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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6월30일 화요일 2 (제162호) 제의(祭儀) 조선시대에 들어와 국가의례의 정비는 1413년(태종13)에 이르러 큰 진전을 보게 되었다. 이 해 4월에 처음으로 사전체 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大·中·小사(祀)의 분등(分等)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한해 앞서서 허조는 기자에 게 예를 드리고 하륜은 단군에게 제사를 드리자고 청하였고, 이에 예조가 단군과 기자를 사전에 싣고 춘·추에 제사를 드리 도록 하였다.그리고 다음해에도 단군,기자에 대해 예조가 같 은입장을취하였다. 이상과 같은 것이 바탕이 되어 다음해 11월에 예조에서는 당의 예악지(禮樂志)에 따르면 옛날의 帝王을 중사에 놓았으 니 단군, 기자, 전조의 태조를 중사로 올려야한다고 주장하였 다. 그리고 이를 반영한 내용으로 1414년(태종14)에 이르러 단군,기자,고려의 시조에게 제사하는 의주를 상진하였다.그 런데 여기서 하나 주의할 사항은 전조의 태조 즉 고려시조에 대한 반영인데, 이것은 건국 초에 단군과 기자를 언급하면서 고려시대의혜왕(惠王),현왕(顯王),충경왕(忠敬王),충렬왕 (忠烈王)이 백성에 공이 있으니 마전군(麻田郡)에 있는 태조 묘에붙여서제사지내야할것이라는내용이있다는점이다. 그러면 이때 과연 단군,기자와 고려의 태조 뿐 아니라 혜왕 이하의 4위도 역대 시조의 범주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이다.이 4위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지만 하여튼 1427년(세종9)에 세 종은 예조에 단군과 기자의 묘제를 다시 의논하고 삼국의 시 조에게 묘를 세워 치제하는 것을 ㄱ제로 상고하여 상세하게 아뢰라고하는명령을하게되었다. 일단 이 당시 그 명령이 제대로 수행했는지는 모르겠다. 그 렇지만 그 이후 호조에서는 충청도,경상도,평안도에 있는 삼 국시조에 대하여 각각 제전(祭田)을 2결씩 지불하도록 청하 여 허락을 받았다. 곧이어 오해의 소지가 있었는지 사전에 실 려있는 각 도의 신위전은 2결씩이지만 평양의 단군,기자등의 중사 위전은 3결씩 지불하였고, 마전현의 고려 시조 이하 4위 도 역시 삼국 시조의 예에 따라서 1위당 3결씩 지불하도록 하 자는호조의건의를수용하게되었다. 이와 같은 정리과정을 거쳐 세종 19년에 다음과 같은 결정 이내려지게되었다. 『예조에서 제도(諸道)의 순심별감(巡審別監)의 계본에 의거하여, 악 해독·산천의 단묘(壇廟)와 신폐(神牌)의 제도를 상정하기를, 븣 경기븣 마전현의고려시조이하 4위는중사이고, 사우는태조신성대왕은남향이 며,현종원문대왕은동쪽에있고,문종대왕은서쪽에있으며, 충경앙은동 쪽에있고... 충청도. 나라에서행하는직산현의백제시조는중사이고, 신 묘(神廟)의 위판은 백제시조라 쓰고, 공주·웅진은 중사이고, 묘(廟)의 위 판은종이를바르고웅진지신이라쓰고븣. 평안도. 나라에서향하는평양 부의평양강은중사이고, 단의위판은평강지신이라끄고, 기자는중사이 고, 전의 위판은 조선시조기자라 쓰고, 고구려의 위판은 고구려시조라 쓸 것.』 위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세종실록’오례와는 다른 점이 여 러 곳 눈에 띤다. 먼저 중사의 대상으로는 ‘세종실록’ 오례에 서 단군과 기자, 고려시조로 규정되어 있다면 이 기사에서는 이들 뿐 아니라 삼국의 시조가 눈에 띤다.그런데 삼국의 시조 중에서도 고규려의 주몽과 백제의 온조의 경우에 관할 지역 과 더불어 그 소속이 드러나 있지만 신라의 박혁거세는 여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세종실록’ 지리지의 내용에 따르면 기자묘는 1430년(세종12)에 설립하도록 명하 였고, 단군묘가 1429년(세종11)에 설립되었는데 고구려 시조 인 동명왕을 합사하였다고 한다. 이때 단군은 서쪽에, 동명왕 은 동쪽에 각각 남향하였다고 한다. 여기서도 백제의 시조인 온조와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이 나오는 반면 신라 시조 박혁 거세는나오지않는다. 이러한 부분은 세종시대 이후에도 여전히 지적되었다.경종 대의 기록에 의하면 1429년(세종11)에 세종이 숭덕전을 창건 해서 박혁거세를 치제했다는 지적이 그것인데, 이 때에는 신 라 시조에 대하여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지만 향과 축문을 내려경건하게향사했으나전수(典守)할사람이없어서떠들 썩했을 뿐이다.’라고 이해한 것이다. 한번 시행했지만 사람을 두고제도적으로운영하지못했다는점이지적되고있다. 단종대에는 경창부윤 이선제가 상소를 통하여 지금 평양에 서 단군의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이것은 원래 황해도 문화현 의 구월산에 있던 삼성당에서 단군의 사당을 옮긴 것이기 때 문에 구월산에서 다시 상성당의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 이것이 반영되어 1472년(성종3)에 황해도 관찰사 이 예(李芮)의 청으로 삼성사의 위판을 문화현 구월산에 만들고 제사를지내도록조처한경우가있었다. 사실상 세종대 이후에 나와 있는 삼성사를 통한 제사의 강 조는 왕우지(王牛知, 뒤에 王循禮로 바꿈)라고 하는 고려 왕 씨의 후손을 공주에서 찾아내어 마전현에 옮겨 오도록 토지 를 주었고, 또 왕순례(王循禮)를 숭의전 부사로 삼아 왕씨의 제사를 끊이지 않도록 했으며 그 제사가 계속 이어지도록 하 였다. 세조대의 초반부에는 양성지(梁誠之)가 상소를 올려 유사 로 하여금 전조의 시조들이 몰려있는 지역들을 대상으로 살 펴보아 공덕이 있는 자는 수능(守陵) 3호를 두도록 하고, 없 는 자에게는 2戶를, 정비(正妃)는 1호를 둠으로써 부세를 견 감하고 요역을 면제하며, 초소(樵蘇)를 금하도록 하였다. 그 리고 조선 단군의 신주를 조선시조단군지위(朝鮮始祖檀君之 位)로 고치고, 후조선 기자를 후조선시조기자지위(後朝鮮始 祖箕子之位)로고구려시조를고구려시조동명왕지위(高句麗 始祖東明王之位)로 각각 고쳐 부르게 함으로써 올바른 명칭 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렇게 명칭과 대우를 달리 하더니 왕이 직접 영숭전(永崇殿)을 제사 하였고, 마침내 단군과 고구려 시조, 기자전에 나아가 친히 친제를 하였다. 그리고 고구려의 시조가 막강하였음을 설명하였고, 그의 친제 의식은 실록에 덧붙여놓았다. 다음은찬실도에제시되어있는제수를가지고상차림을보 도록하자. 풍운뇌우찬실도의 상차림을 보면 기본 구조는 10변븡10두에 해당한다. 국가제사에서 가장 높은 大祀인 종묘나 사직은 좌 변으로 12변븡우변으로 12두인 반면에 풍운뇌우찬실도를 비롯 한 중사의 경우 10변븡10두라는 점이다. 이중에서 빠지는 것은 분자(粉 沁)와 구이( 녈餌)의 2변과 이식( 食)과 삼식( 쇱 食)의 2두이다. 폐비(幣 )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펼쳐 있는 양과 돼지의 7가지 신체를 담아놓은 조(俎)를 두고 있으며, 만약에 소가 들어오면 왼쪽에 조를 가운데로 밀고 소고기를 놓는다.나중에박혁거세를대상으로하는숭덕전의경우에는 더 낮 은 8 변 븡8 두 의 상 차 림 을 하 였 다 . 신라 시조묘인 숭덕전의 제향은 영정조대에 정비되었다.특 히 숭덕전의 제향은 다른 시조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2월과 8월상순의좋은날을길일로선택하여거행되었다.특히정조 대에는 매년 각신이 봄과 가을에 향과 축문과 예물을 가지고 내려가제사를지내는것이항례가되었다. 이와 같은 숭덕전의 제향 시 사용된 제기와 제수에 대해 구 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료가 정조 16년(1792)의 기록이 다. 당시 각신 이만수(李晩秀)가 전국 각지의 시조묘와 왕릉 에 제사를 지낼 때의 별단을 통해 숭덕전 제향 때의 제물과 제 기의 종별을 확인할 수 있다.곧 숭덕전의 제물은 동지의 제사 를 전례로 삼아 장만하는데, 벼[稻], 기장[梁], 개암[榛], 밤 [栗],희생[牲],포,김치,젓갈 따위였다.이와 함께 제기는 제 상 2 개 , 향 상 1 개 , 촛 대 2 개 , 보 와 궤 각 각 2 개 , 목 두 6 개 , 죽 변 1 0개, 작 6개이며, 술독이 있고, 술잔[尊] 1개와 국자 1개이다. 곧숭덕전의제향은팔변(八 븅),팔두(八豆)의제기를사용하 고있었던것이다. 당시 논의를 통해 숭덕전의 춘추의 절사(節祀)에 들어가는 각종 제물이나 제수 등의 비용도 국가에서 위전을 마련하고 군역을 면제한 댓가로 지불하였음을 알 수 있다.곧 춘추의 제 향 때에 들어가는 벼가 28섬이고, 돈이 104냥이고, 남은 숫자 는 벼가 14섬,돈이 46냥이었던 것이다.이에 숭덕전에서는 제 수를 본부에서 회감(會減)하고, 위토전에서 나오는 것과 능 졸에게 군역을 면제한 대가로 받은 돈을 전량 비축해 놓을 수 없으니, 제각, 제수를 수리 개조하는 등의 절목과 능감, 능직 에게주는봉급따위는모두공비를쓰지않도록하였다.곧숭 덕전의복호(復戶)는22결이었다. 이러한 전례를 따라 현재 숭덕전 제향 때에는 팔변, 팔두를 기본으로 삼아 신실 안쪽 가장 중앙에는 신위를 놓고, 그 앞 제상 위에는 제수를 제기에 담아 진설하고 있다. 신위에 가까 운 첫째 줄에는 동서로 변 8기와 두 8기를 놓는다. 변에는 녹 포, 개암, 전어고기, 찰떡을, 두에는 메밀떡, 소고기 저린 것, 미나리, 돈배기를 놓는다. 둘째 줄에는 동서로 보와 궤를 놓 고, 여기에 찐쌀과 기장쌀을 담는다. 그리고 연밥과 밤, 노루 회와 대죽순을 놓는다. 셋째 줄에는 보궤에 찰기장쌀과 피쌀 을담고,나머지에는 말밤,대추,소금,정구지,생무,토끼고기 저린 것을 놓는다. 넷째 줄에는 양 1마리와 돼지고기 1마리를 희생을 놓고 그 옆에 냉수를 놓는다.다섯째 줄에는 폐로 모시 20자를 비 속에 넣어 진설한다. 여섯째 줄에는 작 3개를 받침 위에 올려 놓는다. 제상 앞에는 향로 1쌍을 놓고 그 좌우로 촛 대1쌍을배치한다.위의사항을정리하면다음의표와같다. 이와 같은 숭덕전 제기의 종별은 정조 16년(1792)의 기록에 의해서이다.이를 통해 숭덕전은 시조묘의 예에 의해 팔변(八 븅),팔두(八豆)의예를갖추도록하였다.이에 제기의종별은 제상 2개, 향상 1개, 촛대 2개, 보와 궤 각각 2개, 목두 6개, 죽 변 10개, 작 6개, 술독, 술잔[尊] 1개, 국자 1개 등이었다. 현행 숭덕전제향의진설도를살펴보면다음의그림과같다. 한편숭덕전에서사용하는제기의종별과제수의내용을간 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우선 변은 대나무로 만들며,마른 제수를 담는 제기이다. 여기에는 8가지 제수를 담는다. 개암 (은행으로 대용함). 마름(연뿌리로 대용함), 가시연밥의 열 매, 사슴고기포(쇠고기포로 대용), 생밤, 마른 대추, 말린 물 고기포(대구포), 마른 소금이 그것이다. 두는 나무로 만들며 젖은제수를담는제기이다.여기에는미나리4치로잘라묶은 것,토끼고기 1마리,죽순 4치로 잘라 묶은 것,물고기 젓(조기 를 소금에 절여 만든 돈배기), 부추 4치 크기로 잘라 묶은 것, 쇠고기 장조림,무를 4치 크기로 깎뚝 썬 것,노루고기 절인 것 (쇠고기로대용)이다. 보는 놋그릇으로 만들며 벼(쌀로 대용하나술밥으로 찐 것) 와 기장(차좁쌀로 대용하며, 술밥처럼 찐 것)를 담는다. 궤는 놋그릇으로 만들며 수수(술밥 정도로 찐 것)와 피(좁쌀로 대 용하며술밥정도로찐것)를담는다. 조(도마)에 나무로 만들며,2가지 희생을 담는다.희생은 돼 지고기와 양고기(염소고기)이다. 갑은 나무로 만들며 희생을 담아조위에올려놓는다. 작은 유기로 만든 술잔이다. 점은 유기로 만들며 술잔 받침 이다. 희준은 유기로 소 형태로 만드는 술 단지이며, 예제를 담는다. 상준은 유기로 코끼리 형태로 만드는 술단지이며, 앙 제를 담는다.산뢰는 유기로 만들며 청주를 담는 술 단지이다. 멱은 술단지를 덮는 덮개이며,가는 칡베로 만들며,구름과 우 레를 그린다. 용작은 유기로 만들며, 술을 뜨는 국자이고, 손 잡이 끝이 용머리 모양으로 되어 있다. 향로는 유기로 만들며 향을 사르는 제기로,다리는 삼발이며 양 옆에 기둥이 두개 있 다.향합은유기로만든목향을담는제기이다.형은유기로만 든화갱을담는제기로발이세개다.등은도자기로만들며대 갱을 담는 제기이고 모양은 두와 같다. 모혈반은 유기로 만들 며 모혈을 받아서 올리는 제기이다.준뢰는 제향 때에 술을 담 는구리로만든술통이다. 가. (변) : (대나무로 만든 마른제수를 담는 제기)에 담은 제 수8가지 1. 진자(榛子) : 개암(개암나무의 열매. 도토리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껍데기는 단단하고 노르스름하다. 맛은 밤과 비슷 하나더고소하다.)=은행으로대용함. 2. 능인(菱仁) : 마름(마름과에 속한 한해살이풀. 연못이나 늪에서 자란다. 뿌리는 진흙 속에 박고 줄기는 물위에까지 가 늘고 길게 뻗는다. 잎은 줄기 꼭대기에 뭉쳐나고 삼각형이며, 잎자루에 공기가 들어 있는 부낭(浮囊)이 있어서 물위에 뜬 다. 여름에 흰 꽃이 피며 마름모꼴의 열매가 열리는데 이것을 까서먹는다.주로방죽에자생한다.)=연뿌리로대용함. 3.감인감:가시연밥의열매(연밥) 4.녹포(鹿脯):사슴고기포(쇠고기포로대용함) 5.율황(栗黃):생밤그대로사용 6.건조(乾棗):마른대추. 7.어수:말린물고기,물고기포(대구포). 8. 형염 : 원래는 소금을 뭉쳐서 호랑이 형태로 만들었으나 지금은마른소금을그대로사용함. 나.두(豆):(나무로 만든 젖은 제수를 담은 제기)에 담은 제 수8가지 1. 근저 : 미나리를 아래와 위를 잘라 4치(寸) 크기로 만든 다음실로묶어서진설한다. 2. 토해 : 토끼고기(토끼를 잡아 껍질을 벗기고 온마리 그대 로사용) 3. 순저 : 죽순을 잘라 위를 4치(寸) 크기로 만든 다음 실로 묶어진설(도라지로대용함). 4.어해:물고기젖(조기를소금에절여서만듬) 5. 구저 : 부추를 아래 위를 잘라 4치(寸) 크기로 만든다음 실로묶어진설. 6.담해:잘게썬쇠고기를간장에넣고조린반찬. 7.청저:무를4치크기로깍두기형태로썰어진설. 8. 녹해 : 노루고기를 말린뒤에 그것을 얇게 썰어 가지고 누 룩 및 소금물을 섞어서 좋은 술에 담가서 항아리 속에 백일동 안두어만듦(현재는쇠고기로대용함). 다.보( 빠)에담는제수두가지 1.도(稻):벼(쌀로대용하나술밥정도로찐다.) 2.양(梁):수수(차좁쌀로대용하나술밥정도로찐다.) 라.궤( 눗)에담는제수2가지 1.서(黍):기장쌀로사용(술밥정도로찐다.) 2.직(稷):피(좁쌀로대용,술밥정도로찐다.) 마.조(俎,도마)에담는희생(犧牲)2가지 1.시성(豕腥):돼지고기(온마리를사용). 2.양성(羊腥):양고기(염소고기.온마리를사용). 바. 제주(祭酒) : 찹쌀과 누룩으로 만들어 찌거기가 없이 맑 을 술 로 떠 서 사 용 . 사.백병(白餠):흰절병. 아.흑병(黑餠):쑥을넣어만든절병 븮국조오례의븯에보이는숭덕전의제례 븮국조오례의븯風雲雷雨饌實圖(歷代始祖同) 뱚숭덕전의제향과진설 뱚■숭덕전제향시제기와제수 뱚숭덕전의殿享(전향)祭需(제수)설명 제기 품명 대용품 비고 변 녹포:사슴고기말린것 소고기 길이21㎝,넓이7㎝,두께1㎝ 진자:개암 은행 1되(잣으로대용) 어수:물고기포 조기 1손(대구포로대용) 강인:연밥 잣 반되(호두로대용) 황률:피밤 밤 피밤 능인:말밤 호두 은행 대용 건조:마른대추 대추 마른대추 형염:굵은소금 소금 두 탐해:짐승고기절인것 소고기 가로15㎝,세로15㎝,두께7㎝,돼지고 기장조림 근저:미나리 미나리 어해:돈배기 돈배기 탐해와같은크기 녹해:노루회 소고기 소고기절인것을대용 순저:대죽순 대죽순 구저:정구지 부추 청저:생무 생무 토해:토끼고기말린것 토끼고기 털벗긴것1마리 보 도쌀불린것 쌀불린것 1되 양:찰기장쌀 차조 1되 궤 서:기장쌀 메밀 2되:빻은것 직:피쌀 청좁쌀 1되 백병:쌀떡 쌀가루 1되,약과크기 흑병:메밀떡 메밀 2되:빻음 조,갑 양성:양1마리 양 수컷큰것1마리 시성:돼지1마리 돼지 20관전후수퇘지 준 청주 술 현주(냉수)1병 폐비 폐:모시 모시 12자 작,점 술잔 3벌(음복잔1벌) 촛대 초 1쌍 향로 향 1쌍 향합 향 1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