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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22년 1월 31일 (음 12월 29일) 월요일(신라기원 2079년) 2007년1월24일창간 제181호 12면(월간)뱚 壬 寅 年 새 해 에 도 宗 親 모 두 의 家 庭 마 다 萬 福 이 가 득 하 시 고 、 즐 거 운 설 명 절 가 족 과 함 께 행 복 하 게 보 내 시 기 바 랍 니 다 。 아 울 러 한 빛 신 문 創 刊 十 五 周 年 을 眞 心 으 로 祝 賀 합 니 다 。 박 씨 종 친 회 부 산 광 역 시 본 부 고 문 박 종 삼 박 순 엽 박 정 학 박 만 석 직 전 회 장 박 영 포 회 장 박 진 국 부 회 장 박 대 수 박 주 석 박 현 재 박 윤 술 박 사 자 박 영 우 박 만 순 감 사 박 종 만 박 문 상 사 무 처 장 박 종 대 부산본부는매년박정희대통령제42주기추모제를봉행하고있다. 밀성박씨백우당공파보가지난해말발간되어새해분질을 완료했다.이번 파보 발행은 1969년 기유보(己酉譜)발간이후 두번째로52년만으로2권1질이다. 2018년 4월 춘향에서 파보편찬을 결의하고 래지 회장을 추 진위원장으로 추대하여 시작한 이번 족보는 종원들에게 수단 비와 책값을 받지 않고 종중기금으로 제작되었으며, 래지 회 장이 매일 장성읍 종중사무실에 출근 수단을 접수하여 정서 하고 사진 자료를 수집하는 등 성력(誠力)을 다한 작품이라 할수있을것같다며종원들은이구동성으로말한다. 노강박래호선생은같은종원으로서정말자랑스럽다고말 하고 집안의 가풍에서 이어져온 래지 회장의 심성이 훌륭한 파보편찬으로이어졌다고소개한다. 래지 회장은 1950년 11월 태어났다.1953년 음2월 24일 6·25 전쟁원동지구전투에서전사한아버지고중구(重求)공과어 머니 김순여 여사와의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나 아버지 얼굴 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아래 성장했다. 어머니 광산김씨는 1951년 남편이 전쟁 중에 입대하여 홀로 아들을 키워오면서 형제간에 돈독한 우애로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였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밥을 주어 굶주림에서 벗어 나게 하였으며, 무슨 일이든 솔선수범하여 다른 사람의 모범 이 되었고 1951년부터 2018년까지 67년여를 남편 없이 홀로 살아가면서 성심과 성의를 다하여 자식과 손자손녀를 기르고 돌보면서집안의기둥이되었다. 이같이훌륭한어머니의훈육을받은래지회장은광주은행 광주 역전지점장을 끝으로 퇴직 종사에 몸담아 돈재공파 감 사, 총무, 부도유사, 도유사를 역임했으며, 백우당공파 총무 및재무9년,현재6년째도유사를맡고있다. 21대조 고려의사(휘 승봉)공의 묘소가 실전되어 돈재공파 종손 래영 현종에서 건의하여 총회 결의 후 총무로서 모금운 동에 적극 나서 설단을 할 수 있었고 선조 묘역 단장에도 앞장 섰으며, 2남 1녀의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하여 장남 준혁은 경영학석사로 DS네트웍스 투 자부분 대표, 차남 주상은 전 남대법대 졸업후 대한생명근 무, 따님 선민양은 홍익대를 졸업하고 현제 바이탈솔류션 과장으로재직하고있다. 백우당공파는 풍수지리에 밝아 임진왜란을 예고했던 백 우당박상의선생을파조로한 다.파조 백우당공은 어모장군 휘 사순의 아들로 1538년 전남 장성군 황룡면 보룡산 기슭에 서 태어나 어릴 적 거리에서 놀 때 어떤 사람이 보고 용모 와행동이 기이하다며훗날천 하에 이름을 낼 사람이다 하였다. 진원 고을 박원순 선생에게 서 공부할 때 총명한 재주가 남달라 날마다 동문생(同門生) 망암 변이중(望庵邊以中)과학우들이복종하지 않은이 없었 으며, 자라서는 고금상수(古今象數)와 제자백가(諸子百家) 에 통달하여 소강절(邵康節) 선생이라 하였다. 월사(月沙)의 추천에 의해 봉훈랑(奉訓郞)에 발탁되었고 관상감겸교수를 지냈다.이어 사재감주부(司宰監主簿),전옥서주부(典獄署主 簿),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랐다. 광해조에는 어해장군(禦 海將軍)으로 용양위부호군(龍 웹衛副護軍)이 되었다가 1617 년(광해군 9)에 절충장군(折衝將軍) 본위부호군(本衛副護 軍)에 올랐다. 그 후 벼슬을 그만두고, 강호(江湖)에 소요(逍 遙)하다가 1621년(광해군 13)에 향년(享年)84세(歲)로 세상 을버렸다. 특히 임진왜란 때 명나라 양호 장군이 군사(軍師)로 예우하 였고,1578년 율곡 이이,중봉 조헌,토정 이지함,구봉 송익필 등과하늘의장성(長星)을보고앞으로국운을논의하면서15 년 뒤에 븮靑衣賊入自國城東門븯(왜적이 장차 서울 동문으로 쳐 들어오리라)하고 예언을 하였으나 누구하나 믿지 않았다. 다 만 율곡 이이는 이 말을 귀담아 듣고 임진강변에 화석정을 짓 고 들기름을 먹여두어 후일 선조의 피난길에 칠흑 같은 밤에 강을 건너기 위해 이 정자에 불을 붙여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일화를남겼다. 한편 지난7일 오전 11시前전라남도도의회 박래옥 의원(2 선)과 함평문중 임원진은 종중 사무실을 방문하여 래지 회장 을 비롯한 노강 선생 등에게 파보편찬에 헌신한 공로를 치하 하며힘들었던과정을위로하고격려했다. /박상섭 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밀성박씨백우당공파보발간 박래지종친회장성력과종친회기금으로무상분질 밀성박씨백우당공파보2권1질 백우당공파파조백우당박상의선생은천문지리에 밝아왜적이 쳐들어오 리라예언을하여장성조각공원에비를세워기리고있다. 래지회장이 족보에 수록된 기념비 를설명하고있다. 래지회장이 3년여에걸친파보편찬작업을위해매일출근하여컴퓨터를 켜고업무를보면서시력이 나빠져최근병원진료를받았다. 아호(雅號):석천(昔泉,옛샘) 당호(堂號):화남재인(華南齋人),화악 산방인(華嶽山房人),세심헌(洗心軒) 주소:경남밀양시삼문동552 1946년경남밀양출생 ※주요경력 :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역임 / 전국서도민전 초대작가 심사위원장 역임/ 경남 미술대전 초대작 가심사, 운영위원역임/ 대한민국正修서예문인화대전초대작가, 심사위원/ 대한민국서예대전미술대상전초대작가, 심사위원장역 임/경남서단 회장역임/화남서예원원장(055-356-6110) ※수상 : 경남 미술인상/ 유당미술상/ 경남 예술인상/ 경남 청 소년지도자대상/ ※전시경력:서예개인전3회(94창원kbs방송국.03 국제신문사 전시실,2016밀양아리랑아트센타/밀양문화재단 초대) 뱚 新年揮毫 天地和同(천지화동)是月也天氣下降地氣上騰 天地和同夜 [해설]-하늘의기(氣)는밑으로 내려(降)오고, 땅의기(氣)는위로 올라(陞) 하늘과 땅이 화목하고화평하다.(코로나19로 힘든시 기입니다. 천지의조화속에모두가평온하고힘내시길기원드리며븣.昔泉 拜) 석천박지석(朴志碩) 항일독립투쟁 상해임시정부의 유일 한 비밀 3인조 암살단 ‘김광추·박희광· 김병현’, 지난 2015년 최고의 영화로 평 가받고 있는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1,2 00만 관객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 겼다. 친일파 암살 작전을 둘러싼 독립 군들과 임시정부 대원들의 활약상이 국 민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며 가슴 뜨거운 감동을 자아냈다.하지만 영화보 다 더 욱 감 동 적 인 구 미 출 신 의 독 립 투 사 박희광 선생의 실화가 엄연히 실재하고 있다. 지난 22일 거행된 의사의 서거 52주년 행사는 박 의사 기념 사업회 와 광복회 경상북도구미시지회가공동주최하고, 유족과 친지 지인 구미시민 등 100여 명 이 참여한 가운데 이동일 광복회 경북지 회장이선생의약력보고를하였고,장세 용 구미시장의 추모사, 분향 및 헌화,추 모시낭송, 광복군아리랑 공연, 독립군 가 제창, 유족대표인사, 시민헌화 순으 로1시간여에걸쳐진행됐다. 추모 시 낭송에는 윤동주 ‘서시’,한용 운 ‘님의 침묵’을 김형숙 前 경북재능시 낭송협회장의 감동적인 낭송에 식장의 분위기도 처연한 듯 했으며, 이어진 진 혼무를 담당한 류제신(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선생의 혼을 달래 는 춤사위와 흐르는 진혼곡의 한 맺힌 효과음 등으로 추모식 분위기를 절정으 로 이끌었다. 이어 소프라노 우명선(김 천시립합창단), 바리톤 김응화(구미시 립합창단)의 아름다운 나라 듀엣은 분 위기를반전시키는힘찬무대가되었고, 독립군가 제창에서 감동은 더욱 깊게 했 으며, 사회를 맡은 박정연 선생의 재치 있고 함축적인 설명에서 식장의 분위기 를더욱격조높게이어갔다. 광복회구미시김봉준지회장은뷺조국 과 민 족 이 있 어 야 우 리 가 존 재 할 수 있 으며 조국 산하가 없으면 떳떳한 국민이 될 수 없다뷻라는,박희광 선생이 생전 남 긴말씀을환기해주었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추모사를 통해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은 우리 구미출 신으로서 악질 친일파를 제거하는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훈련을 받으며 암살특 공대를 결성, 민족반역자를 처단, 군자 금 탈취 등 독립투쟁을 하다가 사형선고 를 받 았 으 나 그 뒤 무 기 징역으로감형,2 0년간 복역 후 출옥했으며, 1968년 삼일 절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 훈, 1970년 1월 22일 별세, 서울 국립현 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모셨습니다.”는 등의 설명으로 자신이 대학교수 시절 공 부했던 역사적 사실을 더듬는 모습이 상 당히인상적이었으며,마지막순서로참 가자 거의 전원이 준비된 국화꽃으로 헌 화를하였고,기념촬영을끝으로폐회를 했다. 독립운동가박희광의사서거52주기추모식 열려 임시정부무장독립운동단체인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자진입대,특공대원으로 활약 독립투사 박희광 의사 추모식이 지난 22일 구미시 금오산 저수지 입구에 세워진 동상 앞에서 열려 의사의숭고한 정신을기렸다. 장세용 구미시장이 헌화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