 대하의 강물 줄기여, 오늘 이 자리 고개 숙이고 여수 오동도 동백꽃 이름 없는 돌비 앞에 늦어버린 속죄의 조가를 읊조린다 "오오 그대들은 이제 죽음 속에 무죄이니라” 1998.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