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page

2020년6월30일 화요일 7 (제162호) 관향조 종친회 뱚▲ 병절 교 위 공 휘 매 (梅 ) 파 (派 ) 1907년 지금의 광양 서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광명학교를 세워 광양지역에 신식교육을 맨 처음 실시한 선각자 술재 박 희권(述齋 朴熙權) 선생은 구한말 대학자로 독립지사인 매천 황현선생과함께봉강면봉계리에정자(居然亭)을지어후학 양성과조국광복을위한꿈을심어주었다. △ 광 양 골 약 문 중 은 계공랑(啓功郞)휘당 公이고, △순천 해룡 계당문중은 계 공 랑 의 아 우 양 (讓 )의 아 들 은 익 남(益南)으로 그의 6대손 명형(命亨)이 통정대부에 증직 가 자되었으며, △광양 도청문중은 휘 민 복 의 넷 째 휘 진 (診 )으 로 손 자 효 남(孝楠)이가선대부에증직가자되었다. 병절교위 휘 매(梅)는 운곡공의 차남으로 중종조에 병절교 위 부사맹으로 숙인 청주양씨와의 사이에 아들 대붕(大鵬)을 1525년 낳았는데 휘 대붕은 효성과 함께 불의를 보면 참지 못 하는 강직한 성품으로 사마시에 급제하여 주부로 내금위 승 위부위에 봉직하였다. 1589년 정여립의 변란인 기축옥사(己 丑獄死)때에 상소를 올렸다가 투옥된 후 풀려나 낙향하였다. 당시 상소는 간신을 소탕해야 한다는 것인데 오히려 간신들 에의해투옥된것이라하겠다. 이때 올린 상소는 대부분 호남 유생들로 진사(進士)정암수 (丁巖壽)븡박천정(朴天挺)븡박대붕(朴大鵬)븡임윤성(任尹聖)븡 김승서(金承緖)ㆍ양산룡(梁山龍)븡이경남(李慶男)븡김응회 (金應會)븡유사경(柳思敬)븡유영(柳瑛) 등이다. 이들은 고봉 기대승의문인이기도하다. 남포공또한고봉선생의문인으로선생의죽음에5언4수의 장문의 만사(挽詞)가 고봉전서(高峯全書)2권 만장편에 전해 지고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창의하여 함양인 황탄공 박천정, 음성인 회재 박광옥 선생등과 의병활동을 하였으며, 중봉 조헌, 제봉 고경명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많은 왜적을 물 리치고 장열하게 전몰하였으니 상사 동백 와룡산 아래에 초 혼 장사했다. 남포공의 활약상은 금산사재 절의록, 호남절의 록에 전해지고 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남포공의 기축, 임진 두 절의 천고의 유풍을 세운 행적을 기리기 위해 이천서원에 족대부도원재공,조부운곡공과함께배향되었다. 남포공은 숙부인 김제김씨와의 사이에 아들 둘을 두었는데 장자는 민홍(敏弘)으로 음직으로 절제사를 지냈고, 그는 아 들 근(謹, 字 愼甫)을 근은 희훈(希勛)을 희훈은 시영(時英), 시웅(時雄), 시원(時元), 시걸(時傑)을 낳으니 장남 시영은 문장이 뛰어나 문사로 승평지 8문장의 한분으로 추앙받았으 며, 강남악부(18세기 발행) 인물편에 보허사(步虛謝)가 실렸 다. 1683년(숙종9) 선무랑 사복시정과 주부에 오르고 슬하에 동상(東相),동현(東賢),동혁(東赫),동만(東蔓)을 두었으니 이들은순천신월문중(순천조례동)으로세계를이룬다. 차남시웅은아들상강(尙綱)을낳으니 연동문중이고,삼남 시원은 동수(東秀), 동도(東道), 동준(東俊), 동형(東亨), 동 린(東麟)으로 장남 동수(東秀)는 성리지학에 뛰어나 후진을 지도하고장려했다.물러나이천위에동백나무를심고우거하 며 동정(冬亭)이라 자호하니 겨울추위에 변하지 않은 절개와 뜻을 함께하지 선생의 고절(孤節)을 연상케해보며 현재 상사 면 동 백 리 의 지 명 또 한 선 생 으 로 연 유 하 여 이 루 게 된 것 으 로 동정문중이라한다. 차남 동도(東道)는 숙부 필유에게 출계하였고, 삼남 동준 (東俊)은 1679년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증직되었고,동산문중이다.사남동형(東亨)은영조무신란에 병판 오명항에게 자청하여 출정 장군하여 안성 죽산등지에서 승리하고 남은 잔당을 소탕 주살하니 그해 4월에 가선대부에 가자되고 그 사실이 문헌록과 공신록에 전해지고 비월문중 (서면황전)이다. 오남동린(東麟)은늑곡문중(서면구상)이다. 희훈(希勛)의 사남 시걸(時傑)은 동정(東禎)과 동구(東 龜)을 낳으니 이들은 쌍천(순천 상사) 문중으로 휘 동구(東 龜)는학행으로숭록대부호조참의에증직되었다. 절재공 민홍의 차남 휘 간(諫)은 선교랑 북부주부이고 통훈 대부 장악원정에 증직되었다. 그의 아들 희열(希說)은 증 통 훈대부 장예원 판결사에 증직되고 슬하에 원신, 필대, 필유를 두었는데, 이중 장남과 차남은 무후이고, 삼남 필유(必裕)는 영조조에 가선대부 한성부좌윤 겸 오위장 도총부부총관에 증 직되었으며,후사가없어종제시원(時元)의차남동도(東道) 를후사로삼고대려문중(순천상사)이라한다. 남포공의 차남 민의(民毅)의 아들 순(詢)은 만호(萬戶)이 고, 손자는 희현(希賢), 증손은 시규(時奎)이고, 현손은 동보 (東輔)인데 여수문중(여수 달천)으로 남포공 후손들은 신월 (휘 시영), 연동(휘 시웅), 동정(휘 동수), 동산(휘 동준), 비 월(휘 동형), 늑곡(휘 동린), 쌍천(휘 시걸) 등 6개 지파문중 으로각각나뉘어졌다. △신월문중(휘시영) 신월 문중은 순천시 조례동 지역으로 문호를 연 휘 시영은 문장이 뛰어나 문사로 승평지 8문장의 한분으로 추앙받았으 며, 강남악부(18세기 발행) 인물편에 보허사(步虛詞)가가 실 렸다. 1683년(숙종9) 선무랑 사복시정과 주부에 오르고 슬하 에 동상(東相, 號 樂志), 동현(東賢), 동혁(東赫), 동만(東蔓) 을 두었는데 차남동현(東賢)의현손명진(命鎭)의 처경주김 씨는 휘 지권의 따님으로 천성이 화순하며 시집갈 나이에 편 모에 효양한 아름다움이 사방으로 소문났다. 출가 후 시부모 에게 극진히 효도하고 남편에게는 열부가 되었다. 남편이 악 질피부병과 학질로 고생하니 이불에 매일 땀을 적시게 하고 지성으로 백약을 구하니 독사소굴에 약효 있다는 것을 알고 계획 없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기필코 구하였다. 자기 몸이 절 명할 지경에도 지성을 다하여 목욕재계 하고 하늘에 죽기를 축원하였다. 대변을 맛보고 병환을 살핀 후 왼쪽 넓적다리 살 을 손바닥만큼 잘라 화로 불에 구워서 식사에 올리니 남편이 먹으면서 왠 고기가 이렇게 맛이 있냐고 하였다. 그것을 먹고 입맛과 생기가 돌아와 소생하니 사람들이 하늘이 내린 열부 라하고 누구나 그런 행위는 할 수 없다고 거듭 말하다 향리와 도에서수의(어사)에게열부로천거한사적이도지에나온다. △연동(휘시웅)문중 은 순천시 서면 연동마을을 주 세거지 로분포되었다. △ 동정(휘 동수)문중은 순천시 상사면 동백마을에 세거지 를 두고 있으며, 문호를 연 휘 동수성리지리학에 뛰어났으며 동백리의 지명 또한 공의 연유한 것이다. 공은 이천위에 손수 동백나무를심고동정(冬亭)이라자호했다. 동정공의 차남 화춘의장남 휘 사량(思良)은 천성이 온후하 고 인품이 고결하며 학문에 밝았고 인의예효제신(仁義禮孝 悌 信 ) 을 몸 소 실 천 하 여 후 진 을 계 도 하 고 덕 을 쌓 아 향 리 에 칭 송이 자자할 뿐 만아니라 종숙(從叔)과 종방간 등 종친 47현 (賢)으로 문계(門契)를 조직하여 당시 농경사회의 어려운 경 제적 여건을 극복키 위해 근면,성실,절약정신을 일깨워 선영 의 묘소를 단장하고 제반 길흉사에 상부상조케하며 공과(功 過)를 철저히 가려 상벌하고 문재(門財)를 증식하여 남포공 파의 반석을 든든히 하였으며, 지혜로 문계(門契) 안(案)을 작성하시어 후대에 남겨 오늘날 후손들이 친목을 도모하며 정을나누며오순도순살아갈수있는지침서를제공했다. 화춘의 현손 휘 기섭(琪燮)은 고종조에 통훈대부 사헌부감 찰에 증직되고, 부인 광산이씨는 17歲에 시집와 孝와 禮를 다 하고 仁을 행하는 부도(婦道)는 항상 타인의 모범이 되었다. 결혼 후 부군이 병환으로 위급하자 자신의 엉덩이 살을 잘라 봉양함으로서 위기를 넘겼으나 겨우 2년만에 부군을 잃었다. 같이 세상을 떠나려 하였으나 시어머니께서 노환으로 병석에 계시니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노모님을 보양하였다. 얼마 후 이어머니도 운명하시여 상례와 제례를 정성으로 모시고 집안 을 잘 다스렸으니 비장하고 훌륭한 효열부이다. 효열(孝烈) 지극하다는 소문은 멀리 퍼져 이 소문을 들은 순천 유생들이 상소하여 고종8년(1904)에 정려가 내려져 그 고귀한 행적은 후세에이어지며자자손손지표로삼고있다. △동산(휘 동준)문중은 순천 서면 동산마을을 세거지로 하 고 있 다 . 문 호 를 연 휘 동 준 은 수직으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 사이다. △비월(휘 동형)문중은 순천시 서면과 황전면의 후손들을 말하고 있다.문호를 연 휘 동형은 이인좌의 난에 창의한 공신 이고, 공의 셋째아들 흥춘의 아들 사태(思泰)는 재예가 특출 하고 문학이 독실하며 특히 성리학에 조예가 깊다. 효도와 우 애는 하늘이 내리고 여러분들이 와서 배움을 준 사적이 승평 지에 전해지고 통정대부 사복시정에 증직되었다. 그의 손자 영순(英淳)의 호는 묵와(默窩)이고, 문예가 깊고 경서(經書) 탐독에 게을리 하지 않아 향리에서 추앙받았으며, 부모를 섬 기는 효를 실천함에 있어 극진하고 형제간의 우애 깊었다. 90 이 가까움에도 유도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으니 사림의 모범 을보였다. 영두(英斗)공의 호는 검계(儉溪)이다.천성이 강직하고 대 의에 뜻을 지킴이 강개하다. 1877년 극심한 가뭄과 흉년으로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지자 구걸하는 거지가 넘쳐날 때 창고 를열어구휼하니그선행이지금도회자되고있다. △늑곡(휘동린)문중은 순천시 서면 구상리에 집성촌을 이 루고 있는 문중으로 늑곡문중의 문호를 연 휘 동린(東麟)은 상춘(常春)과희춘(熙春)형제를두었는데,장남상춘의장남 사임(思任)의 손자 명석(命碩)은 홍문관 대제학 의정부 좌찬 성에 증직되었고, 상춘의 차남 사열(思烈)은 가선대부에 가 자되었는데, 천성이 총명하고 재예가 일찍이 이루어져 문학 과 효행이 뛰어나 그 기록이 도지에 전해진다.그의 아들 회원 (會源)의 호는 송암(松菴)으로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에 손자 순재(淳材)는 가선대부 호조 참판에 각각 증직 되었 다. 이상과같이판서공파는경기남양에서전남순천지역에남 하하여 지역의 문풍을 일으켰고, 절의와 효행으로서 지역민 을 순화하면서 입향 490여 년 동안 지역의 토반으로 자리했음 을 알 수 있 다 . 이조판서를 역임한 판서공 휘 안례의 아들 하(遐) 또한 이 조판서를 역임하였고, 손자 기(寄)는 이조참판(吏曹參判)를 역임하니 역사상 전무후무한 3대(代)에 걸쳐 판서를 지냈으 니 가히 명문가의 대를 이었다 하겠다. 경기도 남양은 한양에 서 벼슬하는 고관들의 세거지로 유명하다. 도성과 인접하기 때문이다.판서공의6世휘증손(曾孫號雲谷)은1496년 경기 도 남양에서 태어나 관례(冠禮) 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1519년 기묘사화로 족대부 도원재공께서 강계로 유배를 가면 서 세도(世道,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의 병이 날로 깊으니 영진하지 말 것을 당부하여 십 여 년간 몸을 감추고 도 학에 전념하던 차 1530년 도원재공의 부음을 듣고 단신으로 강계로 가서 시신을 수습하여 남양으로 운구 안장한 후 부인 청주한씨와 아들 기(奇), 매(梅) 형제와 가족 그리고 사위 양 천인 허형을 대동하고 남하하여 전남 순천 황전을 거쳐 상사 면쌍지에정착했다 이후 운곡공(휘 증손)의 아들 형제 중(기, 매) 장남 기(杞) 는 광양파로 광양시 봉강면으로 이거해 집성촌을 이루고 있 으며 차남 휘 매(梅)의 후손들은 순천파로 불리우며 순천시 상사면서면일대에세거지를이루어오고있다. 운곡공의 장남 기(杞)의 손자 민행의 후예는 여수 율촌 평 촌에 세거지를 이루고, 민복의 후예는 장남 인의 아들 신방이 여수율촌 행정마을에 차남 신국은 광양봉강에 남았고, 민복 의 차남 당의 후예는 광양 골약 중동, 삼남 위 양의 후예는 순 천시 해룡면 계당마을,사남 진의 후예는 광양 도청에 각각 집 성촌을이룬다. 운곡공의 차남 휘 매의 후손들은 6~7세에 이르러 각기 세거 지를달리한다. 장손가의 휘 동상은 순천 신월,휘 상강의 후예는 순천 서면 연동, 동수(東秀)는 순천 상사면 동백리, 휘 동수의 차남(휘 화춘)과 사남(휘 광춘)은 용마의 형상을 하고 있는 형국인 마 륜마을 입향조이고, 휘 동준은 서면 동산, 그의 동생 동형은 서면비월과연동,신원에 동린은 서면 구상(늑곡)휘 동정·동 구 형제는 순천 상사면 쌍지마을, 휘 동도는 순천 상사 응령, 휘동보는여수시소라면달천등에세거한다. 판서공의 차증손 휘 양(良)의 후예들은 전남 장성에 세거리 를 두고 있으나 그동안 순천의 후예들과 교류가 없었으나 지 난 2015년 을미보 수보 때 어렵게 찾아 몇 세대가 동참하게 되 었다. 뱚 ▶6면에서계속 이천서원전경,전남순천시상사면동백리 문강공박세희,운곡공박증손,남포공박대붕선생의학덕과 충의정신을기리기위해건립되었다. 운곡정사(雲谷精舍), 운곡공(휘 증손)이 입향이후 도학을 연구하고 강학 하고향리의자제들을모아양성한 곳이다. 지모재(持慕齋)-광양시봉강면봉당리,봉천종중의 구심점이 되고있다. 추모당,여수시율촌면행정마을 입향조휘시석(時碩)이하 5지파후손들의납골당으로 옆건물은행정문중의재사(齋舍)이다. 순천해룡계당문중齋舍,해룡면신성리 운곡공의현손휘양(讓)이하 선조의묘역경내에위치하고,제사하는곳이다. 거연정,광양시봉강면봉계리 술재박희권(述齋朴熙權)이 후학양성과 조국광복을위한 꿈을심어주었 다.독립지사인매천황현선생의기문이 있다. 늑염재-상사면마륜마을 입향조 휘 화춘·광춘 공을 비롯한 8대의 선조님 제 향을 받들며 마륜문중 의구심점이 되도있다. 입향조의 현손 휘 기섭(琪燮)의 부인 광산이씨 정려, 전남 순천시 상사면 마륜리 입향조 화춘의 장남 휘사량(思良) 유덕비, 천성이 온후하고 인품이 고결 하며학문에밝았다. 박관화 효행 기적비 및남포공의 11대손 휘 종수의 부인동래정씨 효열부 기적비,상사면초곡리입구 늑곡재,순천시서면구상리 입향조 휘 동린 이하 선조 재사(齋舍)이며, 늑곡문중의 종약소이기도 하 다.(▶1면준공식참조) 뱚집성촌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