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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4월 25일 광주 어등산에서 일제특설순사대와 3시간여의 혈전 끝에 김태원의병장을 비롯한 의병 23명이 순국하였다. 그때 나이 38세였다. 일제는 한 달전 체포된 동생 율도 이튿날 형의 시신을 확인시킨 후 처형하였다. 부인 낙안 오씨도 어린 남매를 키운 후, 나라가 망했으니 살아남을 이유가 없다며 1919년 3월 자결하였다. 이 어찌 만고에 빛날 충절이 아니겠는가. 후대 역사학자들은 죽봉. 청봉 일가를 호남 제일의 의로운 가문이라 평가하였다. 정부는 김태원.김율 형제 의병장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1951년 전쟁 중임에도 충혼비를 세웠고 1993년 재건립하였다. 하지만 항일독립전쟁에 앞장선 앞장선 의병장의 비석은 일제 잔재였으며 비문에 오류가 많았다. 이에 김태원 의병장 순국 114주년을 맞아 의로운 넋을 기리고 자주 정신을 드높이고자 함평군이 새로운 비석을 다시 세운다. 2022년 6월 일 전 빛고을역사교사 모임 회장 신봉수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