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page

2021년6월30일 수요일 6 (제174호) 기 획 △박병인(인천시 연수구) △박연희, 박해용(강원 동해시) △박인근(충북 청주시)△박봉순(충남서천시)△박희 중(세종시) △박창균(경북 영천시) △ 박종백(경북 포항시) △박상철(경북 예천군)△박종욱(경북청송군)△박진 하(대구 수성구) △박만순 (부산 연제 구) △박영덕(부산 수영구) △박문호, 박성국,박재헌(경남창원시)△박래수 (경남 진주시) △박문갑(경남 통영시) △박갑영(경남 산청군) △박명호(경남 의령군)△박태식(경남사천군)△박철 환(전남 장흥군) △박종인(전남 광양 시) △박래호(전남 장성군) △박영희 (제주시 애월읍) △박순원(제주 한림 읍) ◎서울:△박정애(동대문구)△박석 래(강서구) △박원락(양천구) △박판 제(서대문구) ◎ 경 기 : △ 박 재 국 븡 박 용 산 ( 인 천 시 ) △박인철(광주시) △박창규(성남시) △박종도(남양주시) △박수익(여주시) △박원준(수원시)△박상수(용인시) ◎강원:△박병호(삼척시)△박치규. 박규홍븡박용관(강릉시) ◎충북:△박충규(영동군) ◎충남:△박종현븡박병호. 박한우. 박태식(대전시) △박홍래(예산시) △ 박대규븡박창훈(천안시) △박관구(서 천군)△박상만(홍성군) ◎경상북도:△박종운. 박태인. 박석 종(안동시)△박영택(영천시)△박일용 (경주시) △박용만븡박상훈븡박만수븡박 손현븡박종우븡박근숙(청도군) △박 원 (영양군) △박신호(의성군) △박균백 (예천군) ◎경상남도:△박호순. 박영수. 박재 화븡박동표븡박종만(밀양시) △박보영븡 박경묵븡박의구(진주시) △박종표븡박 창규븡밀성박씨신암공문중븡박선희(창 원시) △박재현븡박태주(통영시) △박 대순븡박광호븡박태명븡박영대븡박장순븡 박종해(창녕군) △박종표(의령군) △ 박덕해. 박재일(고성군) △박평규(거 창군)△박태곤(합천군) ◎대구:△박상옥븡박재균(동구) △ 박은현(수성구) △박명숙븡박지현븡박 호경(달서구) ◎울산:△박주익븡박갑준(중구) △ 박윤승(남구) ◎부산:△박흥대(연제구) △박홍우. 박종택(북구) △박지용(영도구) △박 번(부산진구) ◎전북:△박윤엽(익산시) △박화석 (전주시) △박수용(정읍시) △박수섭 (장수군)△박정만(고창군) ◎전남:△박옥만(나주시)△박한기. 박영배(순천시)△박정규븡박귀열(고흥 군) △ 박충좌(영양군) △박현준(곡성 군)△박정옥(완도군) ◎광주:△박태근(남구) △벽진서원 보존회(서구) △박영수븡박춘병(광산 구) ◎제주:△박형래(애월읍) ◎음성박씨정승공파단체구독료\ 1,320,000(36名)송금해 주셨습니다. △밀양박씨사문진사공파대종회(회 장 원주) △박용덕(경남 창원시) △박 태근(광주광역시) △경북 영양군지부 △울산박씨대종회 한빛신문은 성손여러분이 함께만들 어가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한빛신문은2007년창간이후선조님의행장과종중의약사집성촌,본관별세거지변천사등 수 많은자료를기록으로남기는방대한 작업을하고 있는‘성손모두가함께만들어가는종보’입 니 다.그역할을충실히하면서선조님의현창사업과후손들에게물려줄박문(朴門)의뿌리를연 구 하고다듬어데이터베이스화하는데앞장서겠습니다. 한빛신문임직원일 동 뱚뱚제보및구독신청안내:053-588-7300,070-4250-0078 ▶fax053-581-0067▶e-mail:parkss1012@han mail.net 뱚※성손여러분이납부하여주신구독료는신문발행에큰도움이됩니다. 월3,300원으로종보를함께만들어가는주인이되어주세요. 구독료를가까운금융기관에서자동이체(월3,300원)하여주세요 뱚뱚뱛구독료자동이체계좌453013-55-000691농협한빛신문 [6월구독료보내주신분,2021.5.21-6.20] 뱚▶자동이체등록해주신분 뱜▶지로납부및송금하여주신분 ※2021년 4월 1 3일자 P C신한은행3100로입금 해주신 고객님께서는연 락주시면감사하겠습니 다. TEL: (053)588-73 00 뱜▶후원하여주신분 충의사는 울산광역시 중구 서원11길 25 소재하고 있다. 임 진왜란때 왜적 대군이 쳐들어온 길목인 울산고을 의사들이 난 초에 창의하여 사생취의(捨生取義) 전공을 세운 의사들의 위패를모시고그충의를추모하고제향하는사당이다. 선조 25년(1592) 4월 14일 왜적대군이 부산포로 침범하여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차례로 함몰시키니 관군은 적세에 겁을 먹고 흩어져 도망하여 울산도 차례로 점령당했다. 왜적의 만 행에 비분강개한 울산지방의 의사들은 분연히 창의하여 신라 때의 옛 성인 기박산성에서 4월 23일에 결진하여 편대하였고, 이어경주지방의의병과신흥사승군도찾아와합진하였다. 그리하여 병영성을 점령하여 둔거하고 있는 적을 기급으로 시작한 항왜토적(抗倭討賊)은 선조31년 11월 18일 최후로 왜 적을도산성에서 격퇴할 때까지 전후11진(陣)하여21전(戰) 전공으로 군(郡)이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는 은전(恩典) 이 내리고 울산 의사들의 전공을 치하하고 위무하는 선조실 록의기록이20여회나등재되었다. 울산광역시는 선조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1997년 7월 사 당 건립에 착수하여 2000년 6월에 6,013㎡ 경역(境域)에 사당 외 9동(棟)과 홍살문을 완공하여 242위(位)의 위패를 봉안하 였고, 특히 이름 없이 산화한 의사들을 위해 무명제공신위를 함께 봉안하고 4월 15일과 10월 15일에 호국충절의 높은 뜻을 받들고있다. 배향된 242위의 의사 중 울산박씨 16의사(義士)가 있으니 울산박씨 문중이 울산지역에서 충절의 가문으로 추앙받은 것 을바로이때문이다. △ 선무원종(宣武原從)일등공신(一等功臣) 현감(縣監) 박홍 춘(朴弘春) 공민왕조 문과급제로 충정감사 지낸 사은공 추(諏)의 7세 손이며, 조선 명종 조에 이산군수를 지낸 지변(之 븀)의 차자 로 1537년(중종32)12월 21에 출생하고 자는경인(景仁)호는 학수당(鶴睡堂)이다. 1564년(명종19)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 전관훈련원주부 감포만호 언양현감에 제수되었다. 현감 재임 시 누차 남변방비(南邊防備)가 미약함을 탄식하고 조정에 품 신하였으나 묵살됨으로 얼마 후 기관 퇴향 하였으나 우국충 정은 잠시도 떠나지 아니하였다. 항시 자질(子姪) 가동들을 데리고 말 타기와 활 쏘는 연습을 하였고 또 검법과 병서를 습 득하고식량을빈축하여급란을대비하였다. 1592년(선조25,壬辰) 4月에 왜적이 침입하자 평소에 준비 한병장기와양식등을점검하고많은가재(家財)를풀어의병 을 소집하였다. 아들 계숙, 장질 계종, 종제 홍남과 창의 거병 하여 거리에 의장기를 세우고 소모하니 불수일간에 수백의 장정이모였다.대오를편대하여전임지언양성으로달려가니 적은 이미 정거하고 있는지라 곧 전천리 요소에 복병하고 적 을 유인하여 전천리 복병한 곳으로 패주한 듯 하니 적은 추격 하는지라 이때복병의 기습공격으로 수십급을 격살하니 적은 무기를버리고도주하였다.노획한병장기는의병에게나누어 주는등대전과(大戰果)를올리고사기는충천하였다. 점차 울산의병들의 결사항쟁은 경주와 울산등지서 큰 전과 (戰果)를 올림에 9月에 순찰사 한준겸 고을에 와서 의군을 통 합하여 편대(編隊)함에덕망이있는 전(前)만호 김태허를 울 산의가군수로삼고전현감박홍춘을서면장(西面將)으로삼 아 동래와 기장의 적을 막게 하고 전 훈련원봉사 전응충을 남 면장으로, 서인충을 주사장(舟師將)으로 세워 항쟁의 체계를 세웠다. 공은 아들 계숙과 종제인 홍남 홍신을 전후군(前後軍)을 삼 아 기장으로 진주(進駐)하니 피신중인 백성들이 환영하며 술 과 음식을 대접하고 또 적정(賊情)의 여러 가지를 보고 받아 신속하게 토적(討賊)의 계획을 세워 각 부장(副將)들에 시달 하고 적진을 포위했다. 하루종일 술에 취해 날뛰던 적도들은 세상 모르고 잠자는 한밤중 4개 대로 분대한 의군은 성난 사 자처럼 기습하여 좌충우돌 결살하니 혼비백산한 적도들은 반 이나죽고도망치니기장일대가수복되었다. 승전을전해들은울산가군수와남면장전응춘은극구칭찬 하고 일전(一戰)에 수복함은 t[상에 드문일로 옛날 전단(田 單, 춘추시대 제나라 명장)과 송나라 악무목(岳武穆, 남송시 대명장)에못지않다고하며조정에치계하였다. 조정에서는공을기장가현감에제수하고평란후기장현감 을 제수되고 선무원종1등공신에 녹봉되고 말응 전답 수십결 과 오산의 죽림 수백경, 서천연천 30리와 남산 12봉을 사채지 로 하사하였다.공이 쓰던 장검 한 자루가 아직도 보존되고 복 제하여 충의사에 전시 되어 있다. 그리고 충의사와 학산서원 에배향(配享)되었다. △ 선무원종(宣武原從)이등공신(二等功臣)훈련원(訓練院) 판관(判官)박인복(朴麟福) 사은공 추(沙隱公 諏)의 6世孫이며 안일호장(安逸戶長)장 겸(長謙)의 제 四子로 1541년(중종36)신축에 태어났다.잔학 무도한 왜구가 20만 대군으로 침범함에 관군은 항쟁도 못하 고 도망 피신하니 적도의 만행은 말과 글로서는 나타내지 못 할천인(天人)이공노할지경이었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북진하며 서생포에 후방기지를 설치하 고 많은 무리가 둔진 하였으며 매일 무리를 지어 촌락으로 침 입하여 약탈 살인 방화 등의 만행에 비분강개한 고을의 의사 (義士)들은 왜종진멸(倭種盡滅)하고 구국안민(救國安民)하 자는격문은방방곡곡에파급되어의병이일어났다. 이때 의사 박인복(朴麟福)은 형 인정(麟定) 인지(麟趾) 인 각(麟角)과 아우 인안(麟安)등 五형제는 가동(家姪)과 마을 의청장년을모아서인충과함께창의거병하였다. 公은 가재(家財)가 부유하여 의병들의 군량을 보급하고 군 수물자를 조달하여 군의 사기를 돋우고(내고장의 내 傳統 忠 義編)여러 싸움터마다 분전하고 토적하여 전공이 혁혁하였 다. 六月 七日의 문천회생으로 경주 울산 의병들의 결의를 지 고 뭉쳐 十七日 언양에서 경주로 잠입하는 수천의 적을 남산 에서 복병전으로 시습하여 격살 四백과 많은 병장기를 노획 하였으며준동하는적도들을여러곳에서격퇴시켰다. 1593년 2월 태화강으로 왜적의 대선단(大船團)이 들어오리 라는박언복의첩보에2일학성관(鶴城館)에서의진중회의에 이어 6일 해질 무렵에 진입하는 많은 적선을 화공으로 부수고 10월 29일 울산 경주 의병 3千9百(최효식 경주항쟁사 崔孝軾 慶州抗爭史)이 반구정에 모여 결사항쟁 하자는 구강회맹으 로사기는더욱충천하였다. 공은 7年동안의 대란에 충분심은 요원의 불꽃처럼 타올라 서사항쟁(誓死抗爭)한 전공은 선조 29년 7월 29일 경상우감 사김성일이조정에올린장계(狀啓)에드러나고五형제가창 의하여 四형제각 순국(殉國)하고 난후 공이 선무원종이등공 신으로 훈록되니 일가의 충의가 청사에 찬연하리라. 후에 충 의사에배향되었다. △선무원종(宣武原從)이등공신(二等功臣)부장(部將)박응 춘(朴應春) 고려말 충절을 지킨 충청감사 사은공(沙隱公) 추(諏)의 8 世孫이고 가선대부 호조참판 득양(得良)의 장자로 태어났다. 종제 영록(榮錄)과 함께 의병을 모아 기박산성의 의군진으로 부진하여 5월 7일 야음을 틈타 병영성 기습전에 참전하여 큰 공을세웠다. 5 월 2 8 일 송 호 군 (松 壕 軍 )과 함 께 경 주 반 월 성 (半 月 城 )으 로 진을 옮기고 5월에는 이경연(李景淵)서인충(徐仁忠)이승금 (李承金) 이우춘(李遇春) 박손(朴孫) 전개(全 곗)등 울산의 사들과경주의관의군(官義軍)및경상좌도여러고을의병이 모여 7일 서사보국하자는 문천회맹을 맺었고, 6월 17일 언양 에서 경주로 들어오는 왜적 수천을 남산에 복병하여 기습전 으로 치니 적은 운문산 쪽으로 달아나고 회맹군은 격살 四百 여와많은무기를노획하였다. 1595년 10월 왜적이 군위(軍威 사평(沙萍) 등지에서 준동 할 때 이경연 등 제의장(諸義將)들과 힘을 모아 수천의 적을 치 는 등 많 은 공 을 세 웠 다 전쟁이 끝나자 공에게 선무원종 이등공신 종제 영록(榮錄) 에게는 삼등공신에 각각 훈록되었다. 난이 끝나고 고향에 돌 아와서 자질(子姪)에게 이르기를 평안할 때 근심을 생각하라 고경고하였다. 뱚븮의병의 날븯 특집 울산충의사와울산박씨16의사 충의사전경 울산임란의사사적비(충의사경내) 6월 1일은 국가기념일인 의병의날이다. 그리고 6월 은 호국보훈의달이기도 하다. 오천년의 역사속에서 우리민족이겪었던수난(受難)은수없이많았으나그 중에서도7년전쟁의임진왜란은우리민족사에있어 가장처참했던수난사로기록된다. 이조 중엽에 와서 사화(士禍)가 자주 일어나 당쟁으 로 발전되어 물고 물리는 악순환을 거듭하여마침내 사색당쟁이 한창인 무렵 국고는 바닥이 나고 국력은 극도로쇠약해져있을때이웃일본은수십년간춘추 전국을방불케하는군웅(群雄)이할거하다가60여주 를통합한풍신수길이오랜전쟁의실전경험과서양 무기의신예화된 조총으로 편성된 막강한 군대의힘 을 믿 고 동 양 제 패 의 야 망 을 품 고 우 리 나 라 를 침 략 하 려고호시탐탐기회만노리고있다가어느날갑자기 수십만 군대를 이끌고 우리나라 부산에 쳐들어오니 관군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20일만에 서울이 함락되 고2개월만에평양성이함락되니선조임금은국토의 마지막인 의주까지 몽진하게되고 삼천리 강토는 왜 군의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게 되어 백성들은 약탈과살육의희생물이되었다. 국토는 황폐하여굶주림은 더해가고 사상자는 인산 인해를 이루었고, 조국의운명이 풍전등화의위기에 처해있을때초야에묻혀있던이름없는선비들은책 과붓을던지고궐기했으며,산속에서수도하던스님 들도목탁과불경을그만두고일어나서승군을조직 하여곳곳에서 싸웠으며 일반 백성과 천민들까지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갸륵한 마음가짐으로 괭이와 낫 을 들 고 일 어 섰 을 무 렵 충 절 의 고 장 답 게 울 산 의 뜻 있 는의사들도창의하였다. 최초로 기박산성(旗朴山城)에 결진(結陣)하여5월 7 일을 기하여출전 병영성(兵營城)을 공격, 적 수백급 을 격살하고 많은 군수물자를 노획하거나 불태우고 산성으로되돌아옴을필두로공암싸움,달현전투,운 문산 둔진활동1,2,3차례 전투, 태화강구 싸움, 범서 관문전투등수많은싸움을하여왜적을쳐부수고혁 혁한공을세우니명나라장수마귀제독이말하기를 ‘임란7년전쟁중울산의사들의공적이제일이라’하 였고,선조임금은 ‘울산의사들의활동이 아니었으면 우리나라남부를잃은지이미오래였으라’하며격찬 하였다고한다. 특히 울산지역은 바다와 인접하여임진왜란에 최대 의격전지로 많은 의병들의희생이 뒤따랐다.분연이 일어난의사들의위패를한데모은곳이충의사이다. 뱚충의사(忠義祠) 충의사 위패(242位 의사의 위패와 무명제공신위를 함께 보관하고 있다. 우리朴門의위패는이중38位이고이중울산박씨는16위이다. 울산박씨16의사(義士) 학수당 박홍춘 보검(임진왜란시). 후손 박인우씨가 소장하다 지난2011년 울산박물관에기증전시되어있다. 뱚▶7면으로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