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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주권(主權)을 잃은 국가는 주인(主人)없는 빈집과 같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호를 허당(虛堂) 빈집이라 짓고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함 일제(日帝)에 의한 갑종요시찰인(甲種要視察人)으로 지목되어 수십차례의 구금 감시압박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함 의열단(義烈團) 경남 총책 신간회(新幹會) 경남 책임자를 맡았으며 원동무영(元動貿易)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고 민족 언론 창달을 위한 동아일보(東亞日報) 창립에 참여하였음 또한 무산 가정의 자녀교육을 위한 마산노동야학교(馬山勞動夜學校)를 개교하였음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루었고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인 창씨개명(創氏改名)에 반대하는 등 사십여 연간 해방되는 날까지 독립운동에 매진하였음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建國準備委員會)에 참여하였으며 고위직을 제안 받았으나 "분단된 조국에서 어느 한 쪽의 직(職)을 수락한다는 것은 분단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여 응하지 아니하고 평범한 일반인으로 돌아감 생가(生家)인 구(舊) 마산시 중성동 64-2에서 1954년 6월 9일 영면(永眠)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