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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21)☆[논평] 제주 4.3 항쟁 74주년 [논평]☆ 제주 4.3 항쟁 74주년 추념식에 참석하여 윤호상(한국전쟁피학살자유족회 상임대표) 오늘은 제주 4.3 항쟁 74주기 국가추념일 이다. 제주와 서울에서 각각 74주기를 기 리는 4.3이 머우꽈? 기억투쟁 73년 제주 4,3 행사가 개최되었다. 한국전쟁민간인피학살전국유족회도 동병상 련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추모행사에 참 여하였다. 화창한 봄 날씨에 제주 4,3 범 국민위원회 일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치인들과 관련 단체, 그리고 제주 4,3 항쟁 피해 유족들과 '순이 삼촌' 현기영 작가도 참여하여 그때의 참상을 회고하며 경건하게 추념식을 거행하였다. 4.3 항쟁이 발발한 원인을 되돌려보자. 해방공간과 한국전쟁까지 소환하여 기억 의 공간에서 이야기하여 보자.​ 1945년 8월 15일 일본왕 히로히토가 떨 리는 목소리로 항복 방송을 하고 조국이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조선 인 민들은 해방의 기쁨 때문에 외세의 한반 도 개입을 예상하지 못하였다. 민족의 지 도자 여운형 선생은 조선총독부의 요청을 받아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일본군 의 무장해제. 형무소에 수감 중인 독립운 동가 석방. 문화제 반출 금지 등을 요구하 고 국내 치안 유지를 건국준비위원회에서 담당하였다. 미 국무부 육군 대령 딘 러스크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하 기 위해 38도선 이북은 8월 17일 소련군 이 진주했고, 이남에는 미군이 진주하였 다. 건준은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을 선포하였다. 미 육군 태평양사령부는 9월 7일 인천에 상륙하였다. 남한에 군정을 선포한 미 군 정은 맥아더 포고령을 선포하고 점령군이 되어 조선 민중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식량 배급 문제. 노동자의 권익 문제 등을 강경하게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해방 정국 은 조선 인민들이 바라는 대로 되지 못하 고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하였다. 화순 탄 광 노동자 학살, 대구 10.1항쟁. 제주 4,3 항쟁, 여순 항쟁으로 이어지는 공포 속에 서 저항하는 조선 민중들이 무참하게 학 살되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설치되어 신탁문제로 갈등을 빚고 와중에 여운형 선생이 암살 당하는 비극적 사태가 발생하고 이승만은 좌우합작을 무시하고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고 반공을 국시로 표방하면서 남한 내의 모든 공산당 조직 을 사실상 불법화하기에 이른다. 제주 4,3항쟁도 미 군정이 이승만, 조병옥 등 친일경찰과 군인을 앞세워 잔인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