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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3월31일 목요일 5 (제183호) 관향조 종친회 대표이사박종현(밀성박씨행산공后)拜上 ‘코로나19’우리는이겨낼수있어요 ~~ 소상공인여러분힘내세요^ *^ 고려 수성보조공신(輸誠輔祚功臣) 가정대부(嘉靖大夫) 중추원사 도평의 사 찬성사 우정승(中樞院事 都評議使 贊成事 右政丞)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키기 위하여 두문동으로 들어 간 두문동 현인의 영수(領首)송암 박문 수 선생의 절의(節義)정신을 기리는 부 조며 제향이 지난 4일(음2.2) 전북 남원 시수지면호곡리사당에서봉행되었다. 이날 제향은 ‘코로나19’로 인해 참여 를 자제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높 은 충절을 기리기 위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은 가운데 건식 집례관이 창홀에 따라 21대 종손 용기(적명 정은)현종의 초헌 례와 종부 양칠례(梁七禮) 여사의 아헌 례, 현택 종중 유사의 종헌례, 완식 현종 의 첨작과 희두 현종의 독축으로 40여분 에걸쳐엄숙하게진행되었다. 「만수산 배록동에서 고사리를 캐고 캐네 아침에도 캐고 저녁에도 캐지만 그 누구와 함께 먹을까? 아 고죽군의 두 아 들아」 이 시(詩)는 선생께서 만수산에 들어가 문을 닫고 절의를 지키다가 포은 정몽주 선생이 선죽교(善竹橋)에서 흉 변(凶變)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평일 의 큰 감 회 (感 懷 ) 를 금 치 못 하 여 지 은 것으로 대개 조석(朝夕)으로 고사리를 캐 함 께 먹 을 사 람 이 없 게 된 심 정 을 드 러낸 송암 박문수 선생은 고려 두문동 현인의영수이다. 두문동서원에 두문동표절실(杜門洞 表節室)이 있고 표절실에는 순절반(殉 節班) 항절반(抗節班) 정절반(靖節班) 세 반(班)이 나누어져 있는데 이중 굽히 지 않고 끝까지 저항한 현인을 모신 항 절반(抗節班)의 반수(班首)로 상좌(上 座)에 송암 박문수 선생이 모셔져 있어 선생의위치를알수있다. 헌종 1년 을미(1835년)에 불사이군충 (不事二君忠)이요 행견중외왈현(行見 中外曰顯)이라 하여 충현(忠顯)이라는 시호교지가 하사되고 현종2년 병신(183 6)에 고려충신 교지와 부조지전[不 튐之 典]이 내려져 만세까지 대대로 선생의 향화가끊어지지않도록배려하였다. 선생의 충절의 정신은 후대에까지 이 어져 정유재란 때 전사한 행 한성판윤 (漢城判尹) 증 통정대 부(通政大夫) 이 조참의(吏曹參議)인 초곡공(草谷公) 휘 계 성 ( 繼 成 )은 아 우 승 성 (承 成 ) 및 종 제(從弟) 휘 언정(彦貞)과 함께 삼충 (三忠)으로 일컬어져 나주 충장사와 금 산 금 곡 단 (金 谷 壇 ), 남 원 충 렬 사 와 만 인 의총에 배향되었다.이어 효자 조봉대부 동 몽 교 관 휘 동 형 과 열 녀 휘 태 현 ( 泰 鉉 ) 의 부인 능성구씨께서 정표(旌表)되어 충효열 삼강(三綱)을 완성한 가문으로 유명하다. 한편 이날 제향 전 건식 집례관은 종 택의 대문에 새겨진 정려와 부조묘를 설 명하고 후손들은 선조의 충효정신을 이 어받아 지역사회를 선도하여 줄 것을 당 부하였으며,종손용기현종은지난해부 터 편찬중이 족보 수단을 이달 말 마감 하고 조만한 책자로 발간 될 것이라고 말하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책 족보에 누보되는 종원들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 을써줄것을당부했다. 고려절신충현공박문수선생부조묘제향 봉행 두문동현인의영수(領首)븣충현공파족보수단3월말마감에이어조만 간편찬 두문동72현의영수충현공박문수선생부조묘 제향이 지난 4일(음2.2) 봉행된가운데참례한 제관 이 함 께 하 고 있다. 21대 종손 용기 현종이 초헌관으로 헌작하고 박희두축관이독축하고있다. 전남 순천시 상사면 흘산리 동백마을 에 있는 이천서원의 석채례(釋菜禮)가 지난 13일 오전10시 배현권 서원장과 순 천향교 임원을 비롯한 지역유림과 상주 박씨 판서공파 임원진등 20여명이 참례 한 가운데 초헌관 박종구 옥천서원장, 아헌관 배현권 원장, 종헌관 장성현 순 천향교 장의, 집례 남상현 순천향교 사 무국장,대축오관석순천유도회부회장 이 각각 소임을 맡아 엄숙 봉행하고,‘코 로나19’의 오미크론 확진자가 폭등하고 있어 가급적 참례를 자제시켰음에도 불 구하고 선생의 도학정신을 기리려는 지 역민들의줄은이어졌다. 이천서원은 1827년(순조 27) 호남 유 림이 발의하여 조선 중기의 문신 박세희 (朴世熹, 1491~1530), 박증손(朴曾孫, 1 496년~1573), 박대붕(朴大鵬, 1525~159 2 ) 등 상 주 박 씨 3 인 의 유 풍 (儒 風 ) 을 추 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으나 1868년(고 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 61년 후손들이 기금을 모아 옛 자리에 복설하였다. 건물은 외삼문과 동백정,내산문과 이 천사,이천서원(강당),관리동으로 구성 하고 있다.외삼문을 들어서면 마주보이 는 동백정(冬柏亭)은 서월철폐령으로 훼철됨에 따라 신주를 모시고 제사하였 던 곳으로 보인다. 동백정 왼쪽 문 위에 적선여경(積善餘慶)이라고 적은 현판 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복을 누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면 오른쪽 문위에는 목판에 새긴 ‘운곡선생원운 (雲谷先生元韻)’이라는 7언 율시가 걸 려있다. 사당과 강당은 나란히 일자형으로 되 었는데,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제향공간 이 사당 이천사(伊川祠)와 강학의 공간 인 강당이 있다. 이천사는 왼쪽의 산기 슭을 제외하고 삼면에 돌담이 있으며, 서원 강당은 오른쪽으로 돌담이 있으나 그외에는모두개방하고있다. 경내에 있는 ‘영모단이천사기적비(永 慕壇伊川祠紀蹟碑)에 서원의 내력을 기 록하고 있다. 서원이 있는 동백마을은 1 6세기 중반 이 마을에 정착한 박동수(朴 東秀) 公이 이천위에 동백나무를 심고 우거하며 동정(冬亭)이라 자호하는데 서 비롯되었다.동정공은 성리지학에 밝 고후진을 지도하고장려하였으며,겨울 추위에도 변하지 않은 절개와 뜻을 함께 한 동백나무를 심어온 것은 선생의 고 절(孤節)을 연상케해볼 수 있을 것 같 다. 한편 이천사라 이름 한 것은 순천부 서쪽 10리 지점에 와룡한 아래 이천(伊 川)가에 있어 이천사란 이름 지은 것이 다.축문과 의절(儀節)은 우암 송시열의 6대손인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 시 호문간)선생이지었다. 배향된 기묘명현 박세희 선생의 자는 이회(而晦)호는 도원재(道源齋)중종9 년(1514년)에 24세에 별시문과(別試文 科)에 장원급제(壯元及第) 이후 호당 (湖當에 뽑혀 수학한 다음 5년간에 걸쳐 홍문관(弘文館) 수찬(修撰), 사간원(司 諫院) 정언(正言), 이조(吏曹)좌랑(佐 郞), 충청도도사(都事), 사헌부(司憲 府)장령(掌令), 홍문관(弘文館) 응교 (應敎), 사간원(司諫院) 사간(司諫) 등 에 봉직 하는 등 조정에서 신예 신료로 서 주목을 받고 있었다.정암(靜菴,조광 조)과 함께 오랫동안 경연(經筵)에 있 으 면 서 나 라 다 스 리 는 법 도 를 상 론 해 왔 던 선생은 기묘사화로 인해 화를 입었으 며, 유배 중에도 선생은 오히려 경적(經 籍 -성인이 지은 책 즉 사서오경)으로 스 스 로 날 을 보 냈 으 며 그 중 용 (中 庸 ) 과 대학(大學)에 공력들임이 더욱 많았으 나, 임오(壬午-중종 17년-서기1522년) 에 모친의 부음(訃音)을 받고 통곡하며 마지막가시는길에효행을행하지못함 으로 슬퍼함이 과하여 병이 더 악화되어 1530년(庚寅,중종 25년) 7月 7日마침내 적소(謫所)에서 돌아가시니 향년 겨우 40세였다. 영조 22년 병인(서기1746년) 에 복권되어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 경연 춘추관 성규관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오위도총부도총관 세자 좌빈객의 증직을 받게 되었고, 문강(文 剛)이라는시호를받 게되었다. 박증손(朴曾孫)의 호는 운곡당(雲谷 堂)으로 운곡공으로 불리고, 1496년 경 기도 남양에서 태어났으며, 기묘명현으 로 순천지역 입향조이다. 전남 순천 황 전을 거쳐 상사면 쌍지에 정착했다. 이 후 족대부 도원재공의 유훈을 받들어 향 촌을 자경골 당호를 운곡당(雲谷堂)이 라 하 고 평 생 토 록 향 리 후 세 들 에 게 학 문 을 강론하다 1573년 향수 78세의 일기로 영면하니당대의큰사표가되었다. 남포공 박대붕은 병절교위 부사맹 휘 매(梅)와 숙인 청주양씨와의 사이에서 1525년 태어났다. 효성과 함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강직한 성품으로 사마 시에 급제하여 주부로 내금위 승위부위 에 봉직하였다.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 나자 의병창의 한 사실이 호남 의병사에 전해진다. 중봉 조헌, 제봉 고경명과 함 께 금산전투에서 많은 왜적을 물리치고 장열하게 전몰하였으니 상사 동백 와룡 산 아래에 초혼 장사했다. 남포공의 활 약상은 금산사재 절의록, 호남절의록에 전해지고 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남포공의 기축, 임진 두 절의과 천고의 유풍을 세운 행적을 기리기 위해 이천서 원에 족대부 도원재공, 조부 운곡공과 함께배향되었다. 한편 석채례란 푹석(釋) 나물채(菜), 의식례(禮) 자(字)로 나물을 캐어 제상 (祭 床 )에 차 려 놓 고 시 문 (詩 文 ) 과 경 문 (經文)을 해석한다는 뜻으로 서민을 생 각한 의식입니다. 현 시대의 도덕적 문 란 풍토와 예의가 경시되는 상황에서 배 향된선현의장점을되돌아보게한다. /자료제공박홍민상주박씨남포공종중회장 이천서원‘석채례’봉행 상주박씨기묘명현박세희·순천입향조박증손·임란공신박대붕의도학(道學)정신 기려 이천서원전경,①이천사②강당③내삼문④동백정⑤기적비⑥외삼문⑦관리사 지난13일코로나19로인해참여를제한한가운데제관을비롯한관계자20여명이석채례를봉행후함께하고있다. 밀성박씨 좌상 공파대종회(회장 영배)는 지난 8일 전남 곡성군 입면 농협 회의실에서 임원회의를 가졌 다. 이날 회의는 ‘코로나19’ 확산 세가 매일 더블링 되고 있는 상황에 총회를 정상적으로 개최할 수 없어 호남 지역 거주 각 소파 종중 회장단을 초청 지 난 해 결 산 및 새 해 예 산 등 을 심 의 후 이를서면으로통보키로했다. 이날 심의된 안건은 지난 달 운식, 성 호 감사에게 제반 모든 서류를 메일로 송부하여감사를진행하였고,수입과지 출 결산에 대해 임원진이 심의 후 승인 했다. 2022년 사업계획으로 △춘추시제 종 원들의 참석운동전개 △소종중 시제 참 석 및 활성화를 위한 지원 △종원 발굴 및 확충사업 전개 △청년회 결성 추진 △종친화합 및 사기진작 행사 △홈페이 지 운용을 통한 종친회 활동소개 및 참 여유도 △전자족보 업그레이드 등으로 이중 청년회 결성은지난달과 이달 12일 두 차례에 걸쳐 준비모임을 가져 조만간 창립총회를가질예정이며,전자족보업 그레이드는 1994년 갑술보를 기준으로 제작한 홈페이지를 구성하는 프로그램 (PHP)이 현재 3.0버전으로 띯호스팅 업체를 구하지 못해 4,4 이상으로 업그 레이드를 해야 하나 여의치 않아 현재 대보사의 띯호스팅을 임시방편으로 사 용하고 있다. 버전을 업그레이드 할 경 우 홈페이지는 별문제가 되지 않으나 전 자족보 비용이 새로 구축하는 비용보다 훨씬 많아 부득이 지난번 발행된 무술보 (2018년)를 기준으로 새롭게 구축할 예 정으로 이에 대한 소요예산은 예비비에 서 충당하는 등 2022년 주요 예산은 176 ,362,203원이다. 이중 1억 6천만원은 정 기예탁으로 예치하고 가용예산은 1천6 백여만원이다. 좌상공파대종회 홈페이지는 여타 문 중보다 앞서고 있다. 1997년 구축된 홈 페이지와 전자족보는 대부문 상섭 총무 이사가사재를출연하였으며,당시타문 중은 홈페이지에 세계도만 올려놓았을 뿐 온전한 족보형태는 아니었다.그러나 좌상공파 홈페이지는 직접 프로그래머 를 고용하여 인적사항은 물론 업적, 가 족관계, 동영상으로 남기는 유언, 사진 자료 등을 볼 수 있는 최초의 족보프로 그램을 완성하여 많은 업체에서 인용하 였으며,현재에도그처럼완벽한전자족 보는없다는평가가이어지고있다. 전자족보 업그레이드는 별도의 계획 을 세워 지난번 누보된 종원과 새롭게 태어난 종원들의 수단접수와 비용 등을 산정할계획이다. 한편 이날 회의전 농협에 예치된 정기 예탁은 만기되어 1억7천만원의 원금에 이자 1,438,200원을 수령 1억6천만원을 새롭게 예탁하고 나머지는 전자족보 업 그레이드를 위해 보통예금으로 전환하 였다. 박영배 회장은 이날 회의 전 인사말을 통해 지난해까지 코로나로 인해 모든 사 업을 정상적으로 펼칠 수 없었다고 말하 고 금년에 봉행되는 서석단 향사(4월 20 일, 수요일)는 정상적으로 봉행할 것이 라고 말하고 많은 성원과 참례를 당부했 다. 밀성박씨좌상공파임원회의성료 비대면총회위해이달말서류송부븣우리나라최초전자족보업그레이드,서석단향사 4월20일봉행 박영배회장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