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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이런 상황 가운데 평소 데모 안 하기로 유명하였던 부산대학교에서 시위 준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 시작은 항쟁 하루 전인 10월 15일 이었다. 이날 공대생 이진걸이 '민 주선언문'을, 법대생 신재식이 '민 주투쟁선언문'을 각각 뿌리면서 오 전 10시에 도서관에 모일 것을 호 소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되도록 학생들이 모이지 않자 주동자들은 실패한 것으로 단정하고 해산하였 고, 정작 10시 40분쯤 되어서 모인 수백명의 학생들은 주동자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흐지 부지 해산하고야 말았다. 이에 큰 좌절감이 교정을 휩쓸었으나 그럼에도 교내의 각 동아 리와 학생들은 시위 준비를 멈추지 않았다. 이중 상대생 정광민이 나서서 '선언문'을 작 성하고 16일 인문대 학생들에게 유인물을 뿌리며 "저 유신독재정권에 맞서 우리 모두 피 흘려 투쟁하자"고 선동하였다. 이에 수십명의 학생들이 호응하였다. 정광민이 인솔하는 시위대는 도서관 앞에 이르자 수백 명으로 불어났고 곧 시위가 벌 어지기 시작했다. 교직원들이 시위대를 말리려고 했지만, 시위대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기 만 했다. 2,000여 명 정도로 불어난 시위대는 운동장을 한 바퀴 돈 뒤에 교문으로 나아 가 시내 진출을 시도하였다. 전경은 최루탄을 쏘며 교내로 진입했는데 여기에 분노하여 교내의 다른 학생들까지도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오전 11시경 5,000명 가량의 학생들은 세 갈래로 나뉘어 각각 대학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진압부대를 격파하여 마침내 시내로 진출하였다. 학생들은 일제히 부산 중심가인 남포동과 부산시청앞, 광복동에 집결해 '유신 철폐' 와 ' 독재 타도'를 부르짖었다. 오후 3시부터는 부산대 학생들의 소식을 들은 고산대학교와 동아대학교 학생들의 합류로 더욱 시위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시위 대열은 부산 국제시장 일대에서 게릴라식으로 전개되었다. 바둑판 같은 골목길에 수십 명 단위로 시위대가 돌아다니자 경찰들은 당황 했다. 시위대 한 무리를 해산시키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시위대가 튀어나오곤 했던 것 이다. 여기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응원해주었다. 시민들은 박수를 치고 경찰의 진압 작전을 방해하며 쫓기는 학생을 숨겨주는가 하면 빵과김밥 청량음료, 캔맥주 같은 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