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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화 그리고 사랑 청년 상화, 사랑을 넘어 사랑을 쓰다 1920년대, 한국문학에서 '청춘' 혹은 '청년'이란 말은 개인의 감각과 감정을 공식화하는 가장 뜨거운 단어였다. 당대 대중들은 청년이란 칭호를 통해 기존의 형식과 영역을 벗어난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을 만나고 싶었다. 말 그대로 식민지 시대를 미끄러지듯이 탈주하는 새로운 존재, 청년의 탄생을 모두 염원하고 있었다. 이상화는 시대를 청년으로 살았다. 식민지는 청년에게 말세의 절망과 비애, 자조와 데카당의 정조로 다가왔다. 이상화의 초기 시는 그 정조의 일단이다. 3.1운동 이후 절마억 분위기와 개인의 우울은 퇴폐와 몽환적 이미지로 형상화되곤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견한 관능미는 청년 이상화 문학의 또 다른 출발이다. 시 <나의 침실로>가 열애의 흔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는 개인의 열정과 시대가 결합하는 상상의 지점에서 형성된다. 1923년 시인이 일본 관동에서 목격한 학살과 죽음은 스스로를 해체시켜버릴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 파국을 벗어나는 길 위에서 시인은 사랑을 만난다. 그리고 스스로를 치유한다. 청년 이상화에게 사랑은 또 다른 시대의 절규이면서 치유였던 것이다. <나의 침실로>는 바로 그 결과였다. 흥미로운 것은 시 <나의 침실로>에 등장하는 '앞산'의 이미지이며 '목거지'와 같은 대구 말이다. 그것은 시인의 사랑과 열정 속에 대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청년 이상화는 그의 사랑과 시 속에서 대구의 이미지를 본능적으로 육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 박승화(영남대 국어국문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