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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10월31일 일요일 10 (제178호) 종합 주요 공사 실적현황 고 고객 객의 의새 새로 로운 운가 가치 치와 와미 미래 래 를 를건 건설 설하 하는 는성 성진 진종 종합 합건 건설 설 고객 중심, 가치창조, 미래선도 라는 경영이념을 한 마음 한 뜻 으로 실천하고 있는 저희 봑성진종합건설 임직원 일 동은 고객 여러분으로부터 더욱 깊은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최 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봑성진종합건설 대표이 사 박남희 영천본사:경상북도영천시북안면운북로1631 TEL:054)337-2687 대구지사:대구광역시북구구리로199,2층 TEL:053)322-2687 율하동해도프라자신축공사 세진빌딩근린생활시설신축공사 이노빌딩근린생활시설신축공사 세민타워근린생활시설신축공사 영우빌딩근린생활시설신축공사 부산시연제구거제동1469-13근생시설신축공사 긴급신고공동관리센터신축공사 용암면사곡리공장증축공사 농업회사법인㈜제이팜스제3공장신축공사 경북신문사옥신축공사 동호동장례식장신축공사 신양리다세대.다가구주택신축공사(2개동/총16세대) 안동영명학교예능교육관증축건축공사및내진보강공사 ㈜한국단자부품근린생활시설신축공사 행복나눔파인토피아봉화조성사업 금호공업고등학교장애인편의시설승강기증축건축공사 청도군여행자센터건립공사(건축,기계) 고덕동다세대주택및근생시설신축공사 서원 의 본래 기 능은 강 학이 다. 광주 벽 진서 원은 광주광역시 서구청 지방보조금 지원 사업으로 일 반 인을 대 상으 로 현재 진 행 중인 ‘회재 로 따 라 인 문 학여 행, 상 시 진 행되 고 있 는 전 통생 활다 례강 좌,지역아동센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인성 교육 등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 븮유교지원국고보조사업기관븯으 로선정되어유교아카데미강좌를열고있어지역 민 들의 관 심과 사 랑이 이 어지 고 있 다. 지난 9월 개강한 ‘회재로 따라 인문학 여행’은 (사)교육네트워크 동행의 주최로 전체 10강좌 로편성되어이중현장체험2강좌중1강좌는최 정미 문화재 전문위원의 안내로 전북 정읍의 무 성서원, 전봉준 유적, 은선리 삼층석탑, 피양정 등을 찾아 우리나라 건축양식과 아름다움을 체 험하며 건축물의 부자재 등을 상세히 알아보는 시간을가졌다.그리고두번째현장체험은지난 8일 광주 5·18 역사기록관, 의병장 고경명 장군 이 배향된 포충사, 회재 박광옥 선생의 애민정 신을 엿볼 수 있는 전평제(개산방죽)을 돌아보 는시간으로함께해본다. 광주광역시 금남로 3가에 있는 광주 5·18 민 주화운동 기록관은 너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 이 다 . 생 사 를 확 인 하 기 위 해 찾 은 도 청 앞 상 무 관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신을 붙들고 오열하 는 사람과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날의아픈역사는써내려간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의 생생한 장면 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광 주에서 일어난 시민들의 의로운 항쟁이며 대한 민국을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로 만든 역사적인 운동이다.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가 보여 주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담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기록들은 광주시민들의 노력으로 2 011년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에등재되었다. 1층 상설 전시실은 군부독재를 청산하고자 평 화적으로행해졌던5월16일횃불대행진을비롯 한 5월 민중항쟁 당시 계엄군에게 학살된 165명 의 희생자와 계승·투쟁 과정 중 희생된 희생자 들을 추모하는 공간,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에 격 렬해진 광주시민들의 모습, 계엄군의 언론검열 에 의해 침묵하는 언론을 대신하여 시민 스스로 탄생시켰던 시민언론인 투사회보를 소개하는 코너, 부상당한 시민군들의 치료를 위해 자발적 으로 헌혈을 했던 광주시민들의 모습, 해방광주 븡대동세상의상징이었던<양은대야>,무장한공 수부대를 향해 죽음을 각오하고 전진하던 광주 시민과 시민군의 모습을 체험해보는 공간, 공수 부대에 의해 학살당하고 시신의 흔적조차 찾지 못한 행불자를 기리는 코너, 우리나라 민주주의 수립을 위해 6월 민중항쟁이 어떠한 역할을 했 는지 소개하는 코너, 5·18기록물의 유네스코 세 계기록유산 등재과정을 소개하는 코너, 5월 민 중항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야외 추모공간과 로비에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의 종합안내역 할을수행하는공간으로꾸며졌다. 2층은 동학 농민 혁명을 시작으로 광주학생독 립운동,제주4븡3항쟁,4븡19혁명,부마민중항쟁,5 ·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중 항쟁의 역사와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향한 현 재까 지의 여정 을 소개 하는 각종 기록 물이 전시 되 어 있고, 3층에는 세계 기록유산, 4층은 열람실, 5 층은 각종 기록물을 저장하는 공간, 6층은 1980 년 당시의 윤공희 대주교 집무실을 복원한 대주 교집무실,침실,7층은다목적공간이다. 이날 기록관을 찾은 일행 중에는 당시 현장에 서함께했던사람과이를멀리서지켜보며가슴 조였던 사람들이 함께하며 그날의 생생한 장면 이파노라마처럼스쳐간듯당시를회상해본다.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관이며 의병장인 고경명(高敬命)과 고종후 (高從厚)·고인후(高因厚) 3부자와 유팽로(柳 彭老)·안영(安瑛)등 5위를 배향한 사우로 광주 광역시기념물제7호이다. 1601년(선조 34) 호남 유생들이 광주 제봉산 (霽峯山)아래에 사당을 건립했고,1603년(선조 36)에 박지효(朴之孝)등 문인과 후손들이 사액 을청해‘포충(褒忠)’이란액호를받았다. 고경명을 주벽으로 제향하고 동배위에 고종 후와 유팽로, 서배위에 고인후와 안영을 배향했 다.포충사는 사액 사당으로 흥선대원군(興宣大 院君)의 서원 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훼철되지 않았던 사우이다. 제봉(霽峯)고 경명(高敬命)은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장 원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호남 지방에 서 최초로 의병 6,000명을 모집하여 금산전투에 서 순절하였다. 고경명의 장남인 준봉( 펭峯)고 종후(高從厚)는 1577년(선조 10)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가했으나, 아버지와 아우를 잃은 뒤 진주성전투에서 김천 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순절하 였다. 고경명의 차남인 학봉(鶴峯)고인후(高因 厚)는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 때 부형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순절하 였다. 월파(月坡)유팽로(柳彭老)는 1588년(선 조 21)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이 일어 나자 의병을 일으켜서 고경명군과 함께 금산전 투에서 순절하였다. 안영(安瑛, ?∼1592)은 임 진왜란때금산전투에서순절한인물이다. 선조실록에 ‘고경명의 사당에 편액을 하사하고 제사하는일에대해의논하다’를통해더알아본다. 『전 감찰 박지효(朴之孝)가 상소하여,고경명 (高敬命)의 사우(祠宇)에 편액(扁額)을 하사하 고 본주로 하여금 봄·가을로 치제하게 하기를 청하니,상이예조로하여금의논하도록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뷺호남선비들이고경명을위해 사당을세우고나서편액을하사하고치제해주기 를 청 하니 이 상소 를 올리 게 된 것 입니 다. 생 각건 대 임진년 변란 초기에 각 고을이 바람에 쓸리듯 이 무너져 한 사람도 왜적에게 항거하는 자가 없 었는데,고경명은시골에서한산하게살던사람으 로 서 임금 의 명을 기 다리 지 않고 앞장 서서 의 거를 주창하였습니다.오합지졸을 이끌고 죽을 각오로 국사에 진력함으로써 온 도내의 인심을 흥기시켰 는데, 불행하게도 적과 대전하다 이기지 못하여 부자(父子)의 시체가 싸움터에 뒹굴게 되었었습 니다.그의의기와충렬이영원히후세사람들을 용동시킬 수 있기에 조종에서 정경(正卿)으로 포증(褒贈)하였습니다. 그런데 온 도내의 공론 이, 추증한 은전이 김천일(金千鎰)·장윤(張潤) 등과 같지 못함을 불평하여, 지난해 상소를 올 려 증직을 더해주기를 청하는 한편 사적으로 사 우를 세우겠다고 청하자, 상께서 증직을 더하는 문제는 다시 의논하기 어렵고 사우에 대해서는 사적으로 세우도록 윤허하셨습니다. 이번에 사 우를 세운 것이 선비들이 사적으로 세운 것이기 는 하지만 조정의 명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니, 특별히 편액을 내리도록 명하시어 충절을 현양 (顯揚)하는 뜻을 보이게 하는 것이 합당할 듯합 니다. 봄·가을의 치제에 대해서는 사우를 사적 으로 세웠으니 향사(享祀)도 사적으로 하게 하 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은 이른바 ‘향선생(鄕先 生)이 세상을 뜨면 사(社)에서 제사지낼 수 있 다.’는 것이니, 굳이 공가(公家)에서 제물을 번 거롭게준비할필요가있겠습니까? 상 소 내 용 에 인 용 한 바 이 순 신 (李 舜 臣 )에 대 해서는 조정에서 사우를 세우도록 명하고 편액 을 하사했으며, 해마다 봄·가을에 향을 내려 치 제하게하고있습니다.만일이를가지고논한다 면, 고경명과 이순신이 국가의 일을 위해 죽은 것은 똑같지만, 경명은 앞장 서서 창의(倡義)한 것이가상하여충성을다해왜적을친공도매우 큽니다.순신은향을내려치세하는은전을받고 있으니, 경명이 1등급 낮기는 하지만 청한 대로 본주에서 제사를 차리게 하더라도 외람된 포상 (褒賞)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봄·가 을로향을내리는것은사체가지극히중요한일 입니다. 순신의 일에 대해서는 조정에서 강정 (講定)한것이므로감히의논할수없지만,신들 의 생각에는 예법에 있어서 온당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고경명에게 치계하는 일 을신들이감히그들이진달한대로위에주청하 지못하겠습니다.그러나 만일한번쯤사람을보 내 치제하게 한다면 또한 선비들의 마음을 격려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때의 은전에 관한 일 이니 상께서 재결하시어 시행함이 어떻겠습니 까?뷻 하니, 전교하기를, 뷺고경명의 충성은 지극 히가상하다.그러나이순신과동등하게논할수 는 없으니, 사적으로 세운 사우에 편액을 내리 고관아에서치제하는것은 지나친듯하다.편액 을 내리는 일이 합당한지의 여부를 대신들에게 물어보라.사우를세운이후에관원을보내치제 하는것은불가할것이없을것이다.뷻하였다.』 □ 박지효(朴之孝, 1553~?)는 본관은 충주, 1553 년 서창동 절골마을에서 박대수(朴大壽)의 맏이로 태어났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경(子敬), 호는 육류정(六柳亭)이다. 하촌(荷村) 박정(朴禎) 의 증손이고 박호손(朴虎孫)의 손자이다. 찬성공 (贊成公)박지흥(朴智興)으로부터5세손이다.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에게 글을 배워 학 문이깊었다고전해진다.임진왜란이일어나자고 경명(高敬命)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는 데,고경명은박지효의부모가연로하였기때문에 그의 의병활동을 만류했다. 당시 남평현감(南平 縣監)한순(韓楯)이 군사를 이끌고 광산(光山)에 갔다가패하자,방백이시백(李時白)의건의로남 평 현감 이 되었 고, 난리 가 끝난 뒤 에도 직 책을 유 지했다. 그는 고경명을 위해 세운 사당에 편액을 하사해달라고호남유생들과함께임금에게상소 하여,‘포충(褒忠)’이라는액호(額號)를받았다. 광주 서구 매월동에 소재하고 있는 개산방죽 은 지난 2006년 공원으로 지정된 1만3,000여 평 의도심속휴식공간이다.연꽃만발한호수를중 심으로 넓은 산책로가 조성돼 있는 전평제는 조 선 중기 문인으로 임진왜란에 븮약무호남 시무국 가븯를 떠받친 회재 박광옥 선생이 1566년 사재 를 들여 저수지를 만들고 개산방죽이라 이름 붙 였던 곳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후반인 1943년 에 개축한 개산방죽은 ‘전평제’라는 새로운 이 름을 얻어 지금에 이르고 있어 시민들은 본래의 이름으로 환원을 바라고 있어 본지에서는 개산 방죽으로표기해본다. 개산방죽은 개금산과 백마산에서 유입되는 물이 저장되어 가뭄을 걱정치 않고 편안하게 농 사를지을수있는수리시설이다. 당시 이 일대 임야가 수리에 취약하여 농민들 이 큰 어려움을 겪자 회재 선생이 사재를 내어 저수제방을만든것이다.18세기읍지를모아편 찬한 븮여지도서븯에 따르면 븮1568년 축조한 개산 제는 둘레 2,649척, 수심 4.5척의 방죽븯으로 꽤 큰규모였음을알수있다. 회재 선생이 쓴 향약의 서문에 븮땅이 메마르 고 물이 낮아서 가뭄이 들기 쉽고 홍수가 지면 모두 재앙을 입게 되므로 부자는 가난하기 쉽 고 가난한 사람은 떠나기 일쑤이다.불과 수 십 년 동안 온 마을이 썰렁해져 천민이나 후생들 이 어찌 그 본심을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븯라 고 쓴 대목이 있다. 치수는 나랏일이거니와 거 기에 투입될 막대한 예산과 노력을 짐작해보 면 공동체 정신이 아니고서는 결코 엄두를 낼 수 없는 대사이다. 회재는 방죽을 쌓아 농업용 수를 확보하고, 그 위에 정자 븮수월당븯을 지어 기대승, 박순, 고경명 등과 경세와 학문을 논 하며 교유했다.개산방죽은 이후 4세기에 걸쳐 이 지역 농사의 젖줄이 되었고, 지금까지 연꽃 이 피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 다. 회재 박광옥 선생은 1526년 1월 26일 광주광 역시 서구 매월동 회산에서 성균관 사예인 곤 (鯤)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본관은 음성(陰城) 이고 자는 경원(景瑗)이며 회재는 호이다. 21세 에 소과에 합격하고, 44세에 학행(學行)으로 내 시교관을 지내고 49세에 운봉현감에 제수되어 황산대첩비를 건립하였으며, 별시(別試)에 합 격해예조정랑사헌부지평과성절사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영광군수 밀양부사 등을 역 임한 후 향리에 돌아와 개산송당(蓋山松堂)을 짓고 후진양성에 매진했다. 1592년 선생이 67세 때 임진왜란을 당해 전국이 왜적에게 유린되어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았다. 선생은 인근에 살던 고경명(高敬命)나주의 김천일(金千鎰)과 의병을 일으켜 나라와 민족을 구출하자고 다짐 하고 의병을 모집해 김천일과 고경명에게 출전 케하고 본인은 후방에서 군수물자를 지원하여 큰성과를올리게하는등의병과군량을확보하 여그뒷바라지를도맡았다. 회재 박광옥 선생은 조선시대 호남 3대 부자 (보성 안방준, 해남 윤선도)로서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 가뭄에 시달린 고을 주민을 위해 저수지(개산방죽)를 축조하고, 광주향교를 중 수해교육에앞장섰다.이러한회재선생의애민 (愛民)과 충의(忠義)정신은 ‘노블리스 오블리 제’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충신(忠臣)이라고 역 사는기록하고있다. 회재로따라인문학여행븣븮약무호남시무국가븯를떠받친회재박광옥의벽진서원 개산방죽,회재박광옥선생이1566년사재를들여저수지를만들고개산방죽이라이름붙였던곳이다.사계절이아름다운개산방죽 은힐링장소로많이찾고있다. 회재로따라인문학여행현장학습이지난8일개최된가운데 개산방죽을 찾은 수강생들이 수월당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수월당은1568년개산방죽가운데작은섬을만들고세 운정자로고봉기대승,사암박순(충주박씨),제봉고경명,매 정이만인선생 등 명현석학들과 성리학을 담론하고 시를 읊어문화와역사를 간직한곳으로지역주민들이지역문 화유적 찾기운동으로광주서구청에청원하고 전평제근 린공원정비사업의일환으로2013년복원하게되었다. ▲광주5·18민주화운동기록관 ▲임진왜란의병장을배향한포충사(褒忠祠) ▲개산방죽(전평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