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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곡안리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 우리 마을 입향선조는 성주이씨 중시조 농서군공(이장경)의 12세손으로 2세인 정당문학 대제학 문열공(이조년)의 후손이며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순신)의 휘하에서 종군 승전의 공으로 병조좌랑에 책훈되고 이후 과거(大科)에 급제하여 성균관박사 사헌부 감찰 호조좌랑을 거쳐 통훈대부에 승차하여 광해군(1608~1623)때 고성현감으로서 청렴한 관리로 계셨던 해사공(이일장)이며 아들인 통덕랑 모와공(이암문)이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이곳에 이주하여 삶의 터전을 일구고 마을을 형성한 후 400여년의 성상동안 대대로 뿌리내려 살고 있는 우리 마을까지 6.25동란 당시 밀고 내려온 인민군과 진동방어선을 구축하고 대치하던 미군 사이의 상황에서 인민군에 의한 미군 희생자가 다수 발생하자 미군들은 교두보 확보를 위해 마을에 폭격을 가하여 가옥이 소실되고 피해자가 나오자 마을주민 150여명은 해사정으로 일부 주민들은 산이나 개울로 피난 나와 대피 하던 중 미군과 통역관이 이곳 해사정을 찾아와 곧 작전이 있을 예정이니 다른 곳으로 떠나줄 것을 요구하여 1950년 8월 11일(음력 6월 28일) 아침식사 후 피난준비가 한창일 때 갑자기 해시정 앞 대밭에서 총소리가 나더니 미군들의 집중사격이 오후까지 계속되어 86명(사망자 73명, 부상자 13명)의 사상자가 생기는 참혹한 사건이 발행하였으니 이에 남은 우리 후손들이 전쟁 당시 위기상황의 생생한 목격담과 미 지상군 관련 희생사건(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사건번호 다-6199호. 2010.06.30)을 근거로 마음을 모아 후대에 진실의 역사를 남기고 억울하게 희생당하신 원혼들을 위로하기위하여 당시 비극의 현장이었던 바로 이곳에 위령비를 세워 천년의 세월에도 무뎌지지 않는 단단한 돌에 그 뜻을 새겨 보전하고자 한다. 2022년 11월 8일 곡안성주이씨 해사공종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