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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1938년 봄에는만고에 없는 旱災(한재, 가뭄으로 인한 재앙)가 와서 春水(춘수, 봄철에 흐르는 물)가 未生(미생)하고 백천이 고갈이라. 향민이 모두 飢餓死境(기아사경)이니라 目不忍見(목불인견)을 어찌 보고만 있으랴 선생은 脫冠耕衣 (탈관경의)로 보행 군청하여 당시 괴산군수 장훈에게 진언하되 귀직이 목민관 이거든 기아 군의 참상을 洞察(통찰)하고 시급히 기민을 구하시오라고 청원하였다. 당시 군수는 급히 직원을 급파하여 실상을 조사확인하고 한해대책용으로 비축한 감자 83가마니를 구휼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한개도 맛을 안보시고 극궁의 순위로 일촌에 분급하시니 기근을 면하여 영농에 힘쓰도록하시었고 頹廢(퇴폐)한 보광산에 조림과 보호에 일생을 통하여 헌신봉사하신바 울창한 수목이 밀집되어 있으며 사담리 앞들 전답은 자고로 天水薄畓(천수박답)인지라 반반 흉년을 면치 못하던바 군,도 당국에 진정하여 저수지를 설치케 하니 전 야전답이 풍부한 몰수에 임입어 옥토로 전환되어 년년 대풍이라 이에 촌내의 생계가 윤택케 되였으나 천명은 無可奈(무가내)라 선생은 如斯(여사,이러한)한 공적도 다버리시고 향년 70세를 일기로 서기 1953년 계사 8월일 향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