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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영묵은 1899년 11월 8일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면 기탄리 495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11월에 3.1운동사건으로 그는 맏형인 림신묵장로와 함께 체포되어 심한 옥고를 당하였다. 출옥 후에도 예비검속을 수차 당하였다. 1923년 평양 숭신 남성경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부터 안주노회 자산교회에서 조사로 시무하면서 1928년에 그는 북장로교 선교사 필립보목사와 함께 평남 순천군 후면 남포리에 좌각원을 설립하여 지체부자유자를 돌보는 사업을 20여 년간 봉사하였다. 1939년 4월에 안주교회 순천시찰회가 모여 있을 때 회장으로서 신사참배반대결의를 하였다가 즉석에서 김용복, 전희만, 임인길장로와 함께 포박되어 투옥 순천경찰서에 무참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항거하던 중 빈사지경에 이르러 출옥되었다. 뇌에 심한 손상을 입고 고통을 당하며 말버릇처럼 옥중에 순교하지 못하고 남은 것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1950년 6월 25일 광복이 되었으나 38도선 이북은 공산정권이 수립되었고 교회에 대한 핍박이 날로 심하여졌다. 기독교도연맹에 가입할 것을 강요당하였으나 그는 기독교도연맹은 공산당의 어용기관이라고 완강히 반대하였다. 주위에서 신변이 위험하니 남한으로 월남하라고 권유를 받을 때 마다. 그는 “내가 어떻게 교회와 양떼를 버리고 나만 살겠다고 남한으로 도망갈 수 있겠소”하며 순교를 이미 각오하고 설교에 심혈을 다하였다. 1950년 1월 30일 오후 서재에서 기도하다 공산당관원에 납치되어 평양으로 끌려갔다가 동년 10월 19일 평양이 함락되기 수일 전에 평양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반공애국지사들과 교역자(평신도)들 1000여명이 평양 근교 야산에서 공산군에 의해 집단총살당하여 5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출처 : 총회순교자기념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