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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0년은 채 못 되지만 햇수로는 10년이다. 이토록 긴 세월동안 1,000회에 달하는 1인 시위를 이어오면서 겪었던 애환을 어찌 말로써 표현할 수 있으랴? 눈보라 북풍한설에 온몸이 얼음장처럼 굳어버렸고 폭우에 옷은 흠뻑 졌기 다반사였다. 그것은 눈물 없이 기록할 수 없는 기막힌 사연으로 가득 찬 대장정이었다.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에서 제주4.3항쟁전야제까지, 5,18민주공원 앞과 노무현대통령사저 봉하 마을 앞을 거쳐 청와대 분수공원 앞까지, 마로니에 공원과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또 광화문 촛불항쟁현장에서 1인 시위의 불꽃은 멈추지 않고 타올랐다. 대구에서 또 부산에서 그리고 광주에서 유족들이 동시다발적으로 1인 시위 투쟁을 전개했다. 그동안 1인시위에 참여했던 최봉규, 김규철, 정광채, 이지영, 박선규, 변동윤, 임윤옥 유족님들께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으며, 또한 참여해주셨던 많은 분들이 자금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유족들의 의사에 반하는 진실화해기본법 개정안이 여야의 야합으로 엉터리법안이 통과되었고, 제2기 진화회도 출범했다. 예견했던 그대로 엉터리 법안 때문에 진화위는 민간인 학살에 관한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한국전쟁이 발생한 후 강산이 7번이나 변했다. 이제는 끝장을 보아야한다. 부모가 원통하게 죽고 간난신고를 견디며 죽지 못해 살아온 자식들마저 낙엽처럼 떨어져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죽어도 우리 후손들이 울울창창 번성하여 반헌법적, 반인륜적, 반인권적 집단학살과 억울한 죽임에 대한 국가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또 다시 광야에 나서기로 결단하고 유족회는 잠시 중단했던 1인 시위를 통한 입법촉구투쟁을 재개했고, 그 결과 21대 국회에서 몇몇 개정안이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되었거나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