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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김씨 학봉 종택(義城 金氏 鶴峰 宗宅) 학봉 종택은 조선 중기 때 문신이었던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1538~1593)과 그 종손들이 살아온 집이다. 김성일은 퇴계 이황의 수제자로 퇴계학맥의 중추인물이다. 1590년 조선통신사 부사로서 일본을 다녀왔고, 1592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초유사, 경상좌.우도 관찰사를 차례로 역임하면서 전란 중 민심을 추스르고 관리들의 기강을 바로 세웠으며, 의병 창의*를 독려하여 진주대첩 승리(1592)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러나 1593년 4월 29일 진주성에서 계속 항전 중에 유행성 역병으로 순국했다. 이후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문충(文忠)의 시호를 받았다. 김성일은 1538년 원래 의성김씨 종가가 있는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나 1555년 결혼하여 임동면 납실마을에 분가하엿다가 1582년 7월 처가가 있던 이곳 금계(金溪, 검제마을)로 집을 지어 이거하였다. 학봉 종택은 원래 지금의 자리에 있었으나, 1762년 150m 정도 떨어진 소복산(召福山) 자락으로 옮겼다가, 1964년 원래 자리로 다시 안채만 옮기고 사랑채는 남겨두어 소계서당(邵溪書堂)으로 사용하였다. 학봉 종택은 안채와 사랑채의 정침***, 사당(廟宇), 별채인 풍뢰헌(風雷軒), 유물관인 운장각(雲章閣), 학봉기념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7년 지은 운장각에는 김성일의 유품과 고서 및 고문서 등 500여종을 소장하고 있고, 20009년 지은 학봉기념관은 상설전시관이다. * 창의(倡義): 국난을 당하였을 때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킴 / ** 추증(追贈):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높여 주던 일 / *** 정침(正寢): 주택의 중심이 되는 집 또는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