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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9월30일 수요일 3 (제165호) 관향조 종친회 선조의 행장과 유훈을 답습하며 꾸준히 현창사업을 펼쳐온 순천박씨 충정공파종친회와 (사)육신사 보존 회는 지난 15일 ‘사육신 박팽년과 묘골’증보판을 영남 대학교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충정공파종친회장과 육신사 보존회 이사장을 역임한 박성규 전 이사장과 족보문집 전문업체 대보사 박도규 회장이 함께 엮고, KCC정공(주)박덕규 대표이사와 박신규 전무의 후원 으로출간했다. 박성규 이사장은 책을 엮으면서 사육신 박팽년에 대 하여는 이미 그 삶이 잘 연구되어 널리 알려져 있음에 도 그 의 행 적 을 정 리 해 놓 은 전 기 ( 傳 記 )가 없 다 는 것 이 후손으로서 못내 송구스러웠다. 다행이 2015년 8월 ‘재단법인 순천박씨장학회’에서 븮사육신 박팽년븯을 발 간하였으므로 조상에 대한 송구함은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육신중 박팽년 만이 기적같이 혈손이 남아 1479년 대구 묘골에 터전 을 잡아 동족부락을 이루고 수백 년간 살아와 그 후손 들이 번창하였는데도, 후손들이 조상의 뜻을 받들어 얼마나 충절(忠節)과 숭조(崇祖)를 지켜 왔는가에 대 하여는 단편적 기록이나 구전(口傳)뿐 정리된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그리하여 이번에 순천박씨충정공파 종 친회와 육신사 보존회가 합심하여 ‘사육신 박팽년과 묘골’을발간하게되었다고전했다. ‘사육신 박팽년과 묘골’은 내용이 1편과 2편으로 이 루어져 있는데, 1편은 사육신 박팽년과 그의 삶을, 그 리고 2편에는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 마을 묘골로 구분 하여 책을 엮었다. 다만 제1편의 경우는 이미 발 간된 ‘사육신 박팽년’의 일부 내용을 수정·조정 하여 그대로 실었으며, 제2편의 경우는 그동안 순천박씨 충정공파의 묵 시적 가훈인 븮가전충효 (家傳忠孝) 세수청백 (世守淸白)븯을 후손들이 살아오면서 어떻게 지키 고 실천해 왔는가를 말 해주는 대표적 사실들을 △ 혈손 박일산의 묘골 정착 △순천박씨 충정공 파 종중형성 △충절과 숭조를 실천한 묘골 △ 옛 정 서 다 시 띄 운 묘 골 △충절의 고장 묘골의 유적 등으로 구분 기술 하였다. 박 성 규 전 이 사 장 은 “책 을 펴 냄 에 있 어 한 가 지 분 명 히 해 둘 점은 사육신 박팽년에 대한 연구와 발표는 이 미 충분히 이루어져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새로 운 연구를 하여 이 책을 발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 표되고 잘 알려진 기록과 사실들 중에서 이 책이 의도 하는 논리와 순서에 따라 적절하게 쓰고 엮었다는 점 이다. 아울러 되도록 내용을 쉽게 기술하여 누구나 편 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하였음을 부언해 둔다.”고 말한다. 한편 ‘충정공 박팽년 선생과 묘골·육신사 이야기’와 ‘사육신 박팽년과 묘골’의 책을 발간하는 비용 3천 여 만원은 대보사 박도규 회장의 동생 KCC정공 박덕규 대표이사와박신규전무의협찬으로출간되었다. 서울 구로동에 본사를 두고 경기도 군포와 대구에 공장을 둔 케이시시(KCC)정공은 유압실린더, 공압실 린더, 공압밸브, 청정화기기 등을 전문 제조하는 기업 으로 1992년 설립됐다. 관련 분야에서 일하던 박 대표 는 당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던 이 제품들을 우리 기 술로직접만들겠다는의지로창업에나섰다. 그는 뷺자동차, 반도체 , 2차전지, 의료기기, 제철설 비, 발전소 등 공장이라고 하면 다 쓴다. 전 산업에서 쓰이지 않는 데가 없다고 보면 된다뷻며 뷺수 억원을 들 인 장비도 부품이 잘못되면 사고가 생길 수 있어 산업 전분야에서중요하다뷻고설명했다. 부품 국산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했지만 난관 도 많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제품을 내놔도 대기업들 이 국산을 안 쓰려는 경향이 뚜렷했다.여전히 전체 국 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일본 제품이 차지하고 있고 독 일 1 0 % , 미 국 7 ~8 %의 점 유 율 을 보 인 다 고 박 대 표 는 설 명했다.국산은20%남짓인셈이다. 박 대표는 뷺사무용품을 중고로 구매하더라도 장비 를 사 는 등 설 비 투 자 에 는 돈 을 아 끼 지 않 았 다 "며 "지 금도전체직원의10%인16명을연구개발인력으로유 지하고 있다뷻고 말했다. 그 결과 국내 시장 점유율을 늘려 매출은 300억원을 넘게 됐고 기술력을 인정받아 현재까지22개국에수출하는성과도냈다. ※[본기사내용중KCC정공관련기사는아시아경제 [비타민중기,김철현 기자 kch@asiae.co.kr]에 소개된 내용을옮긴것입니다.] ‘사육신박팽년과묘골’책으로선보 여 순천박씨충정공파종친회·(사)육신사보존회븣2018년초판에이은증보판 박덕규KCC정공대표가유공압 기기생산과정에대해설명하고있다.(사진아시아경제) 밀성박씨 판서공파 대종회(회장 규승)는 집행부 임원 및 종 친들이 지난 9월 12일 여주 판서공파 선조 묘원 벌초했다. 오 랜 세월 판서공파 후 부마공 후손들은 여주 입향조 충민공과 시중공, 부마공, 함양옹주, 감사공 등 5처 위토와 사패지를 50 0 여 년 동 안 보 존 관 리 하 며 삼 한 갑 족 이 요 왕 손 으 로 선 조 님 을 봉향하고 모셔왔다.현대에 이르러 정관을 고치고 정리하여 5 처 뿐만 아니라 숭의재에 판서공 휘 밀양 단을 모셨고 부마공 의형님으로야은길재의스승이신대호군(휘분)포함7위선 조님을 추향 봉향하게 되어 7위 선조님을 모시는 목적이라 종 중의목적을명확히했다. 이러한 가운데 각 소파의 임원진과 종친 모두가 화합하고 숭모 애종의 정신으로 함께 지켜내고자 대종회 주관으로 5처 묘원 벌초를 진행하여 지난 9월 12일 여주시 천남리 숭의재 내의 밀성박씨 밀산군 전법판서공 휘 밀양 추모단과 금사면 소유리 사패지 내의 판서공의 손자 삼중대광 문하시중 휘 득 중 묘원,대신면 송촌리 파사성 내 시중공 아들 부마공(휘 갱) 배위인 조선 2대 정종대왕 장녀 함양옹주 묘원 벌초를 함께 했다. 특히 하루 종일 내리는 빗줄기에도 연로하신 부마공 종 파인 박관섭 현령공파 회장님과 주부공파 박기영 신임 회장 님 멀리 전라도 신안에서 생업에 힘쓰고 계신 봉사공파 용문 문중 박종덕 회장이 함께 하였으며, 충헌공파 청년회 박명환 회장도 부산 업무중에도 숭조의 마음으로 새벽같이 달려오는 등높은숭조심을보여주었다. 판서공의 휘는 밀양, 호는 낙촌으로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 여 밀산군으로 봉순대부 전법판서와 판전교시사를 역임하였 고,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천남리에 숭의재를 서기 1958년에 전국에 산재한 종친들이 표성하여 숭의재를 건립 하였다. 또 한 뒤에 추모단비를 설단하고 음력 10월 초 정일에 시향을 지 내고있다. 판서공은 밀성박씨 밀성군 충헌공 휘 척의 증손 보문각 대 제학 밀성군 휘 윤문의 6형제 중 맏아들로 포 은 정몽주와 목 은 이색 등과 도의로서 교유 하였으며 공의 증조(휘 성진)는 협찬공신 정용장군으로 황증문하평리이고 충렬왕의 명에 따 라 군사를 거느려 일본을 정벌하러 갔으나 싸움에서 돌아오 지아니하였다.(고려사에나타남) 판서공의 부인은 문화류씨 첨의정승 찬성시녕군 장경공 휘 돈의 따님으로 훌륭한 배필이었다. 2남 4녀를 낳으니 맏이는 ‘경의’이며 공민왕 때 익재공신 병부참정을 역임하고 삼중대 광 문하시중으로 증직 되었으며 시호는 ‘충민’이다. 다음은 ‘경인'이니 공부전서 벼슬을 하였다. 사위는 별장 구희, 전서 박침,관찰사정연,전서권집중이다. /박지희 명예기자(경기가평군지부) 밀성박씨밀산군판서공파대종회선조묘원 벌초 종친모두가화합하고숭모애종의정신으로함께지켜내고자합동벌초주선 임원진이 벌초를마치고잠시휴식을취하고있다. 상주박씨 33세 손 정섭(貞燮) 公 의 부 인 보 성 오 씨 고 정열(貞烈)여 사의 손자 주석 (柱錫) 현종은 조 모의 유지를 기려 효 열 장 학 재 단 을 열어 효성과 덕성 이 있 는 인 재 를 양 성하고있어화재다. 박주석(朴柱錫-찬성공의 24세손) 한 의학박사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의 비 결과 신통한 의술로 병자를 치료하며 수 많은 시약을 출시하면서1964년 옛 충남 연기군 전의면에 유명약국을 개원하였 는데,유명약국이간과 폐질환전문약국 으로 소문나면서 고 박노식씨 등 인기영 화배우에서부터 일본 나카소네 전 국무 총리까지 유명약국을 찾을 정도로 전국 에서 손님들이 찾아왔고 시골의 조그만 역에 특급열차까지 서게할 정도로 이름 이 났다. 박 박사는 이렇게 해서 모아진 돈을 육영사업에 바쳤다.1984년 대전에 명석고등학교를 개교하여 ‘의연한 덕성 인, 진취적인 실력인, 헌신적인 활동인’ 라는 교훈으로 ‘원만한 인격과 품성을 바탕으로 자아실현에 힘쓰며, 국가발전 에 이바지하는 유능한 인재 육성’에 힘 을기울였다. 유명약국을 개원한 뒤 해마다 20명의 전의중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면 서 장학사업을 시작하던 박 박사는 20대 초반에 과부가 되어시부모께 지극한 효 열로 성균관으로부터 표창되었던 그의 조모인 효열부(孝烈婦)고 오정열(吳貞 烈) 여사의 유지를 기려 1996년에 자본 금 6억 원으로 효열장학재단을 설립 대 전과 충남북 소재 고교 중 효행심이 투 철하고 성실·근면하며 학업성적이 우수 한 학생을 선발하여 2020년까지 1073명 에게 5억 1천 4백만원의 장학금을 지원 해 온 박 박사는 ‘배움에 정진해 인(仁) 과 도 ( 道 )와 교 ( 敎 )의 근 본 이 되 는 효 (孝)를 중히 여기는 따뜻한 인재가 되 길’강조하고있다. /제공상주박문朴太淳 조모(祖母)의효열을기리기위해장학재단설립한박주 석박사 祖母吳여사의효열을기리기위해명석고교내에세운효열비앞에서장학금수상자들과 함께하고 있는효열장학재단 박주석이사장(앞줄가운데) 1,073명에게장학금5억1천4백만원지원븣2010年국민훈장석류장수훈 박주석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