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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1906년 일본의 침략을 내치기 위해 진성의진(眞城義陣)이 일본군과 싸웠던 오누이지 전투지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의병은 국가와 민족이 위급할 때마다 일어났다. 이들은 충의정신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연히 일어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싸웠다. 특히 한말 의병항쟁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국가의 주권을 지키고, 민족의 위신을 되찾는 것이 그 목표였다. 그래서 민족운동이란 의미를 가지며, 민족운동의 원류로 불린다. 진성의진은 1905년 을사조약 강제 체결로 전국에서 반대투쟁이 일어났을때, 이현규, 김대규, 신형일, 조완이 등이 청송 주왕산 대전사에서 결의하고,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그 해 12월, 500명이 울진 불영사에 모여 청송, 영양,진보,안동 4군의 의병대장으로 이현규를 추대하자, 이현규는 1906년 2월, 영양 입암면 교리에서 중군장 류시연, 도포장 김대규, 소모장 신형일, 도포수 권대성, 집사 조완이로 의진을 편성하였다. 전투태세를 가준 진성의진은 이후 청송, 영양, 진보, 영해 등지에서 일본군과 여려 차례 싸워 큰 성과를 올렸다. 특히 1906년 4월, 일본군 무등(武藤)이 이끄는 경상도,강원도의 의병탄압 부대와 진보장수령에서 전투를 펼쳤으며, 이곳 오누이지에서는 치열한 전투 끝에 무등 등 10여명의 일본군을 사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크게 승리한 진성의진은 진보군수 이중철과 청송군수 안기준으로부터 격려를 받았지만, 이현규, 김대규가 총상, 조완이가 순국하는 피해도 입었다. 1945년 8월 나라를 되찾자, 군민들은 여기 오누이지에 세워진 무등 순직비를 부숴버리고, 진성의진 우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1964년 내산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리 오누이못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만들어지고, 이를 기억하는 이도 대부분 떠났다. 치욕적인 삶보다는 의로운 죽음을 스스로 택한 진성의진 그 고귀한 희생은 조국광복의 바탕이 되었으니, 이 비를 세워 의로운 역사를 찾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이 비는 2017년 12월 도로변에 처음 건립된 것을 2022년 6월 오누이지 주변정비사업으로 이곳에 이건함. 2022.6 청송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