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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21년 6월 30일 (음 5월 21일) 수요일(신라기원 2078년) 2007년1월24일창간 제174호 12면(월간)뱚 경주시는 더욱 쾌적한 관람환경을 조 성하기 위해 오릉 내 알영정 가는 길의 대나무숲을정비했다고6일밝혔다. 시는 밀집해 있던 대나무를 적정한 수 로 정 비 하 고 우 천 시 땅 이 질 척 거 려 방 문객들에게 불편을 주던 산책로를 배수 로 준설과 마사토 포장 등 작업으로 환 경을 개선했다.대나무 숲은 수년 뒤 아 름다운 숲으로 거듭나 관람객들에게 더 욱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 다. 한편 오릉은 아는 사람들만 찾는다는 곳으로 오릉 안에 들어서면 동쪽으로 숭 덕전이있고그뒤로알영정이있다. 알영정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신 라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이 태어 난우물이라고전한다. 경주시 관계자는 “시원한 소나무 그 늘과 대나무 바람소리가 명품인 오릉에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방문해 보길 바 란다”며 “앞으로도 쾌적 한 관람 환경 조 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 고전했다. 경주숨은명소,알영정가는길대나무숲 정비 고요한 숲속정원오릉이 새단장을하고방문객들을기다리고있다. 관람환경개선 상 주 ( 상 산 ) 박씨대종회(회 장 종 송 )는 지 난 달 사벌국왕 내외분의 영정 이 봉안된 영사 전의 신도(神 道 )와 좌 우 계 단을 설치했다. 이번 신도 설치 는 그동안 경애왕릉 참봉으로 봉직한 종 송 회장이 숭덕전을 비롯한 전(殿)의 위 상과 격식 등을 참고로 하여 임원진들을 설득,설치하게된것이다. 영사전은 2000年 문화재청 국비 보조 금 1 4 억 원 확 보 하 여 2 0 0 2 年 첫 삽 을 뜬 성역화 사업 일환으로 2009年 문화재청 국비 보조금 8억 원을 지원 받아 신축하 여 사벌국왕 내외분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지난해 사벌국왕릉에 망료위와 관세 위를 설치하고 관리사의 재호(敬慕齋) 와 외 삼 문 의 문 호 를 완 충 문 (完 忠 門 )으 로 하여 편액을 걸고 이번 신도비와 좌 우 계단 설치로 2000년부터 시작된 성역 화사업이마무리된셈이다. 경모재의 외삼문 문호(門號)를 완충 (完忠)이라 함은 풍전등화 같은 신라를 지키기 위해 사벌주 방어장을 명 받은 사벌대군이 백제군과 대치하다 고립되 어 918년 사벌왕국을 창업하고 보위 11 년간 후백제 견훤군과 10여 년 간 역전 분투 하였으나 웅지(雄志)를 이루지 못 하고 하세하였던 사벌국왕 충의정신을 후손들이완성한다는뜻을담고있다. 한편 종송 회장은 지난 달 26일(음4.1 5)보름을 맞아 사벌왕릉 박대석 참봉과 함께 봉심을 올렸으며, ‘코로나19’로 인 해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운 가운데 임원 진 만 참석한 총회에서 연임이 결정되어 임기2년동안대종회를이끌게되었다. 사벌국왕영사전신도(神道)설치 전(殿)의위상과격식갖추어 사벌국왕 영사전이 지난 달 신도와 좌우 계단을 설치를 마무리함으로서 전의 위상과 격식을 갖추 었다. 사벌왕릉 박대석참봉이 지난 달 26일(음4.15) 삭망분향례를올리고있다. 박종송회장 춘 천 박 씨 선 기공종친회(회 장:21세손 박상 광 )는 지 난 6 월 12일 오전8시부 터 11시까지 춘 천시 퇴계동 우 미산 선산에 위 치한 사당(崇敬 祠)의 잔디마당 과 묘역의 제초작업을 실시하였다.이날 행사는 임원진이 솔선수범하는 가운데 실시되어귀감이되었다. 묘역은 춘천박씨 9世 휘 인건(仁健)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14世까지 20기의 묘소가 있으며 2004년에 묘역정화사업 으로 묘소 둘레석을 설치하였고 2012년 사당을 준공하여 조상님의 위패를 봉안 하고 매년 음력 10월3일에 시제를 지내 고있다. 임원들은 제초작업을 마치고 종친회 사무소로 이동하여 임원회의를 개최하 여현안들을논의하였다. 춘천박씨는 강원도 토호성씨 40여 중 수부도시 춘천을 관향으로 하는 유일한 씨족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 으며,화목단결하여우리박씨종강삼시 (宗綱三是) 인 숭조(崇祖) 애종(愛宗) 육영(育英)을제대로실천하고있다. 핵가족화로 가족해체가 이루어지고 충효정신과 조상음덕을 잊게 하는 풍토 속에서 시향제마저 이어질 지 장담하기 어려운 현실을 생각할 때 시제 참석인원 이 130여명 이상인 춘천박씨선기공종친 회의앞날은매우밝다. 종친회는 박가로서의 자부심을 일깨우고 종원 교육을 위하여 종원들에 게 5백만 박씨 대종보인 한빛신문을 종중에서 단 체로 정기 구독하여 배부 하고 있다. 박상광 종친 회장은 “우리 종친회는 다른 어느 종친회보다 모 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데 이는 종원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와 이해 속에서 임원들의 각별한 노고가 만 들어낸결실이라고치하하셨습니다. /춘천박씨명예기자22세손박민군 춘천박씨선기공종중,선조묘역제초 작업 본보단체구독으로보학증진과소속감심어주어 춘천박씨선기공종친회는지난 12일우미산선영제초작업을실시하고임원간친목을다졌다. 박상광회장 지역주민과 함께하며 강학의 공간 으로 자리 잡은 벽진서원 춘향이 지 난 4일 오전 유림향사로 봉행되었다. 노강 박래호 선생이 전체 행사를 주 관한 이날 제향은 오집사를 제외한 집사 분정과 제물 봉정, 진설, 제향, 분포례, 강평 등 엄격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제향에는 정종철(丁鍾澈) 창평향 교 사무국장이 집례를 맡아 이홍주 (李洪柱) 광주향교 원로, 이동재(李 東在) 향교재단이사장, 문덕근(文德 根) 문학박사 순으로 헌작하고 유진 창(柳鎭昌) 광주 유학대생이 독축하 였으며, 유수영(柳秀榮) 향교 서예교 사는 진설, 송우상(宋尤相) 운암서원 별유사는 찬인을 각각 맡아 제례를 빛냈다. 분포례에 이어 가진 강평에서 광주 향교 김중채 전교는 광주향교 향약을 재정하고 임란에 큰 공을 세운 회재 선생 향사에 참례하게 되어 무엇보다 가장 뜻있는 하루가 되었다고 말하고 앞으로도 광주향교를 비롯한 지역 유 림들이 더 많이 참례할 수 있도록 노 력하겠다고말했다. 9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초헌관으로 헌작한 이홍주 광주 향교 원로는 호남의병의 활동기반을 마련하고, 개산송당과 수월정을 세워 강학하고 향약을 마련 지역공동체를 선도하고 강한 애민정신으로 지역민을 구휼한 훌륭한 성인(聖人)의 제 향에 헌작할 수 있어 생애 최고의 행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며 회재 선생의 생애를 정리하여 10여분에 걸쳐 발표, 참석자 들은 고령임에도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에다 또 생애까지 발 표하는노익장에찬사를보냈다. 박상배 음성박씨 종친회장은 서원이 지역주민과 함께하며 강학의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 라 고 말 하 고 제 향 에 참 례 해 준 모 든 분 들 에 게 거 듭 감 사 의 인 사를전했다. 1602년 창건된 벽진서원은회재박광옥선생의학덕과절의 정신을 추모한 후학들이 광주 서구 벽진동에 벽진서원을 창 건하여향사(享祀)와교학(敎學)에힘써왔다. 1681년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추배하고 의열사(義烈祠)로 사액되었으며, 뒤에 오두인(吳斗寅) 김덕홍(金德弘) 김덕보 (金德普)를 배향 해오다 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에 후손들이 1927년에 운리영당(雲裏影堂)을 창건해 향 사하였는데 도시개발로 선생의 묘소와 영당이 편입되어, 199 9년에 묘소를 이장하고 그 옆인 서구 풍암동 769-1번지에 운 리사(雲裏祠)를 종중에서 복설하고 뜻있는 유림들과 학자들 그리고 사림이 벽진서원위패봉안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곳을 벽진서원이라 하고 유림봉사(儒林奉祀)를 결정하면서 선생의 위패를 모신 운리사를 의열사로, 학문을 강학하는 강 당의 중앙에 벽진서원, 동쪽에 모현당(慕賢堂), 서쪽에 숭본 당(崇本堂)이라 편액 하여, 훼철 150년 만에 복설되었으며, 유집목판遺集木版(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유물을 소장한시설들이있다. 복설후다양한프로그램을통해지역주민과함께하였으며, 특히 청소년 인성교육과 체험학습, 유교아카데미, 음악회 등 연중 서원을 개방하여 강학의 공간이자 지역의 명소로 떠오 르고있다. 이에 서구청은 4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견뎌온 지역사회 의 유일한 문화적 소산의 가치를 보존하고, 국난극복과 후학 양성, 지역주민의 농업기반 육성 등을 실천한 회재 선생의 정 신문화 집합체인 벽진서원의 향토문화유산 지정은 역사도시 광주서구의 가치를 더 높이는데 한 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1월25일광주서구향토문화유산(제2호)으로지정했다. 그리고 벽진서원은 청소년 인성교육, 수 련회, ‘벽진서원에 서 회재를 만나다’등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회재 선생의 삶을 알려 지역민을 교화하고 강학으로 지역공동체 선도, 애민정 신 등 회재선생의 유지를 기리고 있으며, 5월 5일부터 27일까 지 청소년 인성교육장을 개설 옛날 선비엿보기, 명상으로 마 음 다듬기, 인사예절과 인격, 다도예절과 행다법, 우리의 효 문화,선비체험,가훈 써보기,투호놀이와 협동정신 등의 강좌 가 이어졌으며, 5월 12일부터 6월 23일까지는 ‘전통생활다례’ 강좌를 개설하여 차의 효능과 유래 등 전통다도 관련 등의 지 식을지역주민과나누었다. 회재 박광옥 선생은 1526년 1월 26일 광주광역시시 서구 매 월동 회산에서 성균관 사예인 곤(鯤)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본관은음성(陰城)이고자는경원(景瑗)이며회재는호이다. 10세 때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인 정황(丁 ) 선생을 찾아 학문을 연마하여 21세에 소과에 합격하고, 향약 (鄕約)을 만들어 향리의 예속을 교화시켰으며, 44세에 학행 (學行)으로 내시교관을 지내고 49세에 운봉현감에 제수되었 으며 별시(別試)에 합격해 예조정랑 사헌부지평과 성절사서 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영광군수 밀양부사 등을 역임한 후 향리에 돌아와 개산송당(蓋山松堂)을 짓고 후진양성에 매 진했다. 1592년 선생이 67세 때 임진왜란을 당해 전국이 왜적 에게 유린되어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았다. 선생은 인근 에 살던 고경명(高敬命) 나주의 김천일(金千鎰)과 의병을 일 으켜 나라와 민족을 구출하자고 다짐하고 의병을 모집해 김 천일과 고경명에게 출전케하여 큰 성과를 올리게 하고 뒤에 서의병과군량을확보하여그뒷바라지를도맡았다.선생은6 7세의 고령에도 나주목사에 취임하여 국난을 극복하는데 전 념하다가 병환으로 사임하고 1593년 10월 26일에 별세했다.1 681년(숙종7)도승지에추증되었다. 벽진서원춘향봉행 회재박광옥 선생의위패를모신벽진서원춘향이 지난 4일봉행되어선생의높은학덕과 애민,충절을기렸다. 호남의병의활동기반과개산송당븡수월정을세워강학의공간마련하고향약을 제정하여지역공동체선도와강한애민정신으로지역민을구휼한고귀한뜻기려 제물 봉진에앞서점검한 단자에초헌관이 수결하고있다. 유진창축관이 독축을하고있다. 분포례(分脯禮),참가자모두에게포를봉투에담아나눠주고있다. 9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 고회재선생의생애를발표 하고있는이홍주초헌관 박상배 회장은 이날 강학 의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 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