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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2월28일 일요일 7 (제170호) 기 획 일찍 아버지를 잃어 효도를 다하지 못함으로써 한(恨)을 삼 고모친(母親)에게정성을다하여비록가난하되조석으로공 양에는 빠진 것이 없고 모친께서 중풍으로 10여년을 병석에 계셨는데공(公)은잠깐이라도곁을떠나지않고음식은반드 시 몸소 받들며 약(藥)도 반드시 몸소 다리고 기동할 때에는 반드시 몸소 부축하며 대소변의 기물도 또한 다른 사람에게 부탁치 않고 자리에 누었을 때도 없으며,옷을 입으면 띄를 풀 지 못한 때가 혹 10일 또는 한 달이 되었다. 병환이 위급함에 상분(嘗糞)하여그 길흉(吉凶)을 증험하고 임종할 때는 단지 하여 명한의 만분지일이라도 연장하기를 바랬으며, 상을 당 하여는 통곡하다가 기절하여 거의 살아나지 못할 사람 같았 고,장사한 뒤에는 여묘(廬墓)하며 조석으로 성묘하고 3년 안 에는 상복(최질)을 벗을 때가 없으며, 채소와 과일도 먹지 않 고 곡(哭)한 소리가 끊어지지 않했으며, 제복(除服·脫服)한 뒤에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부모에 대한 말을 들으면 문득 문물을흘리니사람들이또한감읍하였다. 임진왜란에는 운량관(運糧官)이 되어 공(功)을 세우므로 참봉을 제수 받았으되 부모가 계시지 않은 것으로써 응소(應 召)치 않았다. 이에 공의 생전에 여러 고을 유림들이 그 행의 를 가려내 관(官) 천문(薦聞)하였고, 돌아가신 뒤에는 인조 계유년(1633년) 본 고을 진사 이연 등이 영문(營門)에 글을 올려 조정(朝廷)으로 상계하여 정포(旌褒)토록 하기를 청하 였으며 무인년(1638년)에는 도사 박종부가 그 효행을 순백 (巡伯) 구봉서에게 자상히 말하고 순백은 그 사실을 계초(啓 草) 가운데 대상 기록하였으므로 비로소 복호(復戶, 세를 면 제한 것)의 명(命)이 있었다. 신사년(1641년) 본 고을사람인 영춘현감 박영철(밀성인 좌상공 박춘의 후예)의 만언소 가운 데 공의 행의를 극진히 찬양하였고, 계미년(1644) 우산 안방 준이참봉박충염과진사안처공등과더불어봉소(封疏)하기 로 발의하고 9월 초7일에 도내 유림이 모여 봉소상달(封疏上 達)하였다.그때예조판서이경중과대제학이식,도승지김육 과 이조참의 이덕수, 병조참의 정홍명 등의 상의하고 다시 품 계(稟啓)하므로 윤허하시고 정려(旌閭)하라는 명이 내려졌 다. 후손들의 그의 호(신재븡愼齋)를 따 신재공파고 세계를 잇 고 있다. 직장공의 사남 인경(仁卿)의 호는 치재(恥齋)이다. 천성이 지극한 효성을 가져 모친상에 단지하였고, 여묘(廬 墓)하여 형 신재공과 더불어 세칭 쌍효(雙孝)라 하였다. 임진 왜란에 운량관으로 공을 세워 군자감 참봉에 제수되어 절의 록과 금산대첩비에 기록되어 전해진다. 후손들은 그의 호를 따치재공파라한다. 보옹공(휘 이홍)의 차남 유철(維哲) 호는 청암(靑岩)으로 증손 지무(之茂)가 통덕랑(通德郞)에 가자되어 통덕랑공파 라한다. 보옹공의 삼남 유년(維年)은 10代 후에 후사가 없고, 보옹 공의 사남 유성(維成)의 호는 천곡(泉谷)으로 천곡거사라 한 다. 진사에 올라 학문이 뛰어나고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돋보였다.아들 셋을 두었는데 장남은 원경(元卿)으로 호는 현암(玄岩)으로 창평 학구당안을 기안하는데 기여하였 으며,호현암을따현암공파로세계를이룬다. 차남은 형경(亨卿)인데 호가 만헌(晩軒)으로 만헌공파, 삼 남은 정경(貞卿)인데 호는 구봉(九峯)으로 구봉처사 불리며 학문이뛰어났으며,후손들은구봉공파라불린다. 황산공(휘 수지)는 광주광역시 남구 이장동(황산마을)에 서 태어난 동정공 휘 선(鮮)의 차남으로 광주 전남지역의 대 성으로 번성한 동정공파의 세거지인 광주 남구 지역을 기반 으로 성장했다.이어 보옹공(휘이관)께서담양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선향(先鄕)으로 돌아가 묘소가 나주 남평읍 정광리 선영에 계신다. 그리고 후손들은 광주 남구지역에 사 재한다. 월영당공(휘 이홍)은 백형 보옹공이 모친을 모시고 창평 유 곡의 새터로 이거하게 하였다. 이는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함 으로극진한효성에의한것이다. 이후후손들은현담양군창평면유곡리절산마을을중심으 로 춘천 낙안,담양 남면 무동,담양 수북,광주 용주동 등에 집 성촌을이루고있다. △절산사 보옹(휘 이관) 월영(휘 이홍) 두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유림들의 공의로 숙종35년(1709, 己丑) 10월 15일 태학 관과 예조의 주선으로 사우를 건립하려는데,그 후 정사년(17 27년)3월 19일 창평 상유곡에 세워 월영 선생을 봉향하고,그 해 가을 8월 13일 보옹 선생을 연향(連享)하였으며, 대사헌 퇴어(退漁) 김진상(金鎭商)이 절산사의 액호(額號)를 썼다. 사우를 창건한 당시 책임한 사람은 본 고을 현령(창평현령) 윤천화, 생원 정근, 유학 고응린이다. 그러나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어 그 자리에 1963년 유허비를 세워 지 금에이른다. -절산사유허비문 이 사우는 박보옹과 월영당 형제 두 선생을 봉안하고 향사하는 곳으 로 숙종 기축에 건립 한바인데 대 원군의 대동철원 때에 불행히 면 (免)하지 못하고 그뒤 유허만 남아 있는 보는 이로 하여금 차탄(嗟歎) 케 한지가 거의 백년이 되었다. 향 중 사 림 들 의 경 앙 (景 仰 )하 는 마 음 과 자손들의 추모하는 정성이야 어 떻 다 고 말 할 수 있 으 랴 다 행 히 사 람들의 발의하여 유허비를 건립하기로 하고 나에게 명(銘)하 기를 청(請)한다. 오직 이 비(碑)에는 마땅히 진나라 태사와 같은 이의 글을 구(求)하고 유명한 전서(篆書)로 각(刻)하여 추애(秋崖) 단계(丹桂)의 위에 세워야 할 것인즉 내가 그 중 임을 감당할 수 없다고 누차 사양하였으나 듣지 아니함으로 삼가살펴보니보옹휘이관은시례(詩禮)에밝은가문에태어 나시고 겸하여 초월하신 재주가 있어 효우(孝友)와 문학으로 일찍 사림(士林) 중망(重望)을 받았다. 성화(成化) 계묘(癸 卯,1483년)에 진사하시고 임자(壬子, 1492년)에 문과로 벼슬 이 장령(掌令), 전한(典翰)을 거쳐 세자시강원 보덕(輔德, 왕 세자를 가르치는 일)에 이르시고 정암 조선생(조광조)으로 더불어 정치에 협찬(協贊)하시었는데 기묘사화가 일어남에 누차 간쟁(諫爭)하시다가 말을 써주지 아니함을 알고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부모를 봉양하며 도학(道學)을 강구(講究)하 고 후학을 많이 양성하시었다. 월당당 휘 이홍은 일찍 조선생 의문하에배우시고정덕(正德)정묘년(丁卯,1507년)에사마 (司馬)하신후 경학(經學)에 밝으심으로써 간신(奸臣)들의 중상(中傷)을 입어 벼슬을 삭탈(削奪) 당하시고 그후 기묘년 봄 현량과(賢良科) 때에 정암 조선생이 용심순근(用心醇謹, 마음쓰는 것이 순직함) 효제숙저(孝悌夙著, 효도와 우애를 잘함)여덟자로 천목(薦目,사람을 천거하는 조건)을 삼아 천 거하였음에도 나아가지 아니하시고 그해 겨울에 사화(士禍) 가 일어남에 당고(黨錮,어떤 일정한 무리에 딸린 사람들을 잡 아 가두고 벌하는 일)의 적(籍, 정암과 한 당이라는 것)이 선 생에게 미치니 선생이 이에 세상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하시 고 어머니(母夫人)를 모시고 창평으로 돌아와 자손들에게 안 전함을 전하여 주시니 옛적 군자(君子)의 출세(出世)하고 처 세(處世)하는 정도(正道)와 합치(合致)가 된다.선생 같은 이 는 참으로 천명(天命)을 아시는 군자(君子)이신데, 도암(陶 庵)이재(李縡,의정부좌참찬)선생이묘갈명쓰며가로대당 고의적가운데정암으로머리를삼았으니백세(百世)가되어 도그이름은더욱빛이날것이라하였으니아나같은소자(小 子)는 수백년 뒤에 태어나 두 선생의 충효와 덕의(德義)가 높 으심을 들은 지가 오래인지라 이 비문에 다 천양(闡揚, 드러 내어 밝혀서 널리 퍼지게 함)할 수 없고 다만 역사와 그전 선 생들의 글을 증빙하여 명하노니 가로대 높고 높은 덕은 제가 (諸家)하고 치국(治國)함에 다 한가이이다. 가정에서는 효우 (孝友)하고 국가에서는 충직할 뿐이다. 밝고 어짐으로써 내 몸을 보호함은 시전(詩傳)에 그 사람을 칭찬(稱讚)하고 기미 (幾微)를 알고 숨은 것은 주역(周易)에 그 정신을 찬양하였 다. 이 사우에 형제 봉안되니 그 위의(威儀, 위엄이 있고 엄숙 한 태도나 몸가짐) 가 늠름하다. 정암 문하에서 큰 덕(德)이 있고, 도(道)가 형통함에 내 몸과 마음만 가다듬는다. 모친을 모시고 어디로 가셨는고? 창평 유곡이다. 향중 사림들이 그 덕을 숭모하여 사우를 건립하였다. 그 뒤 훼철됨에 가을 풀만 황량(荒凉)하다.이제 유허에 비가 서게 되니 향사(享祀)함이 나 거의 다름없다. 이 뒤 백세(百世)라도 경앙(景仰) 할 것이 니 산 과 같 이 높 고 물 과 같 이 길 다 . 계묘(癸卯. 1963년)4월하완(下 浣,하순)행주인기노장삼가짓고서흥인김규태삼가씀. △추유재(追惟齋 △월영정과신도비 월영정과 월영당공 신도비는 유곡마을 입구 도로변에 있으 며, 신도비는 197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옥천인 조 경한(趙擎韓)이 짓고 국회의원 파평인 윤길중이 전서(篆書) 를 썼 다 . 월영정은 월영당 공(휘 이홍)을 추모 하기 위하여 담양군 의 지원과 후손들의 영정으로 이루어진 마을정자이다. 서 원 ( 절 산 사 ) 이 훼철된지 150여년이 지난 지금에 신도비 옆에 선생을 기리는 정지를 건립하자는 종중의 결에 따라 담 양군 지원금 3천만 원과 종재 1천만원, 자손들의 성금1천8 백5십만원으로 2019년 3월 22일 상량을, 현판과 준공은 5월 2 4일에가졌다. 뱚▶6면에서이어짐 뱚집성촌 뱚 △주요유적 월영당공파 재숙소이다. 절산사가 훼철됨에 따라 유허지 앞에 1963년 건 립되었다.-전남담양군창평면유곡리 보옹공의 셋째 유성(維成)의 셋째 구봉처사 정 경(貞卿)의 차자 형(炯)의 현손 입재(立齋, 휘 찬)공의 재사(齋舍)이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 유곡리 九容(구용)이란 말은 일상생활에서 몸과 마음 가짐 을 어떻게 하는 가를 이르는 지표요, 九思(구사)는 학 문을 진보 시키고 지혜를 더하는 방법을 가르키는 말 로, 1577년 율곡선생이 청소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쓴 擊蒙 要訣(격몽요결)의 제 3장 持身(지신) 편에 나오 는말이다. 자기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데 九容(구용)보다 더 중 요한 것이 없고, 九思(구사)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 하였다.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기 위해 알아야 할 내용 을 담고 있어서 요즘 젊은 사람들도 배워야 할 내용이 라 할 수 있 다 . 우리 몸에 대한 태도를 바르게 하여 행하라는 가르침 이다. 1. 足容重(족용중) -발을 무겁게 하라. 처신을 가볍게 하지말라. 발을 움직임에 있어서 무겁게 하고,가볍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는 걸음걸이를 침착하게 하고 경솔 하게 발 걸음을 하지 말라는 것이요, 장자 앞에서 걸을 때는이에구애받지않는다고하였다. 2.手容恭(수용공)-손을공손하게하라 손을 움직일 때는 공손하여야 하고, 손 놀림을 게을 리 하지 말며, 일이 없을 때에는 손을 모으고 망동하지 말라 하였다. 손을 씀에 남에게 헤를 주지 말고, 德(덕) 을 끼치는데 사용하여야 한다는 의미이고, 일을 할 때 아끼지 말 일이다. ※손이 두 개인 까닭은 한 손으론 자 신을 돕고 다른 한 손으론 남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말 도수용공에맞는말이다. 3.目容端(목용단)-눈을단정하게두어라 눈 거동을 단정히 하고, 눈 동자를 안정시켜 마땅히 바르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흘껴 보거나 째려보지 말라고 하였다. 맑은 눈망울로 상대를 보고, 따뜻한 마 음의 눈으로 전하라는 의미 일 것이다. 눈은 세상을 꿰 뚫어보는힘이있다. 4.口容止(구용지)-입을함부로놀리지말라 입 놀림을 조심하고, 말을 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항시 움직이지 말라는 의미이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이나,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삼가라는 의미이다. 입은 무거워야 한다는 말은 말을 적개 하라는 충고이리 라. 5.聲容靜(성용정)-말을차분하고조용히하라 말 소리는 조용하고, 마땅히 심기를 잘 조절하여 다 듬어서 해야 하며, 구역질 하거나 트림을 하는 소리 까 지 상대에게 들리지 않도록 한다는 가르침이다.요란한 말,큰소리친사람치고제대로하는일이없다. 6.頭容直(두용직)-머리를곧게세워라 머리의 거동은 곧게하며, 항상 바르게하고, 몸도 곧 게하며, 기울려 틀거나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 다는의미이다. 7.氣容肅(기용숙)-숨소리를고르게하라 기운의 거동은 엄숙하고, 숨을 고르게 쉬며, 기침 소 리도들리지않게하라는의미이다. 8.立容德(입용덕)-서있을때품위있게해라 서 있는 모습은 덕이 있게 하여야 하고,똑 바로 서고, 앉아 있을 때도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며, 기상있고 씩 씩하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서있을 자리와 물러설자리를분명히아는사람이현명한사람이다. 9.色容壯(색용장)-얼굴빛을밝고씩씩하게하라 얼굴 빛을 단정히 하고, 온화하고 거만하게 보이지 말도록 하며, 태만의 면색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며, 환한 웃음 띤 얼굴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의미이 다. ※링컨대통령이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라 는 말 도 있듯이 - - 학문을 닦고 지혜를 더하기 위한 지표로서 생각을 함 에있어서신중을기하여하라는가르침이다. 1. 視思明(시사명) 사 물 이 나 현 상 을 볼 때 나 인 식 을 할 때는,명확히 보아야 할 것을 생각하여,판별하여 알 아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2. 聽思聰(청사총) 남의 말 이나 세상사를 들을 적에는 총명하게 들을 것을 생각하 여야 한다. 경청을 해야 함을 가르치는 말이다. 3.色思 溫(색사온) 대인관계에 있어서 속에 들어 있는 것을 표 현 할 때는, 온화하게 표현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 는 가르침이다. 4. 貌思恭(모사공) 용모는 단정히 하여 야 하며, 행함은 공손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함을 가 르치는 말이다. 5.言思忠(언사충) 말 을 할 때 는 진 실 하 고, 실천 가능한 말만 하겠다는 것과 충성된 말인지를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라는 가르침이다. 6. 事思敬(사 사경)일을 할 때에는 신중하고, 성실하게 완수를 하겠 다는 생각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7. 疑思問(의사문)의문이나 의심이 나는 일이 있을 때, 언 제든지 문의를 할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 는 말이다. 8. 念思亂(염사란) 화나 분한 일이 있을 때, 더 큰 어려움이 있거나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나 않을까 를 생각하여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9.見得思義(견득사 의) 이득이 생기는 일이 있을 때, 나에게 오는 得(득)이 의로운 것인가 또는 옳지 않는 지를 생각 하여야 한다 는가르침이다. 九容(구용) 과九思(구사) 뱚▲九容(구용) 뱚▲九思(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