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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14)◈ 3·15 의거(三一五 義擧) 1960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반발하여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 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4월 11일 시위 중 실종된 김주열 학생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2차 시위로 이어졌고, 이후 부 정선거 규탄시위가 전국 단위로 확산되면서 4·19 혁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승만 자유당 정부는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에서 장기집권을 위해 선 거 준비 과정에서부터 노골적인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이에 선거 준비 과정 중인 2월 28 일, 대구에서는 학생들의 첫 시위(2·28 시위)가 발생하게 된다. 당시 대구에서는 민주당 유세날에 학생들이 유세에 참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요일에도 고등학생들을 등교하게 하였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은정부의 불법적 선거개입을 비판하는 시위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다가 3월 15일 선거 당일 자유당 정권은 사전 투표, 3인조·9인조 공개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온갖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이러한 부정행위 결과로 개표 과정에서 부통령 이기붕의 표가 100%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오면서, 이를 79%로 하향 조정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공공연한 부정행위가 목격되자 마산시민들은 '협잡선거물리쳐라 '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