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page

- 96 - 연곡리 석비돌거북과 비석머리를 온전히 갖추었으며 조성수법이 뛰어나다. 비 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지 않아 백비(白碑)라고도 불린다. 비를 받친 지대석과 돌 거북은 커다란 한 개의 돌로 이루어졌다. 고개를 바짝 쳐든 거북의 머리는 정수 리부터 코끝까지, 얼굴 윗면이 갈아낸 듯 밋밋하여 말머리처럼 보인다. 등껍데기 에 큼직한 육각 귀갑문이 있고 등 가운데 마련된 비좌의 옆면에는 안상이 장식되 어 있다. 비좌 윗면 가장자리에 연화문을 돌린 후 괴임대를 석 단 두어 비신을 받게 하였다. 비면은 매끈하게 갈려 있으나 비문도, 비문이 있었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비석머리 가운데 마련된 네모진 전액에도 아무런 글자가 없다. 비석 머리 아랫면에 받침이 석 단 있어서 비좌 윗면의 괴임대와 대칭을 이루며 전액 둘레에는 굵다란 구름무늬가 둘렸다. 그 바깥으로는 모두 아홉 개의 용머리가 훌 륭한 솜씨로 깊숙하게 조각되었고 꼭대기에는 둥근 보주가 장식되었다. 이 비석에 명문이 없는 까닭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석비의 시원 형식인 백비로 만들어졌거나 어떤 이유로 미처 비문을 새기지 못하였거나 또는 새겨졌던 비문을 후대에 모두 갈아냈을 가능성 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뒷받침할 자료가 없어 어느 쪽으로도 확정할 수는 없다. 명문이 없으므로 주인공도 건립연대나 내력도 전혀 알 수 없지만 조성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는 보물 제40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비가 있는 연곡리 일대는 고려시대에 큰 절이 있었다고 전해온다. 이름도 내 력도 알 수 없는 이 절의 사역으로 추정되는 터는 대부분 마을과 논밭으로 변했 는데 근래에 보탑사 삼층목탑이 세워졌다. 주변에서는 기와조각이 많이 발견되었 고, 보탑사 주변에는 여러 부분이 손상되긴 했으나 고려 초기 양식을 보이는 석 조비로자나불좌상과 작은 삼층석탑 한 기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