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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山大捷紀念碑(황산대첩기념비) 이곳은 고려말기에 왜구를 전멸시킨 전승지이다. 일본은 16세기 말에 임진왜란을 이르켜 7년동안 우리강토를 유린하였고 최근 36년간에는 우리의 주권을 강탈하여 민족을 압박착취한것은 기억에 생생한바로서 의분을 참을수 없거니와 그 이전에도 여러차례 왜구라 하는 해적단을 조직하고 금수강산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조국에 침입하여 살인 방화 약탈을 자행하였다. 특히 고려말기 40년간이 더욱 심하였으니 그 중에도 우왕6년(1380) 8월 진포구 충남 서천에 침입한 왜구가 가장크고 악한자들이였다. 이때 왜선 500여쌍이 진포구에 들어와 여러고을에 흩어져 사람을 죽이고 쌀과 어린이를 배에 실어가므로 羅世 沈德符 崔茂宣등이 처음으로 최무선이 제조한 화포를 사용하여 외선을 다 불태워버리니 배에 있던자는 불에 타서 죽지 않이하면 물에 빠져 죽고 육지에 올라온자는 돌아갈길이 없게되자 이들은 옥천 이산 영동 황간 중니 화령 근성 청리 상주 선산등지를 통과하면서 이르는 곳마다 폐허를 만들고 함양동쪽 사근내역에서는 배극렴등 구원사(九 元師)와 싸워 박수경 배언등 두 원사와 군인 500여명을 죽이고 함양을 분당하고 9월에는 운봉(雲峯) 인월역에 이르러 장차 광주(光州)에서 말을 먹이고 북으로 진격하겠다고 떠드니 왜구의 피해가 이보다 더 심한때는 없었으며 중외(中外)의 인심은 크게 동요되었다. 이보다 앞서 나라에서는 찬성사(贊成事) 이성계를 양광 전라 경상도 도순찰사에 찬성사 변안련을 도체찰사에 임명하고 왕복명 우인렴 도길부 박임종 홍인계 임성미 이원계를 원사에 임명하여 이들을 토벌케 했다. 이성계 변안련등 토벌군이 남원에 이르러 적이 인월역에 있다는 말을 듣고 운봉을 넘어 황산 서북쪽 정산봉(鼎山峯)에 올라가 길 오르편에 험한 지름길이 있는것을 보고 적이 반드시 이길로 나와서 아군의 뒤를 습격하리라고 판단하고 이성계자신이 그 길을 담당하고 다른 장수들은 평탄한 길로 나가게 하자 과연 적의 정예가 험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