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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9월30일 수요일 7 (제165호) 관향조 종친회 사단법인노계박인로기념사업회 영천 출생의 위대한 무인이며 문인 가객인 노계 박인로 선생의 삶과 문학정신을계승발전시키고전국적으로선양하는것을목적으로한다. 가.타지역에노계박인로의존재가치및위상을재조명함. 나.백일장대회에참가하는자들에게노계선생을재평가하는계기. 다.영천이라는터전에노계의연관관계의필연성을주지. 라.가사문학에대한영천지역의역사적가치재조명 ※올해 대회는 코로나-19 관계로 참가신청서 및 창작 작품을 아래 일정에 따라 비 대면(우편,e-mail)으로 제출하시기바랍니다. 가.참가신청및작품제출 뱚(1)비대면참가일정 뱚뱚(가)참가신청서제출:2020년9월7일(월)~2020년 10월 5일(월) ※기한내신청서를접수한 분에한해참가번호가부여됩니다. 뱚뱚(나)글제발표:2020년 10월 7일(수)홈페이지참조 뱚뱚(다)작품제출:2020년 10월 7일(수)~2020년 10월 19일(월) 뱚뱚뱚뱚뱚1)우편접수:2020년10월16일(금)한 (10월16일자우체국소인유효) 뱚뱚뱚뱚뱚2)e-mail접수 :2020년10월19일(월)24:00시한 뱚(2)참가요령 뱚뱚(가)참가신청서제출(10월5일한) ※우리사업회홈페이지(http://noge.or.kr⇒알림⇒행사공지)에서다운로드 뱚뱚1)참가신청서(개인정보제공동의서포함)1부. 뱚뱚2) 초븡중븡고등학생의 경우 작품 제출일 기준 학생증, 재학증명서 등 재학생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 1부. (재학생이 아닌 경우 참여 불 가) 뱚(나)작품제출(10월19일한/10월16일우체국소인유효) 뱚뱚1) 반드시 당사업회 소정의 원고지 출력 사용 1부. (홈페이지 게 재) 뱚(다)참가신청서및작품제출처 뱚뱚1) 우편주소:(우)38892 / 경북 영천시 금완로 44-1, 2층 (사)노계 박인로기념사업회 뱚뱚2)대표e-mail :yh8119@hanmail.net 나.작품심사:2020년 10월26일~30일/당 사업회사무실 다. 입상작 발표 : 2020년 11월 3일(화) / 사업회 홈페이지게시 및개별 통보 라.시상식:2020년11월7일(토) 14:00시/노계문학관야외(예정) ※코로나-19등의사정에따라시상식행사일정/장소변동될수있습니다. 마.상세내용은대구매일신문(9월2일자),조선일보(9월3일자)참조바 랍니다 뱚가. 대학. 일반부 : 가사, 한시(근체시), 시조, 현대시(운문븡산문,수 필 ) / 4 개 부 문 한 정 뱚나. 초븡중븡고 학생부 : 가사, 시조, 현대시(운문븡산문,수필) / 3개 부 문 한 정 ※대상별부문중복참가가능(단,1인2개부문한정,시상은1개부문) 뱚가.작품내용 뱚뱚(1) 성실궁행, 효행 등 노계박인로선생의 삶의 정신 및 사상적 위 상 구 현 뱚뱚(2)가사문학을재조명하고문학진흥에기여하는작품 뱚뱚(3)타인의작품표절이나대필작품이아닌작품. ※본인자필로 작성된작품만 인정하며,P.C프린터출력물등은인정하지않음. 뱚뱚(4)당사업회에서지정된글제에따라창작된작품 뱚뱚뱚뱚글제는 2020년 10월 7일(수)본회 홈페이지참조바랍니다. 뱚나.참고(유의)사항 뱚뱚(1)참가대상별 참가서식은 누락하지 않도록 바라며,누락으로 인 한책임은참가자자신에게있음. 뱚뱚(2) 참가신청서가 접수되면 사업회에서 접수여부 및 참가번호를 참가자에게 문자로 통보됨. 발송 후 5일 경과 시 까지 답장이 없을 경우 아래전화번호로확인바람. -사무국장:010-3259-0010 - 재무이사:010-5177-5332 뱚뱚(3)입상작작품집출간및제출작품저작권사항안내 뱚뱚뱚뱚입상작은 단행본으로 제작하여 출간할 예정이며 입상작에 대 한 저작권과 출판권은 우리 사업회에 귀속되며 제출된 작품은 반환하지 않음.당선작은행사후단행본으로출간하여우편으로발송합니다. 뱚뱚(4)입상자의무 뱚뱚뱚뱚입상자는 시상식에 반드시 참석하여야 하며, 시상식 미 참석 시 상장 및 시상금은 지급되지 않음. (단,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 대리참 석가능/사유서제출) 뱚뱚(5)작품표지에참가번호및참가분야를반드시명기할것 -참가분야:가사,한시,시조,현대시(운문,산문,수필구분) 뱚뱚가.대학븡일반부 뱚나.학생부(초븡중븡고) ※상위수상자가없을경우차하위수상자를추가하여시상함.(상금총액은동일) ■주최.주관:사단법인노계박인로기념사업회 ■ 후 원 : 경상북도. 영천시. 경상북도교육청. 영천교육지원청. 영남 대학교. 대구대학교 부산대학교. 한국문인협회. 영천문화원. 영천향교. 조양시사.(사)국제언어문학회.(사)신라오릉보존회(박씨대종친회).조 양시사. 박약회. 조선일보. 대구매일신문. 숭덕전신문. 한빛신문. 영천동 부신문.영천신문.영천시민신문.영천일보.대구일보.경북매일신문 2020년도노계문학전국 백일장대회 (비대면) 2020년도노계문학전국백일장대회개최 를공고합니다. 구분 시상인원 상명 시상금(1인) 비고 대상 1명 경상북도지사장 300만원 공동 최우수상 3명 영천시장상 (사)한국문인협회이사장상 100만원 한시,가사, 시조,현대시 부문별1명 우수상 4명 경상북도의장상 30만원 특별상 8명 (사)신라오릉회이사장상 20만원 장려상 8명 (사)노계박인로기념사업회 이사장상 10만원 입선상 00명 10만원 구분 시상인원 상명 시상금(1인) 비고 대상 1명 경상북도교육감상 50만원 공동 최우수상 3명 00대학총장상 30만원 가사,시조 현대시 부문별1명 우수상 3명 영천교육장상 20만원 특별상 6명 (사)신라오릉보존회이사장상 10만원 장려상 6명 (사)노계박인로기념사업회 이사장상 10만원 입선상 00명 도서상품권(5만원) 뱚1.취지 뱚2.행사일정 뱚3.참가대상/부문 뱚4. 작 품 제 출 관 련 참 고 사 항 뱚5.시상내역 뱚▶6면에서계속 공이기탄을지키지않으면적이서울로직행하리라생각하 고 의로써 듣지 않았으니 다음날 아침에 마침내 순절하였으 니,1624년 2월 초6일이다. 반란군이수도로진격하는것을저지하려 하였으나모든장 수들이 반군을 피해 도망을 가는바 그는 홀로 반란군을 맞이 해 언덕을 의지하면서 싸워 많은 반군을 살상했으나 화살이 다하고활이꺾어져사로잡히고말았다. 이괄은 그의 용맹을 익히 알고 있어 생포한 것을 기쁘게 여 기고 함께 반군에 협력할 것을 백방으로 회유 설득하였으나 끝내 항복을 안 하자반군의장수 이수백(李守白)이가 후환이 두려워 칼로 그의 목을 쳤으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반 군의 장수를 꾸짖었다. 그의 목을 잘라서 머리를 정부군 총사 령부에보내어항복하도록협박하였다. 장군의 부인(廣州李氏)이 이런 비보를 듣고 목숨을 걸고 남 편을 찾아 전쟁터로 가서 마침내 머리(頭)도 없는 남편의 시 신을찾아혼자힘으로메고집으로모시게된것이다. 정부인(貞夫人) 이씨(李氏)(1575~1626)는 본관(本貫)이 광주(廣州), 광남군(廣南君) 광악공(光岳公)의 따님이다. 성 품이 정절(貞節)하시고 매사를 처리함에 출가(出家)하신 여 장부(女丈夫)셨으니 부군(夫君)이 10년의 유배생활 하는 동 안 가장 없는 큰 집안일을 잘 다스리시면서 자녀들을 의(義) 롭게 동량지촌(棟樑之村)으로 키우셨고 부군께서 이괄의 반 란평정에 큰 공을 세우셨으나 적장(敵將) 이수백에게 참(斬) 되어 순절(殉節)하시니 애통(哀痛)하시며, 오매불망(寤寐不 忘) 원수(怨讐)갚기를 다짐하면서 거사시(擧事時)를 엿보던 중 마침내 갑술년(甲戌年1634) 병사 이항(李沆)의 집에서 나 오는 이수백을 아들들인 휘(諱) 지병(之屛), 지원(垣), 지번 (藩),지용(墉)으로 하여금 목을 베어 원한을 푸셨다.후에 그 일을 가상(嘉賞)히 여겨 열녀(烈女)의 정려(旌閭)가 내려졌 다. 한편, 청빈한 집안의 내력 때문인지 충장공의 장례를 치르 기 또한 힘들었으나 조정에서 이를 지원했으니 이는 인조실 록에 전해지고, 1653년 청 순치 10년(효종 4년) 장군을 정표 토록하였다. 1711년 숙종 임금은 뷺역적 이괄(李适)의 난441)때 전사(戰 死)한 사람 증(贈) 판서(判書) 윤정준(尹廷俊)과 증(贈) 참 판(參判) 박영신(朴榮臣)에게 시호(諡號)를 내리되, 박영신 에게는 정2품으로 올려 추증하라뷻하였으며, 1717년 (청 강희 56,숙종43)8월 19일증(贈)병조판서(兵曹判書)박영신(朴 榮臣)에게는충장(忠莊)이라는시호를내렸다. 충장공께서는아들5형제를둠으로써크게번성했다. 장자 지병(之屛)은 1634년 아버지를 죽인 원수 이수백을 동 생들과죽이고돈화문에나아가대죄(待罪)하였다. 그러나 원수(怨讐)를 갚기는 하였으나 국법(國法)을 어겼 으므로 인조(仁祖)께서 엄(嚴)히 다스리라고 하여 조정에서 극형에 처하려 하였으나 대신(大臣) 윤방(尹昉), 김류, 오윤 겸(吳允謙) 등이 그의 효성의 지극함과 한문공(韓文公)의 고 사(故事)를 들어 이들의 선처를 적극적으로 건의하여 변호를 함으로서 마침내 5인 모두 감등(減等)되어 유배되는데 그쳤 고, 그도 창평(昌平)에 중도부처(中途付處)되었다가 이듬해 에 풀려나 정릉참봉(靖陵參奉) 제용봉사(齊用奉事)로 승진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왔다가 말년에 노인수직 (壽職)으로 용양위부호군에 제수되었다. 1648년 향년 84세로 졸(卒)하였다. 아들 삼형제(燧·熺· ) 삼형제를 두었는데 장자 휘 수 (燧)는 인동부사로 승지에 증직되고 그의 아들 상형은 증 호 조판서, 손자 한명은 1740년3월(영조16년) 임금님이신 영조 가 지나가는 어가를 세우게 하고 증조부인 휘 지병(之屛)의 효심(孝心)을탄원하는상소문을올려1740년5월16일에 예조 로부터 정려의 포상을 받게 되었으며,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 (孝)로 인하여 임금께서 윤허로 증조부의 효정문(孝旌門)을 세우게하였으며,자헌대부동지중추부사이다. 효자공 휘 지병의 차자 휘 희(熺)는 중부(仲父) 휘 지원(之 垣)의 후사를 잇고, 셋째 휘 담( )은 현감이고 그의 아들 상 기, 상로는 통덕랑 상현은 은산부원군 후 졸당공 후예로 출가 (出家) 하였다. 통덕랑 휘 상기의 증손 휘 사기(思健)의 號는 손 암 (巽 岩 )으 로 1 7 5 3 년 (영 조 癸 酉 )에 태 어 났 다 . 덕 행 을 겸 비 하고문예가뛰어났으며,삼정문건립에크게기여했다. 충장공의 차자 휘 지원(之垣)은 무과에 올라 용인현감, 첨 사(僉使)이고 병조참판에 증직되고 시호는 문순(文順)으로 백형 지병과 함께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등 효자로 정려가 내 려졌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백형(伯兄)의 둘째 희(熺)를 후사로 삼 았다. 충장공의 셋째 휘 지번(之藩)은 용인현령, 남양진병마절제 도위(南陽津兵馬節制都尉)를 지냈고, 순조3년 효자정려와 함께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에 증직되었다. 아들현(炫)은칠원현감진주진관이다. 충장공의 넷째 휘 지용(之墉)은 충청수군절제사, 통훈대부 회령도호부사, 판관, 절충장군, 경상좌도병마절제도사, 통정 대부 영흥도호부사이고 가선대부에 가자(加資)되었으며, 그 의 아들 정(炡)은 장사랑, 돈(燉)은 만호, 황(煌)은 김해도호 부사이다. 충장공의 다섯째 휘 지곤(之 껭)은 증 호조참의이고, 아들 위( 쬠)는선혜청좌랑이고,손자상욱(尙郁)은무과에급제하 여오위도총관이다. △통덕랑휘영로(榮老)系 통덕랑공 휘 영로(榮老)는 갈충공의 셋째이다. 그의 손자 일장(日章)이통덕랑이다.그러나 이들후손들은 경기연천에 세거지를 두었는데 연천지역이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 전쟁 등 남북으로 분단과 수복 등의 상황에 의해 연락이 두절되면 서선조의사적이전해지지않아아쉽다. △통정대부휘영방(榮邦)系 통정대부 휘 영방은 갈충공의 넷째이다. 그의 아들 지완(之 完)은 통덕랑이고, 증손 상천(尙天)은 통정대부로 후손들은 공명을 멀리하고 산야(山野)를 벗 삼고 서책과 영농(營農)을 가까이하였으나크게번성하지못한것으로추측해본다. 갈충공파는 이상과 같이 갈충공의 아들 삼형제를 중심으로 충장공, 통덕랑공, 통정대부공 문중으로 나누어지고, 이후 충 장공문중에서는 아들 오형제(지병,지원,지번,지용,지공)를 중심으로 각기 소문중을 구성 전체 16개 문중이 합심하여 종 사를이어오고있다. 갈충공의 선조는 고려 말 조선 초 누대에 걸쳐 사환(仕宦) 으로 있어 주로 개경과 한양에 거주지를 두었다. 그러나 조선 시대 관리들이 한양의 위성도시에도 거처를 두고 있었던 점 을 미루어 보아 갈충공의 선대부터 남양주시 이패동 지역에 세거지를둔것또한이와같을것으로짐작해본다. 남양주를 세거지로 둔 갈충공의 후손들은 공(公)의 7世~9 世에이르러전국으로거주지를옮겨간것으로전해진다. 세거지를 옮기는 과정을 보면 주로 학문을 논하기 위해 스 승과 동지를 찾아가는 것과 관직의 임지(任地), 혼인관계에 있었는데 갈충공 후예들의 세거지 변천도 이와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발행된 갈충공파 파보를 보면 충장공의 장자 휘 지 병의후손들은갈충공의9세까지는남양주 선고하(先考下)이 고,10세 휘 제규(濟奎)의 묘소가 강원 원주 부론에 있다고 기 록되어 있어 부론지역 입향은 휘 제규(濟奎)공으로부터 시작 되어지금에이른것으로추론해볼수있다.이후후손들은부 론을 중심으로 서울 은평,숭인동,양주 지역에 세거지를 옮겨 간다. 효자공 지병의 셋째 담의 증손 승혁(承赫)은 양주 평구에서 밀양가곡으로이거하여우거했다. 그는 호방하고 낙천적이어서 전국에 많은 친구를 두었다. 아 마 밀 양 으 로 이 거 한 것 또 한 관향지이면서 친구들의 권유 에의한것으로짐작해본다. 충장공의 차남 휘 지원의 후손들은 경주 안강,삼남 휘 지번 의 후손들은 대구 달성 현풍,충주 소태,경기 양평,원주 홍업, 청도 각남,충장공의 사남 휘 지용의 후손들은 경기 포천 창수 면,청도 매전 용산,청도 금천,밀양 산외면, 충장공의 5남 휘 지곤의 후손들은 충주 산척, 원주, 재천, 부산에 각각 거주한 다. 갈충공의 삼남 통덕랑공 휘 영로의 후예는 주로 경기 연천 과 의정부에 세거하는데 연천지역이 해방과 함께 남북이 나 누어지고, 6·25 전쟁으로 인해 수복되는 등 일련의 과정에 남 북으로 흩어지는 아픔을 겪었으며, 주로 연천지역과 의정부 등경기지역에소재한다. 갈충공의넷째통정대부휘영방은이하손자에이르기까지 묘소가 실전되었고, 증손 휘 상천의 묘소는 밀양시 상동면 가 곡리에 소재해 있다.이에 밀양 삼랑진에 휘 영방,휘 지완,휘 문 봉 등 3 대 와 문 봉 의 손 자 휘 한 경 , 증 손 휘 이 철 등 을 설 단 하였으며,이하후손들은삼랑진과단장면에세거한다. 갈충공파 종친회 는 1989년 2월 15 일 발기인 총회를 거쳐 정관을 채택 하고 4월 11일 임원진을 선출하면서 공식 출범했다. 이는 당초 충장공 종 친회로 운영되던 것을 갈충공의 삼남 통덕랑공(휘 영로)의 후예들이 나타 나고 토지 송사가 발생하면서 충장공 문중에서 해결에 나서면서 통합 종친 회를만들었기때문이다. 초대 종산(鍾山, 가평문중) 회장이 토대를 만들었고, 은교(銀敎, 흥업문 중,1990~1997), 홍교(弘敎,가곡문중,1997~2005),종묵(부론 문중, 2005~2019) 회장에 이어 현 병수(昞洙, 가곡문중) 회장 이 지난 2019년 3월 1일 취임 지금에 이른다. 병수 회장은 종원들이 선조에 대해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 다며 전국을 다니며 자료를 수집 현재 종중요람을 만들고 있 어조만간출간될예정이다. 종친회는 각 지역에 세거하는 지역의 명칭을 따 가곡문중 (대표병수),각남문중(순호),사리밭골문중(만영),부론문중 (상기),숭인동문중(종우),양주문중(석철),엄광문중(해룡), 매전문중(표원), 원정문중(춘식), 충주문중(종갑), 은평문중 (종호),포천문중(희연),흥업문중(종성),의정부문중(용근), 가평문중(인철),현풍문중(창환)등16개소문중으로구성되 었으며, 후손들은 해마다 음력 10월 보름을 전후하여 양력 11 월 첫째 일요일에 양주 선영(先塋)에서 시향(時享)를 모신다. 제향의 범위는 洙·澈·浩·永 자 항열의 20대조이시고 원(元) 중시조 10세이며, 시조(始祖)48세인 덕천군수(德川君守)이 신 휘(諱) 명산(命山)조(祖)부터 갈충공의 6세이고 시조 59 세손인 휘(諱)한명(漢明),한유(漢維),한영(漢英)조(祖)까 지총22위(位)를모시는추원보본의정성을다하고있다. /박상섭 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뱚집성촌 뱚갈충공파종친회구성 박홍교 고문(右,6~9대회장)과 박종묵(10~18대회장)은매일이패동선 영에 나와 잡초를 제거하는 등 노년을 종중 선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종원 들의귀감이 되고있다. 박병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