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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12월31일 금요일 10 (제180호) 종합 1990년 우리 박문에는 경북대 사학과 문경현 교수의 논문으로 인해 울분에 휩싸이면서도 누구하나 반박하거나 책 임을 묻고자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러나 어느 종원 한분이 집요하면서도 차분하게 대응한 결과 자신의 논문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일 단락 되었다. 바로 그 주인공이 현 부산 본부박순엽고문이다. 박순엽 고문은 1936년 병자(丙子)생 으로 올해 만85세이다. 돌아올 미수(米 壽)를 맞아 생을 정리하는 자서전을 준 비하고 있다. 꼼꼼한 성격으로 메모를 좋아해 선조유적탐방길에는 수첩이 항 상들려있다. 박 고문은 병자호란에 청도 신지(섶 마리)에서 산청 덕산으로 피신하고 이 어 진 주 문 산 이 곡 에 정 착 한 통 사 랑 공 휘 동창(號 退山)의 11대손으로 진주 태생이다. 비록 부유하지만은 않지만 걱정 없을 정도의 집안에서 엄격한 훈 육을받으며성장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학문을 멀리하 고 한문을 배워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 업하고 천자문, 사자소학 대학까지 읽 다 보 니 또 래 보 다 네 살 터 울 아 래 의 아 이들과 중학교에 같이 입학했고, 진주 농고 2학년 재학 중에 입영하여 부산에 서 1년 6개월 근무 후 전역하면서 부산 과인연을맺었다. 형님이 포목 도매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사망하면서 남들보다 일찍 전역했 다. 부산으로 이거하여 부산진구 양곡 상 조합장을 역임했다, 당시에는 어려 운 경제여건으로 정부미 유통이 조합을 통해 이루어졌고 농수산부에서 조합장 을선출임명하는시기였다. 성실하고 근면성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조합을 이끌면서 지역주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제3대 진구 기초의원에 당 선되었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으로잠시외도에들기도했다. 그리고 서예지도자로 많은 후학을 가 르치기도 하면서 평탄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던 박 고문에게 재부박씨종친회에 서 부른 것이다. 재부박씨 40년사 발간 에 따 른 것 이 다 . 1949년 창립된 재부박씨종친회는 창립 40년을맞으면서그기록을책으로남기고 자하였으나남겨진자료가미흡한상황에 그는절대적으로필요한적임자였다. 당시 서예지도자로 80만원의 안정적 인 수입인데부산본부 사무국장 급여는 13만원으로 특별예우하여 30만원을 주 겠다는 것이다. 이에 망설이다 내가 필 요하고 종중을 위하는 일이라면 보람이 있을 것이고40년사를 만들었다는 자부 심과 종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 이라생각하고편집·집필에들어갔다. 이에 앞서 부산진구 당감동 분회 창 립을 주도하여 회장에 이르기까지 전국 에서최고모범분회로 당시 기금 1억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진구지부 사무국장, 지부장, 본 부 사 무 국 장 본 부 회 장 , 고 문 등 종 친 회 입 문 5 0 여 년 동 안 많 은 직 책 을 고 루 소 화해냈다. 부산본부 40년사 작업은 고난의 연속 이었다. 그러나 자료가 미미한 상태에서 도 출판은극찬으로 이어졌다.지금도 그 때가제일기억에남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20년 후 60년사 또한 후대에 물려줄 훌륭한 서적으로 만들어 냈다. 이에 부산본부 종원 및 임원진들은 지 금도 박 고문을 대할 때는 찬사와 존경 을표시한다. 1990년 경북대학교 사학과 문경현 교 수는 논문에서 ‘신라 박씨 골품에 대하 여’라는 제목으로 신라 박씨 상대7왕이 조작된허구이고,후대3왕도전부김씨 이지 박가가 아니다며, 조작으로 10왕 이 있 었 다 고 주 장 하 고 신 라 는 김 씨 가 운영한 국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기록은 부산국제신문 문화부 기자가 신 문에실어알려지게되었다. 그리고문교수는신라1천년은김씨단 일성에의해지배되었으며,성골과진골은 모두 김씨가 차지하고 박씨는 대부분 5두 품에머물고있는것이다고주장한다. 문 교수의 논문은 지금까지 박·석·김 에 의한 삼성교립설(三性交立設)을 부 정하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역사적 전통성을부인한것이다. 이에온국민이분통을해도숭덕전이나 서울 오릉보존회에서대책이없어수수방 관하고무기력한모습만보여주면서대성 (大姓)인박문의치욕으로다가왔다. 사무국장 재직시 문경현 교수와 부산 문화관광호텔에서 조우하여 “박가가 왕자왕손 성자성손이라도 다 양반은 아 니고 그중에 깡패도 있고 별의별 사람 이 있는데 누가 너를 죽일지 모른다.” 라며 겁박하고 한편으 로는 논리적인 웅 변으로 결국 사과를 받아냈다. 그리고 국제신문사 이광우 사장에게 직접 항의 하여 사과와 함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 송하다는말을이끌어냈다. 부산 수영의 임란의병장 박홍 장군에 대한 역사인식과 잘못된 오류에 대해서 도 누구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사 상과 이념을 초월하여 화합하려는 분위 기속에 부산도 화합하고 단합해야 하는 데 , 특 정 성 손 에 자 질 감 을 줄 수 있 는 문 구 를 고 쳐 달 라 백 방 으 로 뛰 어 다 녀 해결하면서 박홍 장군에 대한 현창사업 을주도했다. 이는 선조에 대한 깊은 숭조심이 아 니 었 다 면 이 루 어 낼 수 없 는 일 이 기 에 지난 4일 밀성박씨전국청년회 주관 ‘전 국밀성인성손화합한마당잔치’에서 자 랑스러운 밀성인대상 숭조부문 수상자 로수상의영예를안기도했다. 박 고문은 한국성씨연합회 총재를 맡 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는 다문화가정 이 늘어나고 창성창본이쉬워지면서 각 성씨마다심각한문제가대두된다. 이에 대해 박 고문은 “민법을 바꾸 어 성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시대 가 되었는데 이는 천륜을 어기는 것으 로 좌시할 수 없는 일”이이라며 단호 하게 말한다. 그리고 “종중이 단합되 면 무엇을 못하겠느냐”며 화합을 강 조한다. 또한 통일을 대비하여 족보의 체계를 잘 갖추어 족보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편 의를 제 공해 주 어야 한 다고 도 말한 다. 사실 중국교포를 비롯 해외에 거주하 는 교포들이 뿌리를 찾기 위해 방문하 면 이를 이용해 돈벌이에 급급한 나머 지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많다며 본보 의역할을강조하기도한다.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박순엽 고문 의 걸어온 길은 오직 종친을 위하고 성 씨문화창달에 기여한 흔적이 역력하여 이력을 정리하면서 오래오래 건강한 모 습으로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실 것을기대하며마무리해본다. ▲박순엽고문프로필 1936년 진주 생(生)/ 진주농고 토목 과 2년 중태(입영통지로 군 입대)/ 부 산대학교 행정대학원 수료/ 민주공화 당부산시 제3지구당 부관리장(1973)/ 부산진구 제3지구 양곡소매상조합장(1 975, 10여년)/ 부산진구 당감1동 개발 위원(1976)/ 부산진경찰서당감파출소 명예소장(1977)/ 전국서도민전 입선(7 회, 1982~1995)/ 한국서예교육진흥협 회 이사(1985)/ 박씨종친회 부산진구 지부 사무국장(1986)/ 재부박씨종친회 40년사 간행 편집·주필/ 밀성박씨대종 회 이사(1991)/ (사) 남명학부산연구 원원 부원장(1996)/ 한국서도협회자문 위원(1986)/ 밀성박씨대종회 감사(199 7)/ 성균관진사반 수로(1997)/ 부산진 구의회 의원 당선(1998)/ 민주평화통 일자문회의 위원(1998)/ 재부박씨종친 회 감사(1998)/ 한국서예대전 특선(19 99)/ 박씨종친회부산광역시본부 회장 (2002)/ 동래향교 장의(2004)/ 부산진 경찰서 향장(2006)/ 성균관 전인 자문 위원(2007)/ (사)한국성씨연합 총재(2 013)/ 밀성박씨은행산종친회 회장(201 4)/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2016)/ 삼오회(삼강오륜회)회장(2017) ‘박씨상대7왕이조작된허구이고후대3왕도전부김씨 다븯 1990년문경현경북대교수신라박씨골 품에대한논문븣전문성갖추어대응사과이끌어내 ■뱞종친탐방븣부산본부 고문 박순엽 박순엽고문이지난달부산본부사무실에서인터뷰에응하면서문경현교수에대해설명하고있다. 2012년부산본부유적탐방길에들른박정희대통령생가에서참배집례를보고있다.박고문은숭덕 전을비롯향교등대소행사에수많은집례를맡아왔다. 박고문은미수(米壽)를바라보면서도항상손에수첩을놓지않고메모하며학습(學習)을익혀가고 있다.(사진육영수여사생가에서) 2011년재부박씨60년사발간기념식에서공로패를수상받고있다. 박순엽현종이지난4일300만밀성인의 최고의 대상인 자랑스런밀성인대상 숭조부문을 수상받고 친지들의축하를받고있다. ‘호남 시단의 종장’이라 일컬어지는 조선 중기의 뛰어난 시인눌재박상 선 생이 한국 문학사에 남긴 시문학적 성 과를 체계적으로 연구, 정리하여 그에 대한 온당한 평가 및 위상을 정립함은 물론,그의업적을기리는계기를마련 하고,창작의원천자료로활용하기위 하여 기획 된 ‘눌재 박상의 시문학 연 구’ 논문집이 국내 저명한 교수 7명이 집필 도서풀판 ‘태학사(정가 24,000 원’를통해발간되었다. 첫번째논문‘눌재박상의인생역정과 문학세계의 특징’은 박영주 강릉원주대 학교 교수의 글이다.박교수는 천성이 구 애됨이 없고 기개와 절조가 높은 인물이 라고 했다. 아울러 송순, 임억령, 김인후, 임형수, 기대승, 정철, 백광훈 등의 배출 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이른바 호남 사림 의조종이라는주장을폈다. 두 번째 논문은 전남대 박명희 교수 의 ‘눌재 박상의 충주목사 시절 기묘 사람과의 시적 교유와 그 의의’이다. 충주목사시절에 만난 기묘사림 곧 공 서린,김세필,이약빙,이연경,이자 등 과총20제62수의작품중에서이자,이 연경,김세필관련작품에대해집중적 으로 연구한 결과를 보였으며, 기묘사 림들과 교유하면서 보여주었던 인간 적인 면모에 대해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음이주목된다. 세 번째 논문은 경북대학교 이구의 교수의 ‘눌재 박상의 오언시의 미학’ 으로 눌재 박상의 오언시에 대해 상세 하게연구한결과를기술(記述)했다. 네 번째 논문은 서울대학교 이종묵 교수의 ‘눌재 박상 율시의 미학’으로 눌재의 칠언율시가 강개와 침울을 기 본적인 미감으로 하는데 이의 연원은 도잠과굴원에있다고했다. 다섯번째 논문은전남도립대학교 최 한선 교수의 ‘눌재 서술시의 세계와 그 미학’으로최교수는부문미락과가사문 학의 공통점은 전술(傳述)에 있다면서 둘은 표기만 다를 뿐 서로 닮은 점이 많 다는 전제 아래 둘을 서술시의 갈래로 보았다. 그리고 금남과 함께 눌재를 호 남 기 록문 학 서술 시의 비조 로 보았 다. 여섯째 논문은 전 숙명여자대학교 정병헌 교수의 ‘박상 산문의 장르적 성격과 지향’으로 눌재는 수필을 통하 여 자신의 외면적인 성장과 내면도 풍 부하게 살찌워 가는 모습을 단계적으 로 보여준다면 서 현실적인 나 이와 함께 보다 정 밀 ( 靜 謐 ) 해 지는 글이 되어 가는 것이 눌재 의 글쓰기 특장 임을말했다. 일곱 번째 논 문은 전남대학교 김대현 교수의 ‘눌재 박상 문학의 연구현황과 과제’로 눌재 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착실하게 그 성과를되짚고앞으로의연구과제와방 향을제시하고있다. 대략 1,200여 편에 달하는 시문을 남 긴 눌재 박상의 본관은 충주이다.광주 광 역 시 서 구 방 하 동 에 서 찬 성 공 휘 지 흥의 둘째아들로 조선 성종 때(성종5 년,1474)에 태어나 연산 임금 때에 문 과에 급제했다.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왕을 비롯, 종친, 훈척들에 대한 과감 한 비판을 주저하지 않음으로서 관직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곧 연산 임금 때 총애를 받는 궁인의 부친으로 서 향리인 나주에서 권세와 탐학을 자 행하던 우부리(牛夫里)를 처단해 버 린 일, 중종 초기 언관인 사간원의 헌 납(獻納) 직에 있을 때 공신호를 남수 (濫收, 거두어들임)하는 것, 외척들을 중용(重用)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였 던 일, 중종 10년(1515)에는 담양부사 로 재직하던 중 반정으로 말미암아 폐 위조처를당한 중종의 첫왕비 단경왕 후 신씨(端敬王后 愼氏)를 복위시키 고왕비의폐위를 주도한 박원종 등반 정의 3훈신(勳臣)을 임금을 협박한 죄 로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 린일 등으로 여러 차례 옥에 갇혔다가 풀려나기도 하고, 먼 곳으로 유배당하 기도 하였으며,상주·충주 목사(牧使) 등주로외직으로전전하였던것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불의에 대한 과감 한 지 적 과 비 판 은 이 시 기 정 신 적 지 표 가 되 어 이 후 의 리 사 상 을 선 도 한 인 물 로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당시 사림의 영수 조광조(趙光祖)는 “그의 ‘신씨복위상소’는 강상(綱常)을 바로 잡은 충언이었다.”고 극구 칭찬한 바 있다. 눌재는 외직으로 담양부사, 충주목 사로 재임하던 때에 두차례에 걸쳐 청 백리로 뽑혔고, 문장으로도 일가를 이 루어 성현(成俔)·신광한(申光漢)·황 정욱(黃廷彧) 등과 아울러 서거정(徐 居正)이후의 사대가(四大家)중 한 사 람이라고불리기도하였다. 눌재박상의 시문학 연구논문집발간 한국문학사에남긴시문학적성과체계적연구정리 고 창 치 유 드 림 랜드 힐링닥터 박 세근 현종이 ‘100 세를 위한 치유메 뉴’책은 펴냈다.1 00세 시대 백세를 살더라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이 시대에 요양원에서, 중환자실에 서, 병상에서, 치매 등으로 가족과 이 웃에 부담주고 짐이 되는 괴로운 100 세는바라는바가아니다.석양노을이 더 아름답다는 말처럼 노후를 즐겁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지침서가 될 듯하다. 이 책 은 흔 히 놓 치 기 쉬 운 것 들 을 카톡이나 유투브에서 좋은 글들을 모으고 그동안 축적된 약초지식과 1 만여평의 넓은 약초농장에서 체득 한 건강 백서를 오아 되새김하는 심 정으로 엮었다. 힐링닥터 박세근 현종은 평생을 교 직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고창군 교육감으로 정년퇴직후 한국폴리텍 대학 고창대학 연수원장으로 열린 교 육사회·평생학습사회 구축을 위해 노 력하고 한국예총 고창지회장을 맡아 향토문화·예술발 전을 위해서도 진 력하였다. 박 씨 중 앙 청 년 회 창립멤버로, 고 창군 청년회장, 밀 성박씨 순찰사공 후 춘파공 종중 회 장으로종중발전에도기여해왔다. 현재는 ‘선운산 약초농원 영농법 인’ 대표를 맡아 원예 치유농원 ‘고창 드림랜드’를 설립 농촌진흥청 시범 치유농장을 운영하면서 심신안정, 긴 장완화, 스트레스 해소를 통해 건강 을 도모하는 치유농업을 통한 치유도 시건설에열장을쏟고있다. 저서로는 수상집 ‘생각하며 사는 삶’, 칼럼·논설·연설집 ‘선운산 솔바람 소리’, 시집 ‘선운산가’, 창의성 교재 ‘엉뚱한이야기속의창의성’등이있다. 특히 인재양성(육영)을 위해 D.S. A연수원을 개설하여 2022년 지방선 거를 준비하는 성손들을 위해 발음교 정, 나의 성공을 위한 이미지 메이킹 등 등용문에 걸림돌이 되는 ‘스피치’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연락처 0 10-3625-5087,박세근) 힐링닥터박세근‘100세를위한치유메뉴’책 펴내 축적된약초지식과1만여평의약초농장서체득한건강한삶옮겨 박세근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