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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12월31일 금요일 8 (제180호) 관향조 종친회 ‘전국밀성인성손화합한마당전진대회’는 중앙무대에서 활동 하고 있는 성손 연예인들에 의해 더욱 빛이 났다. 재능기부를 위해 밀성재를 찾은 박준영 명창을 비롯한 연예인 가수들이 청 년회 박병룡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과 익성사를 찾아 참배하고 곧바로 10시 30분 식전공연으로 이어졌다. 서도소리 배뱅이굿 으로 시작된 식전공연에서 나이든 어른들은 옛날 이응관 명창 이 돌아온 듯 공연에 몰입하며 즐거워했다.단국대학교 대학원 음악학 석사이기도 한 박준영 명창은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배뱅이굿 준 인간문화재지정, 2002년 8월 전 국국악경연대회 명창부 대상 대통령상 수상, 2002년 6월 전국 국악경연대회 명창부 대상,국회의장상 수상, 2008년 KBS국 악대상수상하는등국악계에서는알아주는명창이다. 공연에서 박동규 부회장과 함께 진행을 맡은 나팔박(박병 일)은 밀양박씨 규정공파 28세손으로 현 청년회 부회장이다.2 021 대한민국연예예술상 연주인상수상과 신지식인 선정(202 1)된 나팔박은 6시내고향, 전국노래자랑, 아침마당, 가요무대 다년간 출연하였으며, 유튜브 나팔박tv(매주 월~목 8시ㅡ10 시)를 통해 친근한 이미지와 진정성 있는 깊은 음악으로 대중 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며 밀양박씨에 대한 큰 자부심과 자긍심 으로 다년간 부회장을 맡아 밀박전국청년회 홍보에 큰 기여를 하고있다. 가수 박상보는 밀양박씨 청재공파 23대손으로 박달가요제 금상, 전국노래자랑 우수상, KBS 노래가 좋아 특집 트로트가 좋아 출연, KBS아침마당 꿈의무대 4회 출연 2회 우승,장윤정 의 도장깨기 도장스테이지편 출연, 장윤정의 도장깨기 미스터 트롯편우승으로인지도를높여왔다. 가수 박주용은 밀성박씨 행산공 후손으로 경남 고성에서 태 어났다.6살 때 꽹과리 장구로 음악을 시작 동네 어른들의 귀여 움을 받았고 초등4학년부터 중·고·군악대까지 드럼을 연주하 는 등 못다루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나 평생을 음 악과 함께했다.8인조 그룹사운드 드럼겸 싱어로 활동 중 배삼 룡씨의 적극적인 권유로 개그로전향 80년대 나원참이란 예명 으로 맹활약 술취한 연기의 원조로써 대중의 인기를 받던중 90 년 대초 가수로 전향 1990년 제1집 회전문을 발표하며 화려하 게 데뷔했다. 2002년제2집 첫사랑, 2010년 제3집 당신이 명품, 2013년 제4집 용아 2017년 제5집 천생연분 내 사랑,제6집 부부 10계명 준비중 사업실패로 인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활동 을 잠 시 쉬 는 동 안 왜 그 많 은 재 능 을 숨 기 고 사느냐는 지인들 의권유로인해다시활동을재개했다. 그러나 그동안 활동을 하지 않다보니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돌 기 시작했다. 심지어 죽었다더라 등 많은 소리가 들리기에 그 래 멋지게 재기하자라는 각오로 KBS 5부 작 인간극장을 통해 새로운면모를보이며열심히활동하고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서 종친회 행사에는 출연료를 떠나 무 조건 사랑과 애종으로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박씨 종친 여러분들의 무궁한 영광과 발전과 건강을 기원하며 깊은 감사 의인사를전한다. 가수 박미영은 ‘천년쯤’으로 인기를 몰고 있으며, 현재 TBC 가요아카데미 MC, 한국 와송과 채류 홍보모델로 활동하고 있 다. 가수 강지는 본명이 박현아이다. 2010년 10월. ‘삼식이블루 스’로 데뷔 꿋꿋하게 살아온 지난날의 힘을 얻어 앞으로도 외 롭고 힘들어도 내꿈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히며, 희망과 꿈이 있는 노래로 2010 KBS전국노래자랑30주년 왕중 왕전 대상수상, 불우이웃돕기 자선공연활동과 유튜브 가수강 지TV에서방송에서팬들과만나고있다. 1942년 경남 창원에서 행산공 후예로 태어났다. 투철한 애종 정신으로 1969년 대산면 박씨종친회 총무직을 시작으로 창원 시지부,행산공 후 국담종중,행산재,밀성재 등 각급 종친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하 면서 종친간 애종으로 화합하는데 크게 기 여하였을 뿐만 아니라,경주 숭덕전을 비롯 국담,사미공,행산 공, 밀성재 등 각종 향사에 적극 참례하며 성손들의 규합(糾 合)을 이끌면서 박씨가 하나가 되는데 노력하여 타의 모범이 되고있다. 특히 지난 2012년 대산면종친회 창립 70주년 행사를 성공적 으로 이끌면서 종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도 하여 이 또한 애종정신으로종원들과호흡하였기에가능한일이다. 1969년 처음 종친회 참여이후 2021년까지 52년 동안 종사에 참여하면서헌신한공적이두드러진다. 1943년 전남 담양에서 도평의사공후 돈재공 후예로 태어났 다. 투철한 숭조심과 애종정신, 그리고 육영정신을 바탕으로 큰업적을남기며전국밀성인의위상을높여왔다. 노사 기정진, 간재 전우, 연재 송병선 선생의 연원을 두루 찾 아 학문을 이어받았고,이후 전남 화순,담양 등에서 서당을 열 어 후학들을 가르쳤으며,전북대학교 한문학과 객원교수,필암 서원 선비학당 학장, 장성군 청렴교육 강사로 전국 수많은 지 도자들을가르쳤다. 그리고 전국 서원과 향교에서 유림과 학생들을 상대로 현재 까지 강의를 이어가고 있어 행여 건강을 해치지 않나 염려스러 울 정도로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으며, 호주제 수호 등 綱常 의 법도 수호와 일본인들의 만행을 규탄하는데 앞장서고 가족 장학회를 설립하여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학업의 길을 열어주 고있다. 븮제4차 전국밀성인성손화합한마당전진대회븯 재능기부 가수및수상자 박준영명창 나팔박(본명박병일) 박상보 박주용 박미영 강지(박현아) 뱚영광의수상자들 박재복 현종이 가족들의축하를받으며함께하고있다. 애종부문박재복 육영부문박래호 박래호 현종이 장남 택열(右) 차남 봉열(左)의 축하를 받으며 함께하고 있 다. 비운의 독립운동가 박헌영의 아들로 이념과 사상적 이데올로기 속에 평생의 멍애를 지고 살 아오면서도 아버지 박헌영을 새롭게 조명하려 하였던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원경 성진(圓鏡 性眞) 대종사가 12월6일 오전 주지로 있는 평택 만기사에서 법랍 62년, 세수 81세의 일기로 영면 에들었다. 특히 이날은 어머니 정순년의 기제사를 준비 하던 도중 소식이 없어 기거하던 방을 방문한 동 료 스님에 의해 발견하였으나 이미 원적에 들어 가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1941년 태생인 원경 성진대종사는 원경 스님의 본관은 영해이고 속 명은 병삼이다. 한국 근현대사 공산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로 비운의 혁명가인 박헌영(1900~195 6)의 아들이라는 이름이 항상 따라다닌다. 송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0년 용화사에서 사미 계, 1963년 범어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60 년 용화선원에서 수선 안거한 이래 제방선원에 서 참선 수행했다.제10대 중앙종회의원,흥왕사, 청룡사,신륵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지난 2014년 4월 원로의원에 선출됐으며, 지난 2015년 1월 종 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원경스 님의 아버지 이정 박헌영은 남북한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남한 단독정부의 이승만은 남 북한 단일정부를 꿈꾼 박헌영을 그대로 두지 않 았고,월북하여 북한의 공산주의를 완성하고 6븡2 5 남침을 이루었으나 결국 김일성에 의해 미제 간첩으로처형당했다. 원경스님은 박헌영의 독립운동 자료를 발간하 기 위해 역사학도들이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 서관,미국문서기록보존소,러시아문서기록보존 소에서 11년간 자료를 찾아 모은 노력의 결실로 2004년 권당 600~700쪽에 달하는 전집 9권을 출 간했으며,이를통해 일제강점기에 피끓는 젊음 을 불살랐던 박헌영의 삶에 일반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남녀노소가 쉽 게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만든 만화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비운의 독립운동가-만화 박헌영』을 10여 년에 걸친 수정과 보완 과정을 통해 전6권에 담아 2014년 개정판으로 출간했다. 그 후 다 시 4 년 의 고 된 작 업 끝 에 해 방 후 3 년 간 박 헌 영 의 활 동 과 그 역 사 적 배 경 을 다 룬 『혁 명 과 박헌영과 나-무너진 하늘』 이라는 3권의 후속편 을 펴낸바 있다.이처럼 역사의 격량 속 비극적인 원경스님의 가족사는 스님이 더욱 치열하게 수 행하고 정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1960년 용 화선원에서 수선 안거한 이래 제방선원에서 참 선 수행하며 매진해왔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사 회복지과를 수료한 이후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 고 자비를 실천하기도 했으며, 경기도 지방경찰 청 경승 등을 역임하며 지역 포교 활성화에 앞장 섰으며, 이후 오롯이 수행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 왔다. 스님의 오랜 수행과 정진을 종단에서도 인 정해 2014년 4월 원로의원으로 선출됐다.원로의 원이 된 이후 스님은 남은 생을종단과 종도를 위 해 활동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평생 올곧은 수 행자의길을걸어수행자의사표로일컬어졌다. 12월10일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 사서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된 영결식은 생전 육 성 법어가 화성 용주사에 울려 퍼진 가운데 원경 성진대종사가 사바세계 인연을 다하고 무위적멸 의 세계로 들어간 사실을 온 법계에 알리자 하늘 도 이를 아는 듯 영결식이 이뤄지는 내내 비가 내 렸다. 사부대중은 큰스님 법문을 듣고 영전에 박 수를올렸다. “어린 시절 부처님 품안에서 격동기 세월에 목 숨을 유지하고 살았습니다. 길을 닦아 놓으면 그 길을 가는 분이 계시듯 다음에 수행정진할 스님 들이 와서 수행하지 않겠습니까. 부지런히 죽기 전에 최선을 다해 조그마한 (도량) 구석에 풀 한 포기라도 관리하고 사찰을 불사하는 것도 포교 라고 생각합니다.” 원경스님의 육성으로 스님은 민족화합을위해평생을바쳤다할수있다. 행장소개를 맡은 자광스님은 “근래 건강을 걱 정하는 제자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갈 때가 되었 으면 가야지 어찌 꺼리랴’ 하시던 대종사의 말씀 이 세연을 다함을 미리 알고 계신 가르침 이었 다”며 “지난 12월6일 누구도 부르 지 아니하고 세연을 다하시며 ‘올 때가 되어 온 것인데 누구를 원망 하랴, 갈 때가 되었으면 가야지 어 찌 꺼 리 랴 , 떠 나 는 자 리 나 에 게 마 지막 말을 재촉한다면, 그대여 슬 프거든 꽃이나 한 송이 올리게나.’ 라 는 쪽 지 한 장 열 반송으로 일러 주었다”고소개했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추도사에 서 “가 는 곳 마 다 일 이 있 다 고 할 정도로 스님께서는 대중을 위해 솔선수범해 도량을 정비하셨고, 전체 종도의 어른에 해당하는 원로회의 부의장 과 법계위원장을 맡아 법계를 중심으로 하는 승 가 법도를 바로 세우셨다”며 “은사이신 송담스 님께서 적어주신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 역여전 응작여시관’이라는 금강경 사구게를 큰 스님께서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눈에 담고 통찰 하셨을것”이라고밝혔다. 영결식은 호계원장 원행스님, 제19교규 본사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 동국대학교 이사장 성우 스님, 제2교구 시도회장 민학기, 국회 정각회장 이원욱의 조사에 이어 종단대표와 각계대표, 신 도대표 등의 헌화, 성법스님의 감사 인사를 끝으 로 원경 성진대종사의 법구는 스님 가르침을 끝 까지 되새기겠다는 사부대중의 만장과 함께 다 비장으로 이운됐다. 원경 성진대종사는 영원한 적멸의세계로들었다. 그리고 다비 후 영롱한 사리가 여러 점 수습되 어 스님의 참된 수행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었 으며, 사리와 스님의 유해는 만기사에 조성된 탑 에안치되었다. 한편 영해박씨대종회(회장 성수)임원진은 스 님의 열반부터 다비식까지 함께하며 스님의 삶 을 기 렸 다 . /자료제공=박용옥(영해박씨대종회) 대한불교조계종원로회의부의장원 경스님원적 다수의사리수습븣스님의참된수행의깊이를가름해볼수있어 박헌영의아들로 평생을사상적이데오르기속에불자로서의대중을위해솔선수범해도량을정비했던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부의장원경성진대종사가지난 6일원적에들어가10일용화사에서영결식을가졌다. 원경 스님의 유해는 다비식을 거쳐 사리 를 수습하 여 평택 만 기사 부 도탑에 안 장 되었다.<왼쪽> 원경스님의 영롱한 사리가 다수 수습되 었다.<사진위> 함양박씨 오한공파 온양 문중 박종덕 회장이 미수 (米壽)를 맞아 기념문집 ‘송암만록’을 지난 달 발간 했다. ‘송암만록(松岩漫錄)’은 35년간의 공직생활과 퇴직 후 귀향하여 지금에 이르 기까지의 여정을 그대로 담았다.종사에 몸바쳐온삶,유림인으로서의 삶, 귀향한 이후 농촌인으로 또는 봉사활동에 나서 는 등 있는 그대로를 솔직담백하게 옮겨놓아 후 대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평 이다. 송암만록은 ‘가족약사’, ‘송암의 살아온 길’, ‘송암의 삶에 흔적’, 수필부문은 공직에서 퇴직 후,공직생활 중에있었던생각들을 모아퇴직기 념으로 내놓은 작품집 귀향을 비롯, 너그러우면 민심을 얻게 된다는 관즉득중(寬則得衆), 귀향 후 농사를 지으면서 얻은 ‘농심철학’, 공동체 생 활에서 얻은 ‘교학상장(敎學相長)’, 오랜 경찰식 에서 얻은 ‘준법정신’, ‘자존심’, ‘노후생활지침’, ‘추억(追憶)’ 등과 각종행사에서 행한 연설문 등 으로꾸며져있다. 송암 선생은 시골 농촌에서 태어나 흙 마당에 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후 차차 성장하면서 비 포장도로로 초·중·고교를 도보로 통학하는 동안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로 세월이 왜 이렇게 더 디게 가는가하고 느낀 때도 있었지만, 대학 군대 직장생활 그리고 퇴직 후 귀향활동을 하면서 어 느덧 세월의 속도가 점점 가속되어 이제는 자동 차로 고속도로 상에서 88㎞의 속력으로 인생 종 착역을 향하여 달려 가고 있다. 참으로 새 삼 인생이 무상(無常) 함을 느낀다고 밝히 고있다. 왜정말엽 가난한 농 가에서 7남매 중 종가 의 장손으로 태어나 서당에서 한자공부를 하다가 초등학교에 입학 일어(日語)로 공 부하던 중 4학년 때 해방을 맞이하여 우리글인 한글로공부를하게 되었고,그후 중학교에진학 하여 3학년 때 6·25 동란을 겪으면서 가정적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였으며, 이어 고등학교를 거처 대학에 진학 법학을 전공 고등고시를 응시했으 나 실패하고, 군복무 후, 자유당말, 경기도에서 실시한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 했으나 타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발령이 보류되어 대기 중, 4· 19혁명으로 치안이 극도로 혼란한 가운데 학사 경찰관 모집이 있어 이에 응시경찰에 투신 만 35 년간경찰직에서공직생활을했다. 퇴임후에는 함양박씨 오한공파 온양문중의 소 종중 6대 종손으로서 4대봉사와 종중사에 올인 했다. 그러면서도 성균관 부관장과 관장직무대 행으로서유림인의길을걸어왔다. 한편 송암선생은 1997년도 출간한 수필집 븮귀 향븯(歸鄕) 2003도 고희 기념으로 출간한 븮마을의 수호수븯(守護樹)는 귀향 후 귀향활동과 전원생 활을 하면서 느낀 생각들을 모았고, 이번 출간하 는 븮松岩 漫錄븯은 선생의 일생생활에 대한 결산 집이라하겠다. 함양박씨오한공파온양문중박종덕회장 미수기념문집‘송암만록’펴내 수필집븮귀향븯(歸鄕),미수기념븮마을의수호수븯(守護樹)에이어세번째 송암 박종덕 고양시원당종중회 박봉준 회장(사진○)이 지 난 달 29일 경기도본부 총회에 참석 상정된 안건 을심의하고있다. 밀성박씨고양선조원당종중회 봉준회장은 202 1년 11월 29일 경기도 본부 정기총회에 참석 결 산 등 상정된 안건을 심의 승인하고 기타 토론시 간에 개선해야 할 점 몇 가지 토론 후 시정권고 후 1년 동안 수고하신 집행부에 격려의 박수를 보 내 고 회 의 를 끝 내 고 오 찬 을 함 께 한 후 해 산 하 였다. 또한 원당종중회 집행부는 2021년 12월 4일 밀 양 밀성재에서 개최되는 ‘전국밀성인성손화합 한마당 전진대회’에 참석 1년 동안 각 분야에서 활동하신 성손회원들중 모범적인 회원님들께 시상식을 지켜보고, 박관원 종친이 제조한 ‘배 다리 술’ 막걸리 3박스를 협찬하고 내년에도 더 욱더 빛내 주실 것을 당부하고 오찬을 함께하고 내년을 기약하며 모든 행사를 지켜본 뒤 상경했 다. /박봉준명예기자(경기고양시지부) 밀성박씨충헌공파경기도고양시원당종중회 경기도 본부 정기총회 참석 및 밀성재 화합 전진대회 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