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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7월31일 토요일 4 (제175호) 기 획 △박병인(인천시 연수구) △박연희, 박해 용(강원 동해시) △박인근(충북 청주시) △박 봉순(충남 서천시) △박희중(세종시) △박창 균(경북 영천시) △박종백(경북 포항시) △박 상철(경북 예천군) △박종욱(경북 청송군) △ 박진하(대구 수성구) △박만순(부산 연제구) △박영덕(부산 수영구) △박문호 , 박성국, 박 재헌(경남 창원시) △박래수(경남 진주시) △ 박정영(경남 밀양시) △박문갑(경남 통영시) △박갑영(경남 산청군) △박명호(경남 의령 군) △박태식(경남 사천군) △박철환(전남 장 흥군) △박종인(전남 광양시) △박래호(전남 장성군) △박형상(전남 고흥군) △박영희(제 주시애월읍)△박순원(제주한림읍) ▶ 서울 △박동규(중구) △박일해(강남구) △박종 은(구로구) ▶경기 △박정흠(고양시) △박정하(광주시) △박 병직(성남시) △박종선(이천시) △박현석(안 산시) △신라오릉보존회. 박종무(수원시) △ 박광원. 밀양박씨성산종친회(용인시) △박세 근(양평군)△박정범(가평군) ▶강원 △박영숙. 박옥선. 박영길(동해시) △박종 구. 박조균(강릉시) △박재천(원주시) △박순 호(평창군) ▶충북 △박종일(청주시) △박우열(제천시) △박 용운(괴산군) ▶충남 △박병호(대전시) △박병은. 박문규. 박행 남(세종시)△박노호(공주시) ▶경북 △박세룡(구미시) △박순대. 박홍수(포항 시) △신라오릉보존회·숭덕전(경주시) △박 병식. 박병립(경산시) △박영상. 박지일. 박종 우(청도군) △박문학(울진군) △박호규. 박명 술(영양군) △박시옥(예천군) △박일흠(의성 군)△박종욱(청송군) ▶경남 △박윤옥.박태희.박소영.박대병.박희영. 박부덕. 박정현. 박원규(밀양시) △박덕기. 박 만종. 박영호(진주시) △박자수. 박재헌. 박능 출(창원시) △박현철(거제시) △박용선(양산 시) △박희보. 박용주(창녕군) △양영숙. 박용 범. 박철암. 박충기(산청군) △박우생. 박순택 (함양군) △박용순(함안군) △박남술. 박재 하. 박구수(고성군) △박승제. 박강길. 박영남 (남해군)△박남구(거창군) ▶대구 △박세운. 박경해. 박병식(동구) △박관식. 박전(수성구) △박병희(서구) △박효명. 박명 숙. 박성동. 박민서(달서구) △박재헌. 박종석 (북구) ▶울산 △박종대.박흥렬(남구) ▶부산 △박병우 (동구) △박옥수(남구) △박양금 (해운대구) △(북구) △박영덕(수영구) △박 용도(부산진구) ▶전북 △박상선(군산시) △박찬우(전주시) △박 원식(부안군) ▶전남 △박찬근(순천시) △박래호(장성군) △박 행순(곡성군) ▶광주 △박창욱. 박철우. 박용철. 박기영. 박래지 (북구) ▶제주 △박경도(제주시) △박용덕(경남 창원) △박상호(경남 진주) △박면용(함양박씨잠야공파종친회장) 한빛신문은 성손여러분이 함께만들 어가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한빛신문은2007년창간이후선조님의행장과종중의약사집성촌,본관별세거지변천사등 수 많은자료를기록으로남기는방대한 작업을하고 있는‘성손모두가함께만들어가는종보’입 니 다.그역할을충실히하면서선조님의현창사업과후손들에게물려줄박문(朴門)의뿌리를연 구 하고다듬어데이터베이스화하는데앞장서겠습니다. 한빛신문임직원일 동 뱚뱚제보및구독신청안내:053-588-7300,070-4250-0078 ▶fax053-581-0067▶e-mail:parkss1012@han mail.net 뱚※성손여러분이납부하여주신구독료는신문발행에큰도움이됩니다. 월3,300원으로종보를함께만들어가는주인이되어주세요. 구독료를가까운금융기관에서자동이체(월3,300원)하여주세요 뱚뱚뱛구독료자동이체계좌453013-55-000691농협한빛신문 [6월21일에서7월20일입금고객명단] 뱚▶자동이체등록해주신분 뱜▶지로납부및송금하여주신분 ※2021년 7월 2일자 E-우리은행 한빛신문구 독료로 입금해주신 고객님과 2021년 4월 13 일자 PC신한은행 3100로 입금해주신 고객 님께서는연락 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 TEL: (053)588-7300 뱜▶후원하여주신분 문의공 박항(朴恒, 1227~1281)은 신라의 제54 대 왕인 경명왕의 일곱 번째 왕자 강남대군의 11 세손이자 춘천 박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한림원에등용되었다. 충주목사를 시작으로 공적을 쌓아 정1품직에 까지 올랐는데, 공은 매사에 공명정대하며 문장 이 뛰어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왕에게 직언을 망설이지 않고 백성에 귀 기울이는 성품 이 어진 목민관이었다. 당시 고려에 주둔한 원 나라 병사들의 행패가 심하였음을 고려의 사신 으로 원에 간 박항이 원나라 황제에게 상소하여 바로잡기도하였다. 특히 효성과 관련하여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당시 박항은 개경(개성)에 있다가 부모의 사망 소식을전해들었다.황급히춘주성(춘천의옛이 름)으로 돌아온 그는 성 아래 쌓인 시체 더미에 서 부모의 시신을 찾아 헤맸다. 시신을 찾을 수 가 없자 부모와 비슷한 모습의 시체가 발견되면 모조리 수습하여 매장했는데 그 수가 300여 명 에이르렀다한다. 박항이 55세의 나이로 별세하자 충렬왕이 그 의 치적을 기려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 임금의 장인이나 정일품공신에게 주던 작호. 받는 이의 본관인 지명을 앞에 붙인다)에 봉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춘천에 세거 하면서 박항(朴恒)을 시 조로 하고, 춘천(春川)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 (世系)를이어오고있다. 고려 개국 공신 장절공 신숭겸은 배현경, 홍 유, 복지겸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해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대구 팔공 산 전투에서 태조가 견훤의 군대에 포위되자 본 인이 태조의 옷을 입고 변장해 싸우다 전사했다. 적군은 전사한 신숭겸을 태조로 착각해 목을 베 어 갔고 태조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금으로 머 리를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고 전한다.신숭겸 묘 는 독특하게 봉분이 3개로 되어 있는데 이는 태 조가 금으로 만든 머리 때문에 묘가 도굴될까 걱 정해서 내린 조치라고 한다.묘가 들어선 자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힌다. 소나무가 둘러싼 묘역에 서면 춘천 시내까지 내 다보인다.묘역 주변으로 묘비와 사당, 신도비가 서 있다. 묘역은 신장절공묘역이라는 명칭으로 강원도 기념물 21호에,팔공산 전투 과정과 신숭 겸의 활약상 등을 자세히 담은 신도비는 강원도 유형문화재155호에각각지정되어있다. 월남 파병 용사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 며 국가적 공헌에 대한 자긍심 고취와 향수를 느 끼도록 하고자 당시 훈련장이었던 화천군 간동 면 오음리 바람버뎅이에 39,788㎡의 규모로 조 성되었으며,월남 파병 용사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이곳 옛 훈련장이 통일 애국교육의 장으로 다시태어났다. 2008년 10월부터 본격적인 개장을 시작한 이 곳에는 기념관(전시관), 훈련체험장, 피크닉장. 구찌터널, 전투장비전시, 월남전통가옥, 중대전 술기지, 내부반, 식당 등 많은 볼거리와 편의시 설을 갖추고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는 주변의 주요 관광자원으로는‘파로호 선착장’, ‘평화의댐’,‘세계평화의종공원’등이있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과 양구군 방산면 지역 에 걸 쳐 있 는 댐 . 높 이 1 2 5 m, 길 이 6 0 1 m, 총 저 수 용량은 26억 3,000만 t이다.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 북한의 금강산 댐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 로축조하기시작했다. 1단계 공사는 1987년 2월 시작되어1988년 5월 완성되었고, 이후 댐 건설의 당위성을 입증하지 못해 중단되었다. 문민정부 때 시행된 1단계 공 사에 대한 감사 결과, 댐 건설은 정권 안보 차원 의 조급한 과잉 대응이었던 것이 밝혀졌다.이후 홍수 조절 기능의 역할로 댐 건설의 필요성이 다 시 대두되어 2002년 9월 2단계 증축공사가 시작 되었고,2005년 10월 완공되었다. 높이 530m. 칠절봉(1,172m)과 마산(1,052m) 사이의 안부에 있으며, 오래전부터 관동지방과 영서지방의 중요한 교통로가 되고 있다. 남쪽의 대관령, 북쪽의 추가령과 함께 3대 영으로 불린 다. 고개 길이는 약 60㎞이다. 이곳에 나 있는 도 로는 1981년 국도로 승격되고, 1984년 10월에 2 차선으로 확장 및 포장 공사가 완료되었다.고갯 길 구비 구비에서 바라다 보이는 동해의 모습이 장관이며, 이곳에 안개가 감돌아 봉우리를 덮게 되면 대자연의 장엄한 모습이 연출된다. 단풍이 아름답고겨울에는강설량이매우많다. 흘리 마을에 있는 마산봉 산비탈인 진부령 남 쪽 100m지점에는 특별한 시설이 없어도 훌륭한 스키장의 조건을 갖추었다. 1971년 북설악 스키 장으로 개설, 진부령 스키장으로 불리다가 1984 년 겨울부터 알프스 스키장으로 이름을 바꾸었 으며, 500~1,000m 되는 슬로프 3개와 리프트 시 설등현대장비가갖추어져있다. 휴전선과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m 고 지의 통일전망대에 서면 금강산의 구선봉과 해 금강이 지척에 보이고 맑은 날에는 옥녀봉,채하 봉, 일출봉 등을 볼 수 있다. 발아래의 휴전선 철 책을 사이에 두고 대치해 있는 최전방 초소는 남 북한의긴장감을느끼게한다. 연간 1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고성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이곳엔 북녘에 두고 온 산하 와 가족을 그리는 실향민과 통일을 염원하는 이 들을 위한 성모상, 미륵불상, 전진철탑 등 종교 적인 부대시설과 장갑차, 탱크, 비행기 등 안보 교육용전시물이있다. 발아래에는 2004년 12월 개통된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로 금강산 육로 관광이 이루어지는 모 습을볼수있다. [6븡25전쟁체험전시관] 동족상잔의 비극을 교 훈삼고 민족화합과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 기 위 해 6 븡2 5 전 쟁 을 체 험 할 수 있 는 6 븡2 5 전 쟁 체 험전시관을 개관·운영하고 있다. 6븡25전쟁의 참 상과 당시 상황을 사진과 영상, 자료와 유물 등 을통해현실감있게체험할수있다. 특히 6·25 전쟁 당시의 야간 전투 모습을 그대 로 재현해 놓은 6·25 전쟁 체험실, 전사자 유해 발굴실을 둘러볼 수 있으며, 6·25 전쟁 자료실, 전쟁에 참여했던 16개국의 유엔군에 대한 내용 을다룬유엔군참전국실,6·25전쟁중동해에서 의 주요 전투를 다룬 기획 전시실도 마련되어 있 고,병영 체험실에서는 옛날과 오늘날의 군대 내 무반을비교할수있도록전시하고있다. [DMZ박물관] 2006년 3월 남북 관광교류 타 운으로 공사를 착공했으나, 2008년 12월 강원도 DMZ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2009년 8월 1 4일개관했다. 설립 목적은 남북한 분단의 현장을 안보, 평 화, 관광 거점 지역으로 중점 육성하고 미래 통 일시대를 대비하여 비무장지대를 세계적인 역 사문화의관광명소로만들기위함이다. 전시공간은 축복받지 못한 탄생, 냉전의 유산 은 이어지다, 그러나 DMZ는 살아 있다, 다시 꿈 꾸는 땅 DMZ, DMZ 영상실 등으로 나뉜다. 븮축 복받지 못한 탄생븯에는 냉전이 낳은 비극, 민족 분단의비극등이전시되고있다. 븮냉전의 유산은 이어지다븯에는 아픔과 비극의 땅 DMZ,그날의 기억,전쟁의 참상,전쟁의무덤 DMZ,냉전 뒤 감춰진 전쟁,냉전의 흔적을 찾아, 멜팅포트 정막속의 사람들, 땅속의 소리 없는 전 쟁 대인지뢰, 호국 선영의 숨결을 찾아, DMZ 묻 힌그날의증언등이전시되고있다. 븮그러나 DMZ는 살아 있다븯에는 공존과 희망 의 땅 DM Z , 역 사 의 땅 DM Z , 생 명 의 땅 DM Z , 희망과 평화의 가교 승일교, DMZ를 흐르는 강 줄기등이전시되고있다. 븮다 시 꿈 꾸 는 땅 DM Z 븯에 는 평 화 철 도 , 다 시 열 리는 기찻길을 따라, 하나가 되는 길, 남북 통일 의 길, 장벽이 허물어지는 그 날까지, 평화의 나 무가 자라는 DMZ 등이 전시되고 있다. DMZ 영 상실에서는 DMZ 묻힌 그 날의 증언, 대성동 기 정동 마을,DMZ 역사 이야기, DMZ에 점령당한 자연, 펀치볼 양구 해안마을, 향군촌 철원 대마 리마을 등이 상영되고 있다. 시설은 연면적 1,42 4㎡에지상3층규모이다. 전시실 외에 야외무대, 생태저류지, 카페테리 아,매점,수장고,주차장등이있다. 乾 鳳 寺 는 조 선 4 대 사 찰 의 하 나 로 만 해 한 용 운 선생의 乾鳳寺及乾鳳寺末寺史蹟誌에 의하면 신 라 법흥왕 7년(서기 520년)에 아도화상이 圓覺 寺 를 창 건 하 였 고 그 후 고 려 태 조 2 0 년 (서 기 9 3 7 년) 道詵國師가 중수한 뒤 西鳳寺라 하였으며, 고려 공민왕 7년(서기 1358년) 懶翁和尙이 중수 하고 乾鳳寺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신 라 경덕왕 17년(서기 758년) 발징화상이 중건하 고 정신, 양순 등과 念佛萬日會를 열었다. 이것 이 염불만일회의 효시가 되었으며 현존하는 등 공기념탑은 서기 787년 염불만일회에 참가 했던 31인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극락왕생하였 다고전하고그부도를모신것이다. 세조 10년(서기 1465년) 세조 임금이 건봉사 를 願堂으로 삼은 뒤 御室閣을 짓고 전답과 친필 동참문을 하사하였다고 전한다.그 후 서기 1878 년 4월 3일 큰 불로 인해 3,183칸이 全燒되었으 나 여러차례 복원작업을 통하여 서기 1911년엔 9개말사를거느린31본산의하나가되었다. 건봉사는임진왜란때에사명대사가의승병을 기병한 호국도량이었으며 당시 통도사에 있던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를 倭兵이 일본으로 가져 간 것을 사명대사가 다시 찾아와 이곳에 봉안하 였다.또한 구한말인 서기 1906년 봉명학교를 설 립하여 개화사상과 신문화를 받아들인 관동지 방 교육의 도장이 되었으나, 그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기도 하였고 공산치하엔 냉천인민 학교로개명하였다. 이 지역은 6븡25 전쟁 중 휴전 직전까지 2년여 에 걸 쳐 아 군 5 , 8 , 9 사 단 및 미 군 제 1 0 군 단 과 공 산군 5개 사단이 16차례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 린 건봉산 전투 전적지이며,이때 건봉사는 완전 히 폐허가 되었으나 서기 1994년부터 대웅전,팔 상전, 염불만일원, 종각, 사지 등이 각각 복원되 었고 지금도 사찰복원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6.25 전쟁 전 건봉사는 총 642칸과 보림암 등 124 칸의18개부속암이있었다. 건봉사는 특수88여단 건봉산 대대 CP가 있던 곳으로 민통선 안에 있어 1994년 이전에는 민간 인 출 입 이 안 되 던 곳 이 며 회 장 성 율 이 전 역 전 마지막근무지이다. 거진읍 화진포길 280(화포리 606) 김일성 별 장은 김일성이 1948년부터 50년까지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가족과 함께 하계휴 양지로 화진포를 찾았다. 1948년 8월 당시 6살이 던 김정일이 소련군 정치사령관 레베제프 소장 의 아들과 별장 입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김일성 별장은 당초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에 의해 1938년 독일 망명 건축가 베버가 건축하였다. 김일성 별장에는 옛 별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 자료를 비롯해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응접세트 등 각종 유품이 모형 물로만들어져전시되었다. 해안가 산기슭에 위치한 김일성 별장은 광복 직후 건립,한국전쟁 이전까지 김일성이 아들 김 정일,딸 김경희와 함께 수시로 이용했던 곳으로 본래 지하 1층,지상 2층의 석조물이었으나 전쟁 중 크게 훼손되어 64년 육군이 본래 건물을 철거 하고지금의1층건물로재건축했었다. 김 일 성 별 장 의 절 경 중 빼 놓 을 수 없 는 곳 은 마 주 보이는 금구도라 불리는 바위섬으로 화진포 해변에서 3백여m 떨어진 금구도는 거북 모양을 닮은데다 가을철이면 이 섬에서 자라는 대나무 숲이노랗게변해섬전체가황금빛으로물든다. 청간정은정면3칸,측면2칸의팔작지붕건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설악 산 연봉(連峰)에서 발원한 청간천이 동해로 흘 러드는 하구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동팔 경의하나이다. 127개의긴주초석으로받쳐진이정자의창건 연대와 건립자는 알 수 없으나 1520년(중종 15) 간성군수 최청(崔淸)이 중수한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1884 년(고종 21)갑신정변 때 타고 없어져 그대로 방 치되었다가, 1928년 토성면장 김용집(金鎔集) 의발기로재건하였다. 선인들의 시문을 새긴 수많은 현판만이 옛 정 서를 말해주고 있을 따름이다. 추녀 밑에 걸려 있는 ‘淸澗亭’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것이라고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 海寺)의말사이다.고려의명승일연스님이머물 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천년 고찰로 643년(선 덕여왕12)에원효(元曉)가창건하였다. 절의 입구에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는데, 속 전(俗傳)에 기린이 뿔을 이 바위에 얹었다고 하 여 절 이름을 인각사라 하였다고 한다.그 뒤 130 7년(충렬왕 33)에 븮삼국유사븯(三國遺事)를 지은 일연(一然)이 중창하고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당시 이 절은 크고 높은 본당을 중심으로 하여 그 앞에 탑, 좌측에는 회랑, 우측에는 이선당(以 善堂) 등이 있었고, 본당 뒤에 무무당(無無堂) 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일연은 총림법회(叢林 法會)등대규모의불교행사를개최하였다. 시대는 미상이나 조정의 명으로 김용검(金龍 劍)이 절을 크게 중건하고 밭 100여 경(頃)을 헌 납하였다. 조선 중기까지 총림법회를 자주 열고, 승속(僧俗)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2동의요사채뿐이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28호로 지정된 인각 사보각국사탑 및 비(麟角寺普覺國師塔─碑)가 있다. 이 탑비는 1153년(의종 7)에서 1155년 사 이에 사승(寺僧) 죽허(竹虛)가 왕희지(王羲之) 의 글씨를 모아서 세웠다고 한다.그러나 임진왜 란의 병화로 글자의 훼손이 심하여 알아보기 어 렵다. 그 밖에도 법당 앞에는 삼층석탑이 있고, 정조탑 앞에는 높이 1.5m의 석불이 있으며, 절 앞 길가에는 만월당(滿月堂)과 청진당(淸眞堂) 의석종형부도가있다. 달기라는 약수터의 명칭은 약수터가 위치한 곳의 옛 지명이 청송군 부내면 달기동이라 달기 약수라 불렀다고 한다. 매년 봄 4·5월이면 약물 을 먹는 사람이 약효가 더하기를 비는 용천제를 지내왔으나, 이제는 그 명맥이 끊어졌다.달기약 수탕은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 수로공사를 하던 중 발견되었다. 톡톡 튀는 맛을 내는 탄산 을 비롯하여 다양한 물질들이 녹아 있어 예로부 터 위장병, 부인병, 안질과 같은 질병 치료에 효 과가 있다고 알려져 왔다.약수는 빗물로부터 시 작된다. 빗물이 지하에 스며들어 지하수가 되고, 지하 깊은 곳의 마그마에서 뿜어져 나온 이산화탄소 와 반응해 탄산수로 바뀌게 된다.탄산수는 지하 의 암석에 포함된 다양한 물질들을 용해시킨 뒤, 화강암과 퇴적암 사이 틈을 따라 지표로 상승하 여지금의탄산약수로솟아나고있다. 송소고택(松韶古宅)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 면 덕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2007년 10월 12일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제250호 로 지정되었다.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松韶 沈琥澤)이 18 80년파천면지경리(호박골)에서조상의본거지 인 덕천리로 이거하면서 건축한 가옥으로 ‘송소 세장(松韶世莊)’이란 현판을 달고 9대간 만석부 를지낸건물이다. 경북 북부 민가 양식으로 건물에 독립된 마당 이 있으며 사랑공간,생활공간,작업공간으로 공 간이 구분되어 있는 등 조선 시대 상류 주택의 특징을비교적잘간직하고있다. 또한, 바깥마당에 담장으로 구획한 내·외담과 대가족 제도하에서 4대 이상의 제사를 모실 수 있는별묘등민속학적가치가매우높다. 서울특별시본부·해백공파종앙종친회와함께하 는유적탐방 ▶춘천박씨시조(문의공박항)묘소참배 성율 회장(右)과 춘천박씨 임원진이 관향조(휘 항) 묘역 앞에서함께하고있다. ▶신장절공(평산신씨시조신숭겸)묘소참배 신숭겸 장군 묘-강원도 춘천시 서면 신숭겸로 272-21 강 원도기념물 제21호 ▶화천베트남참전용사만남의장 ▶평화의댐 ▶고성진부령지구전투전적비헌화묵념 ▶고성통일전망대 ▶건봉사 ▶ 김일성별장 ▶청간정 ▶군위인각사(삼국유사면화북리612) ▶달기약수터 ▶송소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