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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2월28일 월요일 6 (제182호) 기 획 성덕전은 1946년 경남 서부지역 종친들이 시조대왕을 추모 하려는 숭조심의 발현(發顯)으로 ‘박씨시조왕묘전봉건기성 회’를조직하고다음과같이결의하기에이르렀다. (1) 우리 시조성왕을 위하는 성업(聖業)이니 백관천파의 첨종(僉宗)은일률적으로차(此)에동의하심을요청함 (2)묘전봉건장소는서부경남의중심지인삼천포로정함 (3) 표성금 수집지역은 경남일원으로 하되 인접 시군에 주 력을둔다. (4)표성금에의하여는석비,현판,장상등으로포창한다. (5)묘전봉건총예산은350만원으로 정함. 부지 500평에 정전(正殿) 10평, 동·서재 2동과 제복과 제 기 일절 구입금을 포함한 예산을 모금하기 위해 1946년 12월 2일 지역의 종친들에게 건립취지를 담은 편지(敬白書)를 종 실(琮實) 현종을 비롯한 발기인 100여명의 이름으로 발송하 고성금을모금하기에이르렀다. 표성금은 당시 41만여원이 모금되어 경남 삼천포시 벌리동 에 건립되어 1947년 추분을 맞아 첫 제향을 봉행하였고 이후 제향은숭덕전과같이춘분과추분에향사를봉행해왔다. 그리고 건축당시 300여 만 원의 공사대금 미지급금이 있어 고민하던 중 1953년 부산을 비롯한 경남 서부지역 종친들이 중심이되어‘박문번영회(朴門繁榮會)’를 결성하였는데당시 발기인대표로 부산 수정동의 명제(明濟, 전 검찰청장), 종만 (鍾萬, 당시 국회사무총장), 종호(鍾浩), 진주 금산면의 해룡 (海龍)현종과 삼천포시 일가분 다수가 발기인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박문번영회 창립으로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많은 종원들이 참 례 하 면 서 한 때 천 여 명 이 참례하는 등 서부지역의 성전으 로부상했다. 경주 숭덕전은 경남 서부지역 성손들의 숭조정신이 투철함 을 감탄하였고, 경주 숭덕전과 순천의 숭성전외에는 없는 삼 천포성덕전을승인하였다. 그러나 세월을 이기지 못한 협소한 묘전은 퇴락하면서 많 은 종친들을 애석하게 하였으며, 설상가상 재건을 추진하던 종원들이 타계하면서 재건 추진은 중단되고 방치되어 십 수 년간 풍우에 파손되니 타성(他姓)의 빈축(嚬蹙)은 날이 갈수 록 심하였고, 성손 된 도리로서 통탄을 금할 길 없었다. 그리 고 1961년 숭덕전 전(前) 박화준 참봉이 성덕전의 소식을 듣 고 진노하는 등 외부의 압력도 더해져 1970년 2월 6일 삼천포 문화원에서 700여 성손이 움집 한 가운데 재건축 추진위원회 를 결성하여 1971년 7월 16일 사천시 봉남동279-16(대학길1 3)에서기공식을갖고1972년 10월 30일 완공 지금에 이른다. 수고(樹高) 비록 백장(白丈)이나 반드시 기근(其根)이 있 고 강류(江流) 비록 천리이나 반드시 기원(其源)이 있나니 만약(萬若) 기수목(其樹木)의 번무(繁茂 )를 계(計)할진대 먼저 기근(其根)을 배고(培固)케 할지요 강류(江流)의 풍속 (豊裕)를 도(圖)할진대 먼저 기원(其源)을 호중(護重)히 할 지라. 인역일리(人亦一理)로자손(子孫)이비록천만(千萬)이나 반드시 기조종(其祖宗)이 有한바이니 기자손(其子孫)의 융 창(隆昌)을 희(喜)할진대 먼저 기조손(其祖孫)의 은덕(恩 德)에 감사(感謝)를 드려야 될 것이다. 우주(宇宙)의 진리 (眞理)는 실(實)로 이 가운데 숙(宿)하고 있는바 이올시다. 금일천파만지(今日千派萬枝)로의 자여손(子與孫)은 석아 (昔我) 시조일신(始祖一身)으로부터 유전(遺傳)하는 혈육 (血肉)임을 확지(確知)하면 어찌 보본(報本)의 심정(心情) 이 무유(無有)할 자(者)이리요. 유아(惟我) 朴氏는 유래백관 천파(由來百貫千派)로의 명분번성(各分繁盛)하였으나 기원 (其源)은 일야(一爺)로 모두 신라 시조왕의 어일신(御一身) 으로부터나온聖스러운子孫들이올시다. 우리 始祖께옵서는 천강(天降)의 성인(聖人)이시로 당시 진한육부촌장(當時辰韓六部村長)의 공의추천(共議推薦)에 衣하여 新羅 태조왕(太祖王)이 되시어 알영왕비(閼英王妃) 를 영(迎)하시니 역 의덕(亦懿德)이 有하심으로 世人이 모두 이성(二聖)이라 稱하였나이다. 내보외인(內補外仁)하사 성 덕(聖德)으로서 치국(治國)에 臨하시니 民風이 현화(顯和) 하고 백업(百業)이 대진(大進)이요 이성친(二聖親)히 농상 (農桑)으로써 勸하시니 가합일족(家給人足)이라 인국원방 (隣國遠邦)이 모두 성왕(聖王)의 신덕(神德)에 감동(感動) 되어 변한(弁韓)은 國으로써 래부(來附)하고 東동옥저군(沃 沮君)은 양마(良馬)를 헌(獻)하매 日本과 낙랑(樂浪)은 위 덕(威德)에 외복(畏服)하여 감히 정시(正視)치도 못하였나 이다.아!목목(穆穆)하신우리성조(聖祚)이시여어국(御國) 하신지 六十一年에 시화민락(時和民樂)하여 山野에 도적(盜 賊)이 일무(一無)하고 인옥(因獄)에 죄인(罪因)이 공허(空 虛)이셨다. 우리 역사중(歷史中) 찬란(燦爛)한 新羅一千年 文化의 기초(基礎)를 축적(蓄積)하여 주신 성태조왕(聖太祖 王)이시오 성덕여경(聖德餘慶)으로 금일반도강산(今日半島 江山)에 박성(朴姓)이 없는 곳이 없어 번벌(繁閥)의 子孫을 끼치여 주신 성시조(聖始祖)이시니 우리 子孫된 者는 모름지 기 성적(聖跡)을 연구(硏究)하고 의범(儀範)을 효칙(效則) 하며 보본반시(報本反始)의 성의(誠意)를 다 할진대 조덕 (祖德)을 가승(可承)이오 子孫이 다복(多福)할지라 이러 하 자면 시조왕(始祖王)의 묘전(廟殿)을 모시고 당시앙배(當時 仰 拜 ) 하 며 성 신 ( 聖 身 )이 親 히 이 에 계 시 는 듯 추 원 감 모 (追 遠 感慕)하옴만 같음이 없으리니 차일칙(此一則)은 우리 子孫 된 者로서의 報本의 지성(至誠)을 헌(獻)하옴이오 國民으로 서의 성치(聖治)를 모하(模)옵일재 차즉금반(此卽今般) 시 조성왕(始祖聖王)의 묘전(廟殿)을 봉건(奉建)하고 성경(誠 敬)을 다하고자 자에(玆) 취지(趣旨)를 경백(敬白)하옵는 바이오니 願컨대 우리 첨종(僉宗)은 동의봉찬(同意奉贊)하 여주심을천만간망(千萬懇望)하나이다. 신라기원이천십오년丙戌(1946년)12월 2일 ※이 글은 한글 맞춤법 시행 전 글입니다.이에 한글은 맞춤 법에 의해 수정 보완하였고, 한자는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과 한글을혼용하여실었습니다. 성덕전은 대지 1천여평에 정전(正殿)과 전사청(典祀廳), 삼문(崇位門)으로 구성되었다. 正殿은 전면 3칸 측면 3칸으 로 목조 팔작지붕이다. 당초 기와를 올렸으나 퇴락하여 최근 강판 지붕으로 교체되었다. 내부에는 그동안 추진되어온 재 건과중수등에헌성한표성금편액이있다. 제례는 매년 춘분과 추분에 춘·추향을 모셔왔으나 같은 날 경주의 대제에 참여하면서 참례자가 줄어들어 연1회 택일하 여 봉행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참례자가 줄어들어 금년부터는 청명일정일(定日)에봉행키로하였다. 제복은 도포와 유건,사대,행전을 갖추어 봉행하고,제물은 화식으로일반가정의사시제제수에준하고있다. ○掌儀先入再拜就位(장의선입재배취위, 장의(집례)는 먼 저 절하는 자리로 나아가 재배하고 본 자리에 나아가시오)○ 獻官以下皆序立位(헌관이하개서립위,헌관이하 모든 참제원 은 제자리에 서시오) 贊引引初獻官詣點視陳設(찬인인초헌 관예점시진설, 찬인은 초헌관을 인도하여 헌관은 제수를 점 시하시오) ○還復位(환복위, 초헌관은 본래 자리로 가시오) ○獻官以下皆參神再拜(헌관이하개참신재배, 헌관이하 모든 참제원은 참신 재배하시오) 拜 興 拜 興 ○諸執事詣꿍洗位 (제집사예관세위, 모든 집사는 손 씻는 자리로 나아가시오) ○ 꿍水썅手(관수세수, 손을 씻고 닦으시오) ○各就位(각취 위,집사자들은각자제자리로나아가시오) □行降神禮 ○贊引引初獻官詣꿍洗位(찬인인초헌관예관세위, 알자는 초헌관을 관세자리에 나아가게 인도하시오) ○ 꿍水썅手(관 수세수,헌관은 손을 씻고 닦으시오)○仍詣香案前 눠(향안전 에 나아가 꿇어앉으시오) ○奉香奉香盒(봉향봉향합, 봉향은 향합을 받들고)○奉爐奉香爐(봉로봉향로,봉로는 향로를 받 들고) ○獻官三上香(헌관삼상향, 헌관은 향을 세 번 피우시 오) ○奉爵以爵授獻官(봉작이작수헌관, 봉작은 술잔을 헌관 에게 드리시오) 司尊獻官之右西向눠(준헌관지우 서향궤, 사 준은 헌관오른쪽에서 서쪽을 향해 꿇어앉으시오)斟酒(침주, 술을 따르시오) ○獻官執爵降神傾酒于地(헌관집작강신경주 우지, 헌관을 잔을 받아 술잔을 기울어 땅에 부으시오) ○虛 爵授奠爵(허작수전작, 빈 잔을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自左 受之奠于位前(전작자좌수지전우위전,전작을 왼쪽에서 잔을 받아 신위 전에 놓으시오) ○獻官 뮐伏興小退再拜(헌관면복 흥소퇴재배,헌관은몸을구부렸다펴고일어나재배하시오) □行初獻禮(행초헌례,초헌례를행합니다) ○贊引引初獻官仍詣位前눠(찬인인초헌관잉예위전궤, 찬 인은 초헌관을 인도하여 신위전에 나아가 꿇어 앉으시오) ○ 奉爵以爵授初獻官(봉작이작수초헌관,봉작은 술잔을 초헌관 에게 드리시오)○司尊西向 눠 斟酒(사준서향궤 침주,사준은 헌관의 서쪽에 꿇어 앉아 술을 따르시오)○獻官授奠爵(헌관 수전작, 헌관은 술잔을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自左受之奠 于位前(전작자좌수지전우위전, 전작은 왼쪽에서 잔을 받아 신위전에 올리시오) ○祝詣獻官之左東向눠(축예헌관지좌동 향궤,축관은 헌관 왼쪽에서 동쪽을 향해 꿇어앉으시오)○讀 祝文(독축문, 축문을 읽으시오) ○讀訖祝復位(독흘축복위, 축문을 다 읽은 축관은 제자리로 돌아가시오) ○獻官 뮐伏興 小退再拜(헌관면복흥소퇴재배, 헌관은 엎드렸다가 일어나 몸을 바로 한 후 재배하시오) ○贊引引初獻官退復位(찬인인 초헌관퇴복위,찬인은 초헌관을 인도하여 제자리로 돌아가시 오) □行亞獻禮(행아헌례,아헌례를행합니다) ○贊引引亞獻官詣꿍洗位(찬인인아헌관예관세위, 찬인은 아헌관을 관세자리에 나아가게 인도하시오) ○ 꿍水썅手(관 수세수,헌관은 손을 씻고 닦으시오)○仍詣位前눠(잉예위전 궤,신위전에 나아가 꿇어 앉으시오)○奉爵以爵受亞獻官(봉 작이작수아헌관, 봉작은 작<잔>을 아헌관에게 드리시오) ○ 司尊西向눠 斟酒(사준서향궤 침주, 사준은 헌관의 서쪽에 꿇 어 앉아 술을 따르시오) ○獻官授奠爵(헌관수전작, 헌관은 술잔을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自左受之奠于位前(전작자 좌수지전우위전, 전작은 왼쪽에서 잔을 받아 신위 전에 올리 시오) ○獻官 뮐伏興小退再拜(헌관면복흥소퇴재배, 헌관은 엎드렸다가 일어나 몸을 바로 한 후 재배하시오) ○贊引引亞 獻官退復位(찬인인아헌관퇴복위,찬인은 아헌관을 인도하여 제자리로돌아가시오) □行終獻禮(행종헌례,종헌례를행합니다) ○贊引引終獻官詣꿍洗位(찬인인종헌관예관세위, 찬인은 종헌관을 관세 자리에 나아가게 인도하시오) ○ 꿍水썅手(관 수세수,헌관은 손을 씻고 닦으시오)○仍詣位前눠(잉예위전 궤, 신위 전에 나아가 꿇어 앉으시오) ○奉爵以爵受亞獻官 (봉작이작수아헌관, 봉작은 작<잔>을 아헌관에게 드리시오) ○司尊西向눠 斟酒(사준서향궤 침주, 사준은 헌관의 서쪽에 꿇어 앉아 술을 따르시오)○獻官授奠爵(헌관수전작,헌관은 술잔을 전작에게 주시오) ○奠爵自左受之奠于位前(전작자 좌수지전우위전, 전작은 왼쪽에서 잔을 받아 신위전에 올리 시오) ○獻官 뮐伏興小退再拜(헌관면복흥소퇴재배, 헌관은 엎드렸다가 일어나 몸을 바로 한 후 재배하시오) ○贊引引終 獻官退復位(찬인인종헌관퇴복위,찬인은 아헌관을 인도하여 제자리로돌아가시오) ○侑食(유식, 모든 참제원은 몸을 구부리고 잠시 기다리시 오) ○ 뮐伏興(면복흥, 몸을 바로하시오) ○祝入撤箸(축입철 저, 축은 들어가 수저와 젓가락을 거두시오) ○獻官以下皆辭 神再拜(헌관이하개사신재배, 헌관이하 모든 참제원은 사신 재배하시오) ○掌儀再拜(장의재배, 장의는 재배하시오) ○ 禮畢撤饌(예필 철찬, 이로서 모든 예가 끝났습니다. 진설된 음식을거두시오) 성덕전은 경남서부지역 성손들의 애틋한 숭조심에서 세워 졌으며,지역성손들을한데모으는매개체역할을해왔다. 그러나 산업화에 따라 교통이 발달되고 지역의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이거하면서 이제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어 안타까 울뿐이다. 이에 집행부에서는 지역의 젊은 성손들이 찾아와 우리 박 성의 전통 예법을 배울 수 있고, 성손간 친목을 도모하며 옛 명성을되찾기위해고심중이다. 최근 우리 종중사를 보면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종중에 관 심이 없다고 말하고, 젊은 사람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데 어떻게알고찾아가고배울것인가라고말한다. 성덕전이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의 성손들 이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이는 전통예절을 배울 수 있는 전 당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본보에서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을 다짐하며 성덕전이 더 발전 할 수 있기를 기대 해 본 다 . /글븡사진박상섭 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뱚재실탐방 경남삼천포시성덕전(聖德殿) <경남사천시대학길13> 성덕전전경 성덕전조감도 성덕전은 신라 시조왕 위패를 봉안한 묘전(廟 殿)이다. 경주의숭덕전, 순천의숭성전에 이어 건립된 곳으로 경남 서부지역 성손들이 경주까 지의교통이 불편하여1946년 건립추원보본의 정성을다해왔다.그러나시대변천에따라교통 이활발해지면서많은사람들이경주로발길을 돌리면서 제향에 찾는 성손이 줄어들어 집행부 의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다.종섭 회장과 영춘 사무국장을비롯한임원진은매일활성화를위 해노력하고있어이를기대하며소개해본다. 성덕전건립과연혁 성덕전본전 전사청 朴氏始祖王廟殿奉建敬白書(묘전봉건경백서) 박종섭 회장(左)과 박영춘(右) 사무국장이 활성화를 위해 많은 성손들이 함께해줄것을당부한다. 묘전(廟殿)의규모 기공식 및 공사 과 정 성덕전의제례(祭禮) 홀기(笏記) 맺은말 시조왕위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