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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심종면 송덕비 오직 우리 상신 사담 관평 삼개리를 합하여 이백여 호는 이러한 일이 있었다. 단기4284년(1951년) 신묘 정월에 마을이 전부 불에 탄것은 군인들이 불을 질러 또한 황페되고 초토가 되었으나, 남아있는 주민들은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동쪽으로 가니 보고 들은 자는 누가 슬퍼 한탄하지 않을 것인가? 면장 심종면은 청송 심씨이다. 품성이 착하고 후덕하며 마음은 깨끗하였다. 본군에 살았으며 칠성면에서 우리 면장으로 부임하여 이 불행하고 어려운 처지를 슬퍼하며 군에 보고하여 특별한 도움을 베풀었으니, 돈과 곡식이 있는 사람들은 여러번 협조하여 배가 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주었고, 추운사람들에게는 옷을 주었으며 병든 사람들에게는 약을 주었다. 도 허물어진 집들은 새로 집을 지었으니 가히 살아있는 부처님이요, 자비로운 기둥이라. 이로써 세 마을은 오늘 우리 청천면과 전일에 칠청면의 공적을 미루어 가히 알았노라. 우리들은 특히 이 의로움을 잊지 않으려 송덕비를 세운다. 단기4286년(1953년) 계사 월일 상신 사담리 주민이 세우다. 본 송덕비는 청천면 제5,6,7대(1952.5.10~1959.8.7) 면장을 역임한 심종면의 공덕을 후세에게 전하기 위하여 상신,사담리 주민들이 1953년 건립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한국전쟁으로 온 국토가 유린되고 수많은 인명이 살생되었다. 본 마을은 미처 후퇴하지 못한 빨치산들의 약탈과 만행으로 고초를 겪던 중 1951년 2월 18일 국군이 들어와 빨치산을 격퇴하고 마을의 모든 민가를 불태웠다. 집안에 있던 식량이나 살림살이 하나 꺼내지도 못하고 마을이 잿더미가 되었다. 집에 불에 타 없어졌으니 주민들은 움막을 짓고 살거나 이웃 마을의 신세를 저야했다. 1952년 청천면장으로 부임한 심종면은 주민들의 딱한 처지를 돌아보고 군에 보고하여 구호양곡을 나누어 주고, 집을 새로 지을 수 있도록 국유림 벌채를 허가해 주었으며, 청천면 모든 마을의 준민들을 순번대로 동원하여 상신, 사담리의 주민들을 돕도록 하였다. 은혜를 입은 주민들의 정성으로 건립한 송덕비는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지는 것이 아쉬워 다시 주변을 정화하고 비의 기단을 높에 잘 보이도록 하였다. 2011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