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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배산서원 배산서원은 청향당 이원과 죽각 이광우를 따로 모시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본래 1589(선조 22)에 세워진 신안서월에 이원을 모셨으나 임진왜란 때 이곳이 타 버렸다. 그래서 문익점을 모신 도천서원에 이원과 이광우를 함께 모셨다. 그러나 도천서원이 사액 서원이 되면서 이원과 이광우의 위패를 배산서원 덕연사로 옮겨왔다. 이후 대원군떄 서원 철폐령으로 배산서원이 철거되자 1919년 진암 이병헌이 의견을 내어 문묘와 도동사. 강당을 짓고 이를 배산서당이라 하였다. 문묘에는 공자의 초상화를 모시고, 도동사에는 청향당 이원, 죽각 이광우의 위패뿐만 아니라 이원과 교분이 두터웠던 퇴계 이황, 남명 조식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다. 배산서원은 다른 서원과 달리 사당이 두 개라는 점이 특징이다. 강당은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전면 5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중국의 변법자강 운동가이자 공양학자인 캉유웨이의 자필 현판과 김구, 이시영,조완구, 박은식의 낙성 축문 현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