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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 257-2번지(비성골)에서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이상하게도 마음이 설레었다. 누가 부르는 듯이 서둘러 가방을 챙겨서 비성 골로 향했다. 이 지역은 1950년 7월 초 조치원경찰서에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 약 100여명을 트럭으로 싣고 가 연기군 남면 공정리 은고개에서 집단학살한 후 비성골에 매장하였다고 알려진 곳으로, 당 시 은고개 일대에는 1지점과 2지점에서 학살이 있었는데 1지점은 여자를, 2지점에 서는 남자를 학살하고 매장했다고 밝히고 있는 지역이다. 비성골 매장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 충청남도 보도연맹원 사살의 가해자와 지휘명령주체는? 충청남도는 전쟁 발발 다음 날 상급기관 인 충남경찰국의 지시에 따라 6월 25일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형무소 경비 의 건”을 시작으로 6월 29일 “불순분자 구속의 건” 등 보도연맹원 포함 예비검속 을 단행한다. 당시 충남 각 지방경찰서에 하달된 지휘∙명령체계를 살펴보면 내무 장관 백성욱(1950.2.7.~7.17)→치안국장 장석윤(1950.6.17.~7.17)→충남경찰국장 이순구(1949.6.20.~1950.7.20.) →각 경찰 서장 →각 지서 주임 순으로 내려졌다. 이 러한 지휘∙명령체계는 1950년 7월 8일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에는 경찰도 군의 지휘∙명령체계에 속하게 되어 계엄사령 관(정일권)이나 헌병사령관(송요찬)의 지시 를 직∙간접적(계엄법 제9조)으로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주1) 그리고 북한군의 주 공격 선상에 있던 지역에서는 후퇴하던 제17연대도 부분적으로 가해행위에 가담 한 것으로 추정된다. 충남지역에서 활동했 던 특무대라면 방첩대(SIS) 대전 소속으로 추정된다. 한편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비밀 해제 된 육군무관 밥 에드워드의 보고서”에는 미군에 의해 촬영된 현장사진이 설명과 함께 동봉되어있다. 이것은 사살 현장에 미 대사관 직원과 미 극동사령부(FEC)소 속의 장교 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 다. 따라서 미국 정부도 충분히 이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 시 런던 주재 미국대사관은 위닝턴의 이 야기를 ‘학살조작(atrocity fabrication)’ 이라며 부인하였다. 미국은 자국민의 기자 를 조작자로 모독한 것이다. ▶세종시비성골 학살(국민보도연맹)의 배경 연기 보도연맹사건 희생자의 매장 추정지 로 알려진 연기군 산울리 257-2 지역은 행정중심복합도시 6-3생활권 내에 있다. 도시개발이 진척됨에 따라 한국전쟁 민간 인 희생지(비성골)에 대한 유해의 존재 여 부를 조사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한국토지주택공사 세종특별본부는 이 지 역에 대한 유해 시∙발(굴)조사를 인류진 화연구소(박선주 단장)에 의뢰하여 실시하 였다. 비성골 학살은 1950년 1~2월경 연 기군 보도연맹결성 후 예비검속은 6월26 일부터 7월8일까지 시작되었고 예비검속 된 보도연맹원은 조치원경찰서로 이송되 어 유치장에 구금되었다. 인원이 너무 많 아서 임시창고에 구금되기도 하였다.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