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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4월30일 금요일 2 (제172호) 祭 儀 獻官及諸執事 詣墓所再拜(헌관 급제집사 예묘소재배,헌관과 모든 집사는 묘역의 절하는 자리에서 두 번절하시오) 奉行塋域內外環繞 省掃三周(봉 행영역내외환요 성소삼주,묘소 주 위를 두루 돌아보고 살펴 청소하고 세번둘러보시오) 復位再拜(복위재배, 돌아와 두 번절하시오) 獻官以下各就位(헌관이하각취 위, 헌관이하 각각 제자리에 서시 오) 諸執事 詣꿍洗位(제집사 예관세위,모든 집사는 손 씻는 자 리에서시오) 꿍手썅手(관수세수,손을씻고닦으시오) 陳饌(진찬,제물을진설하시오) 設香爐香盒(설향로향합,향로와향그릇을차려놓고) 設降神盞盤(설강신잔반,강신잔을소반에차려놓는다) 初獻 詣꿍洗位(초헌 예관세위,초헌관은 손 씻는 자리에 나 아가시오) 꿍手썅手(관수세수,손을씻고닦으시오) 因詣墓前눠(인예묘전궤,묘소앞에나가꿇어앉으시오) 焚香三上(분향삼상,향을 세 번 사르시오) 再拜(재배,두번절하시오) 릴酒三傾至盡 (뢰주삼경지진, 강신 잔에 술을 채운후 땅에 세번나누어부으시오) 再拜(재배,일어나두번절시오) 因降復位(인강복위,제자리에돌아오시오) 獻官以下 皆再拜 參神(헌관이하 개재배 참신, 헌관이하 모 두절을두번절하시오) 初獻 詣墓前눠(초 헌 예묘전궤,초헌관 은 묘 소 앞 에 가 서 꿇 어앉으시오) 擧每酌酒 奠爵(거 멱작주 전작,술독을 열고 술을 부어 잔을 올리시오) 俯 伏 興 少 退 立 ( 부 복 흥 소 퇴 입 , 헌관은엎드렸다가일어서서조금물러서십시오) 啓飯蓋 扱匙正閼(계반개 삽시정저, 집사는 밥뚜껑열고 숟 가락을꽂고저를바로놓으시오) 獻官以下 皆 俯伏(헌관이하 개부복, 헌관이하 모두 엎드리 시오) 祝눠初獻之左 讀祝文(축궤초헌지좌독축문,축관은초헌관 좌측에앉아축문을읽으시오) 獻官以下皆興(헌관이하개흥,헌관이하모두일어나시오) 初獻再拜(초헌재배,초헌관재배하시오) 因降復位(인강복위,제자리로가시오) 徹爵退酒(철작퇴주,집사는잔을거두어퇴주하십시오) 亞獻 詣꿍洗位(아헌 예관세위, 아헌관은 손 씻는 자리에 나아가시 오) 꿍手썅手(관수세수, 손을 씻고 닦으시오) 因詣墓前눠(인예묘전궤, 묘소 앞에나아가꿇어앉으시오) 擧每酌酒 奠雀(거멱작주 전작, 술독을 열고 술을 따르고 잔을 올 리시오) 俯伏興少退 再拜(부복 흥 소퇴 재배, 헌관은 엎드렸다가 일어나 조금뒤로물러나두번절하시오) 因降復位(인강복위, 제자리로 돌아가시오) 徹爵退酒(철작퇴주,집사는잔을거두어퇴주하십시오) 終獻 詣꿍洗位(종헌 예관세위, 종헌관은 손 씻는 자리에 나아 가 시오) 꿍手썅手(관수세수, 손을 씻고 닦으시오) 因詣墓前눠(인예묘전궤, 묘소 앞에가꿇어앉으시오) 擧每酌酒 奠爵(거멱작주 전작, 술 독 을 열 고 따 르 고 잔 을 올 리 시 오) 俯 伏 興 少 退 再 拜 ( 부 복 흥 소 퇴 재배, 헌관은 엎드렸다가 일어나 조금뒤로물러나두번절하시오) 因降復位(인강복위,제자리로돌아가시오) 徹更進茶(철갱진차,국을내리고차를올리시오) 肅俟少頃(숙사소경,엄숙한태도로얼마간기다리시오) 初獻 詣飮福位(초헌 예음복위, 초헌관은 음복하는 자리에 나아 가시오) 設席于香案前 北面 立(설석우향안전 북 향립, 자리에서 북쪽 을향하여서시오) 祝徹爵 詣初獻之右 (축철작 예초헌지우, 축관은 술잔을 거두어 초헌관우측으로 가시 오) 初獻눠 受爵 酒少飯(초헌궤 수작뫌주소반, 초헌관은 꿇 어앉아술잔을받아조금드시오) 祝徹脯 詣初獻之左(축철포 예초헌지좌, 축관은 포를 거두 어초헌관왼쪽으로가시오) 이제 조상이 복을 내 리는말씀을전하시오 조고명공축(祖考命 工祝, 할아버지가 축관 에게 명해서)하야 승 치다복우여효손(承致 多福于汝孝孫, 너희 손 자들에게 많은 복을 받 게 하노니 오너라)하 노니 래여효손(來汝孝 孫, 손아)아 사여(使 汝, 너로 하여금)로 수 록우천(受祿于天, 하 늘 에 서 복 을 받 게 하 여)하며 의가우전(宜稼于田, 논밭에 농사를 잘 짓고)하야 미 수영년(眉壽永年, 오랜 세월 누리며)에 물체인지(勿替引之, 기울어지는일이없게계속하여라)하라 [해설] 할아버지가 축관에게 명해서 너희 손자들에게 많은 복을 받게 하노니 오너라. 효손아 너로 하여금 하늘에서 복을 받게하여논밭에농사를잘짓고오랜세월누리며기울어지는 일이없게계속하여라 初獻受脯(초헌수포,초헌관은 포를받고) 因降復位(인강복위,제자리로돌아가시오) 下匙閼 合飯蓋(하시저 합반개, 수저와 젓가락을 내리고 밥 뚜껑을덮으시오) 獻官以下 皆再拜(헌관이하 개재배, 헌관이하 다 재배하십 시오)辭神(사신) 焚祝(분축, 축을 불사르시오) 徹饌 先徹盞盤(철찬 선철잔 반,모든제수를거두시오) 以少退(이소퇴,물두물러나시오) 維歲次 甲寅 三月庚寅 朔 十五日甲辰 世孫 00 敢昭告于 顯00대조고 顯00대조비 之墓 歲薦一祭(세천일 제)禮有中制(예유중제) 履玆雨露(이자우로)彌 增 感 慕 ( 미 증 감 모 ) 謹 以 淸 酌 時 羞 ( 근 이 청 작 시 수) 祗 薦 歲 事 ( 지 천 세 사 ) 尙(상) 饗(향) 해가 되어 한 번의제를 예를갖추어올립니다.이 비와이슬이내리니날이갈수록사모하는마음이더하여감히 맑은 술과 철에 나는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여공경하는(삼 가)마음으로세사를올리오니흠향(歆饗)하십시오 삼송재는 간의대부공과 정재공의 묘역아래에 있는 재사이 다 그 연원은 문헌이 전해지지 않아 알 수 없으나 규모가 협소 하여 1934년 중건한 건물이 현재의 건물이다. 이후 2011년 서 재를중건하여지금의면모를갖출수있었다. 삼송재주변(묘역)에는세그루의소나무가있다. 세그루의 반송이 형과 같고 아우 같아 묘소아래 차례로 서 있으니 정재선생의 평일 행세의 바름에 감응되어 생긴 것으 로 그 수는 윤리의 한 그루와 남전의 두 그루를 합한 것이요 그 절개는 진시황이 봉한 대부(大夫) 송(松)을 비웃을 것이 다. 남전의 두 소나무(雙松)는 세속의 번거로움이 선지에 스 며들까하여 오히려 단교(斷橋)를 다행으로 여기는 심사가 있 다. 하여 정재선생의 충절과 곧은 선비정신을 비유한 것으로 삼송재라한다. 남전(藍田)은 중국(中國) 섬서성(陝西省) 서안시(西安市) 동남방에 있는 현(縣)의 이름으로 강 건너 두 그루의 소나무 가 있어 빼어난 경치를 자랑 수 많은 석학들이 그 소나무를 비 유하며많은시문을남겼다. 휘는 의중 (宜中), 두문 동 현인으로 불 사 이 군 의 충절을 지켰 다. 초 휘 ( 初 諱 ) 는 실 (實), 字는 자 허 ( 子 虛 ) 요 , 諡 號 는 문경공(文敬公), 아호(雅號)는 정재(貞齋)이다. 고려 충숙왕 복위(復位) 6년 丁丑(1337)에 태어나 공민왕 4年 乙未(1355) 에 이색(李穡) 등 22人과 같이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합 격하시고 서녕군(瑞寧君) 류숙(柳淑) 초은(樵隱) 이인복(李 仁復) 두분 선생문하에 종유(從遊)하여 성리학에 더욱 정진 하였다. 공민왕 11년 壬寅(1362) 10月에 문과장원으로 발탁되시어 벼슬이 전의 직장 헌납 사예를 거쳐 예문관제학을 역임하였 다. 이때 공민왕 16年 丁未(1367)년 성균관이 재건되어 이색 (李穡)이 大司成이 되어 경학에 통달한 정몽주(鄭夢周) 김구 용(金九容)박상충(朴尙衷) 박의중(朴宜中) 이숭인(李崇仁) 등에게성균관교관을겸직(兼職)시키었다.그때 儒生들의 경 학질의(經學質疑)에 對하여 정밀하고 소상한 해답은 정재 先 生이으뜸이었다고한다. 고려 려흥왕(禑) 14년 戊辰(1388) 5月에 先生이 國書인 철 영위 철폐(鐵嶺衛 撤廢)에 관한 진정전(陳情箋)을 받들고 명 나라에 들어갈 때 행장(行裝)이 검소하여 요동진무(遼東鎭 撫)서현이 先生의 청고함에 감복하여 이 사실을 례부에 告하 니황제는 듣고 국빈례(國賓禮)로 대우하고 철령위문제(鐵嶺 衛問題)를 잠재웠다. 이를 두고 陽村 권근(權近) 先生은 先生을 祭祀하는 글에 봉사위난(奉使危難) 악절불투(握節不 ) 승수제칙(承受帝 勅)복아판도(復我版圖)철령이북(鐵嶺以北)위국오구(爲國 졸區) 공대불벌(功大不伐) 안어퇴휴(安於退休)라.(나라가 위급할 때 사신으로 가서 절개를 더럽히지 않았으며 황제 칙 서를 받들어 우리나라에 판도를 회복하여 철령이북은 나라의 요지로다 공로가 크고 중해도 자랑하지 않고 나아가고 물러 감을편하게하셨도다)하였고大司成김복한(金福漢)이 撰한 신도비명에서 수침철령립위의(遂寢鐵嶺立衛議)하고 려조봉 강지득완(麗朝封彊之得完)은 선생지력야(先生之力也)라. (드디어 철령위 세우는 일을 그만두게 하고 고려의 강토를 완 전하게 함은 선생의 힘이라 하였다)하였으며 星湖 이익(李 瀷)先生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븮忠臣忠臣이여 박의중(朴 宜中) 先生이 아니었다면 고려의 령토가 어찌 완전하였으랴 븯라고적었다. 고려 允王 元年 己巳(1389)에 추성보조공신(推誠補祚功 臣)으로 책봉되었고, 고려 간성왕(杆城王) 二年 庚午(1390) 正月에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겸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종2품)가 되었다. 후에 예문관 제학 겸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 되었다가 곧 이성계(李成桂)의 혁명으로 고려는 망하고 이씨 혁정당시(李氏革正當時) 즉 1392年 10月에 杜門洞에 들어갔 다가 지병이 있어 숙부인 간의대부公(仁翊)과 더불어 전라북 도 김제로 퇴둔하여 후학을 가르치시며 두문자정(杜門自靖) 하니 조선조 태종이 사방으로 찾아 검교참찬의정부사(檢校 參贊 議政府事)로 여러 번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고 불사 이군(不事二君)의 忠節을 지켰다.뿐만아니라성리학에 박통 (博通)한 대학자로 문장이 우아하였고, 예학에도 밝아서 일 찍이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김구용(金九容) 안로생(安 魯生)과 같이 명망이 떨쳤으니 그 사실이 화해사전(華海師 全) 사전계사(師全繼辭)에 실려있으며, 당시의 강학지소가 김제시 흥복동에 여러번의 중수를 거쳐 지금도 자리하고 있 다. 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과 경북 비안의 구천서원(龜川書 院)에 배향(配享) 되었으나 지금은 훼철되어서 없고,해주 송 현사(海州 松峴祠), 장성 경현사(長城 景賢祠), 파주 고려통 일대전충신각에배향되어있다. /박상섭 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밀양박씨사문진사공파삼송재 음력 3월이면 각 가정마다 묘제(墓祭) 또는 세일 사(歲一祀)를 봉행하고 있어 이번호에는 밀양박 씨 사문진사공파 삼송재를 찾았다.사문진사공(四 門進士公派)의휘(諱)는원(元)으로고려조에사문 진사또는국자진사를역임했다.밀성대군(密城大 君휘언침)의10世支孫(시조39世孫)으로太師公 彦孚의둘째아들 諱 義臣의長子다.父(義臣)는 문 하시중효신(孝臣)의동생으로당대의文章家로공 부상서(工部尙書)를 지내셨으며, 고려 인종은 효 신, 의신 양형제를 효의양신(孝義兩臣) 고려주석 (高麗株石)이라 부르고 동방대성(東方大姓)이란 어필넉자를하사하였다. 유지는밀양시하남읍귀명동이라하나전하지아 니한다. 배위는 계림김씨이며 원덕사에 배향하였 고 전북 김제시 상동(삼수동)에 삼송재가 있어 설 단 하 여 제 향 한 다 . 삼송재제향은율곡이이선생의가례를본받고있 다. 향사일은 음력 3월 14일 사문진사공이하 6대 (代)의단소와이조좌랑공,소부시판사공의묘제를 봉행하고 다음날인 15일에는 간의대부공, 정재공 묘,6위단소,신령감무공묘제순으로각각봉행하 고 있 어 소 개 해 본 다 . 삼송재전경 삼송재제향선조세계도 정재공제향이 지난 26일봉행된가운데제관이 기념촬영을하고있다.(사진왼쪽부터원주대종회장,원준집례,효명초헌관,판 기아헌관,기옥 종헌관, 영옥 축관 順 ) 뱚三松齋墓祭笏記(栗谷所定) 아헌례 - 두 번째 잔을 올리 는의식(아헌관 판기부회장) 뱚行降神禮(행강신례) 삼상향-향을 피워 혼을 부 르는의식 뇌주-술 을 땅에 부 어 신이 내리도록 비는일 뱚行初獻禮(행초헌례) 초헌-첫잔을올리는의식(초헌관 원준명예회장) 뱚行亞獻禮(행아헌례) 뱚行終獻禮(행종헌례) 종헌-세번째 잔을올리는의 식(종헌관 병길) 뱚行飮福禮(행음복례) 음복례-초헌관이 신이 앞에 있는 고기나 술을 먹는 의식(조상님께서 주시는 성스러 운음식으로 여김) 집례(執禮)-제례의식을 주관 하는제관(기옥 총무이사) 뱚致告意詞(치고하사) 하사(意 詞)-조상께서복을내리는말씀으로 축관이 대신한다. 이후 수포례라 하여 축관 이 초헌관의 소매에 포를 넣어주며 하례를 전한다. 묘제축문 정재공 묘 제 축문 뱚삼송재(三松齋) 삼송재전경 뱚정재공박의중 정재박의중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