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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화 순교자는 1915년 1월 9일 평북 의주군 피현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피현교회에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1937년 선천의 명문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를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평양사범 연수과를 수료한 후, 의주와 신의주에서 초등과 중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광복 이듬해 1946년 3월에 가족과 월남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였다고 하셨습니다. 월남 후, 신성중학교 시절의 은사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학장인 장리욱(張利郁) 박사의 추천으로 서울사대부속중학교(당시6년제)의 수학 교사로 부임하여 1950년 6월 25일까지 4년간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올바른 국가관에 입각한 인성교육 (2)기독교 신앙교육에 대한 철저한 봉사와 실천이었습니다. 교무처장의 직책을 맡았을 때,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좌편향 학생들을 징계하고 퇴학을 시키는 과정에서 집단 테러도 당했습니다. 6·25 사변으로 수도 서울이 점령되자 좌익계 제자들의 표적이 되었고, 인민재판 끝에 그들에게 총살형을 당했으며, 순교 직전 5분간의 시간을 얻어 주님께 기도드리고,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다 순교하셨습니다. 순교 장소는 근무하던 학교 뒷산으로, 임금들이 하늘에 기우제(祈雨祭)를 드리던 동대문구 제기동의 선농단(先農壇), 청량대(淸凉臺)입니다. 출처 : 영락교회 웹진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