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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 이강년(1858~1908) 의병대장은 1908년 7월 2일 호좌의진(제천의병) 70여명과 포전리에서 까치산으로 이동중 일본군 제23연대 제천수비대의 기습사격으로 2시간 정도 교전중 왼쪽 발목 복사뼈에 총상을 입었다. 그리고 도선봉 하안서 등 7인의 전사자 중 한 의병에게서 서류와 도장집을 보았고, 부상자의 핏자국 따라 추적하여 온 모리(森)순사에게 피체(포전리 135번지 일원) 되었다. 운강이 체포된 후 마을 사람이 떠온 물을 일본순사가 전하려하자 내동댕이 쳤으며 "내가 이미 잡혔으니 어쩔 수 없구나, 도선봉 하한서와 7인의 시신을 잘 묻어주오." 피눈물로 당부하시며 제천으로 압송되셨다. 제천수비대장의 심문에 "나는 38살(1895년)부터 51세(1908년)까지 13년간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국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붙잡혀 희망이 끊어졌다."라고 하였다. 운강은 한말 일본침략에 많은 의병전투에서 승전으로 애국헌신하였으나 까치산 전투시 피체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셨다. 이에 우리는 일본의 국권침략에 맞서 사생취의(捨生取義)와 구국항일 의병투쟁의 빛나는 역사를 기리며, 각골통한(刻骨痛恨)의 피체 항전지(抗戰地)를 결코 잊지 않고자 이 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