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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 용궁공립보통학교 학생 정진완(풍양면 우당동) 졸업생 김칠종(읍부리) 학생 이구성(무이리)은 평소 애국사상이 강하였으며 구국항쟁인 3.1운동이 전국에 퍼지자 항상 일본의 조선강점에 분개하여 항일독립투쟁의 기회를 노리든 중 서기 1919년 4월 12일 용궁장날 오전 9시를 기하여 거민적 독립만세운동을 주동 공모하고 정진완은 학생들을, 김칠종은 읍내주민을, 이구성은 읍외주민을 각각 규합 동원의 책임을 분담하여 거사에 참여토록 하는 한편, 학교기숙사에서는 동료학생 김국경(풍양면 화풍동) 임우경(읍부리) 정규원(지보면 매창리) 등과 태극기를 비밀리에 제작하였음. 이때 무이리 이만성 외 2명도 그 뜻을 같이하여 이들과 함께 거사를 추진 중 불행하게도 이 사실이 당시 일본인 교장에게 발각되어 거사 당일 새벽에 예천 주둔 일본군 헌병분대와 수비대에 의하여 가담자 수십명이 검거되어 잔학한 고초를 당하였으며 그중 정진완은 징역 1년 6월, 이구성, 김칠종은 징역 1년 2월 김국경, 임우경, 정규원은 징역 10월을, 권오정(향석리) 기성용(읍부리) 무이리 이순성, 이병래, 이준형 등은 태형 90을 선고 받았음 광복군 활동 권혁무 서기 1924년 6월 15일 향석리 태생. 1945년 2월 서기 1944년 8월 10일 일본군에 강징되어 중국 호북성 신점진에서 탈출하여 중국군 유격대를 거쳐 1945년 2월 15일 광복군 제9전구에 배속되어 일본군 수송대를 습격하고 강징된 한국 청년들의 귀순 선무 공작을 전개하는 등 조국 광복에 공헌하였음. 서기 1988년 6월 일 만파루복원추진위원회에서 건립, 최오영이 공적을 약기하고 이기영은 글씨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