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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 - 그 뒤 1974년 11월에 안압지 준설 및 주변정화공사가 추진되었다. 이 때 기와 조각과 와당 조각이 많이 출토되었기에, 1975년 3월∼1976년 12월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신라시대에 축조한 연못이 거의 완전하게 확인되었고, 특히 연못 주변에 쌓았던 호안석축(護岸石築)도 매우 양호한 상태임이 밝혀졌다. 연못에 물을 대는 입수구와 수로, 물이 빠져 나가는 배수구 등의 시설도 잘 남아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한편 안압지 서 쪽에서는 건물터와 행랑터가 확인되었으 며, 그보다 더 서쪽에는 임해전으로 추정 되는 비교적 큰 건물터도 드러났다. 행랑 은 안압지 남쪽으로도 연결된 듯 보이지 만, 그 북쪽과 남쪽은 철로와 차도에 의하 여 많이 손상되었기에 전체를 확인할 수 는 없었다. 안압지 바닥에서는 금동불상을 비롯한 금 동 제품과 목조 건물의 부재 등이 출토되 었고, 특수한 모습의 기와도 적지 않게 발 굴되었다. 특히 기와에는 679년인 ‘의봉4년(儀鳳 四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 것은 임해전터에서 출토된 680년인 ‘조로 2년(調露二年)’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보상 화(寶相華) 무늬의 벽돌과 함께 문무왕 때 임해전이 건립되었음을 알려주는 대표적 인 유물로 여겨진다. 이밖에도 많은 토기류가 출토되었는데, 신라 고분에서 흔히 발견되는 굽다리접시 〔高杯〕나 긴목항아리〔長頸壺〕과는 다른 것 으로 실생활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궁 및 월지 유적은 1980년에 정화공 사를 거쳐 신라 궁궐의 원지(苑池)로 복원 되었고, 3채의 누각도 발굴조사 때 출토된 목조 건물 부재와 신라시대의 다른 유적 들을 참조하여 복원되었다. 그밖의 건물터 는 주춧돌만 정연하게 확인하여 원래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도록 정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