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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창영 민족작가연합 사무처장/시인의 추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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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비가 내린다 지창영 강화도에는 아직도 비가 내립니다 구름이 걷혀도 비가 내리고 해가 떠도 비가 내리고 가을빛 눈부신 창공에도 비가 내립니다 누가 선을 그었는지, 언제부터였는지 한 마을에서도 너와 내가 적이 되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서로 손가락질하면 그것이 총알 되어 생사를 갈랐습니다 서류에 표시된 분류 등급 하나로 그 밖의 모든 것은 무시된 채 그 많은 착한 사람들이 위험한 적이요, 죽여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강화도, 1866년 병인년 프랑스 군대에 맞서 1871년 신미년 미국의 함대에 맞서 1875년 운요호를 앞세운 일본의 공격에 맞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던 호국의 섬, 결전의 섬 식민지에서 해방되던 날 소,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면서 새 세상을 그려 보았는데 그것은 아주 잠시만의 꿈이었을 뿐 강화도는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적이 물러간 자리에서 어찌된 일인지 우리끼리 처참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특공대, 방첩대, 치안대의 이름으로 집안을 뒤져 가장을 끌어가고 마을을 들쑤셔 청년을 잡아가고 노인, 어린아이까지 끌어가더니 엄마와 젖먹이도 함께 처형했습니다 민간인을 보호하는 대신 적으로 여겼던 군대, 경찰은 어느 나라 기관인지 정복자처럼, 점령군처럼 행세했습니다 8240부대, 타이거 여단은 미 극동군사령부 소속 결국 외세였습니다 이제는 말해야겠습니다 그것은 학살이었다고 배후에는 국가가 있었다고 그리고 그 뒤에는 외세가 있었다고 강화도,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평화의 땅을 이토록 붉게 물들인 그것은 일제가 물러간 자리를 차지하고 이 땅을 갈라 놓은 외세의 침략놀이였다고 그들의 농간에 눈멀고 귀먹어 이웃도 몰라보고 피붙이도 경계했던 탓이라고 기억하겠습니다 미친 바람에 휘말려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 다시는 없도록 하겠습니다 남의 나라 감언이설에 속아 나라를 내준 역사 그들의 꼬임에 넘어가 나라를 분단시킨 아픔 타국의 이익을 위하여 동족을 죽인 참상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하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정신으로 평화를 옹호하는 전통으로 누구도 깨뜨리지 못할 자주의 요새를 만들겠습니다 비가 그치고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질 그날 평화의 날, 통일의 날 고귀한 영혼들이시여, 우리와 함께 그날을 만들어 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