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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뜻을 얻으면 세상을 구제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초야에 묻혀 자신을 수양하여 교화를 펼치는 것이 바른 길이다. 근세에 우리 진주에서 참된 선비 정신을 실천하며 세상을 교화하고 전통문화를 잘 계승하여 다음 세대를 열어준 역할을 한 분이 계셨나니 바로 야은 정공이다. 공의 휘는 구석 자는 충현 야은은 그 자호이다. 관향은 해주로 고려조 전법정랑 휘 숙이 그 시조이다. 조선조에 들어와 백정 휘 역은 좌찬성을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는데 시호는 정도공이다. 그 7대손 농포 휘 문부는 문무 전재로 문과에 올라 병조참판을 지냈는데 뒤에 좌찬성에 추증되고 충의라는 시호를 받았다. 임진왜란때 함경도에서 창의하여 구국의 위훈을 세워 국사에 혁혁한데 곧 공의 10조이다. 9대조 증 좌승지 봉은 휘 대륭은 부공이 참화를 당한 뒤 운명을 받들어 진주에 전거하였다. 7대조 노정헌 휘 구 6대조 불우헌 휘 상점 5대조 숙매와 휘 황은 학덕으로 1세의 추중을 받았다. 고조 한옹 휘 의교는 무과하여 안주영장을 지냈고 증조 휘 봉현은 무과하여 칠원현감을 지냈다. 조부는 휘 광성 부 공은 휘 제교인데 두 분 다 학행이 있었다. 비위는 순흥안씨로 경중의 따님이다. 생부는 휘 상교인데 효행이 뛰어났으며 생모는 전주최씨로 병순의 따님이다. 공은 고종 정미 1907년 음력 2월 28일에 태어났다. 자품이 순후하고 재기가 영민하여 어릴때부터 부지런히 공부하여 이미 단서가 보였다. 부 공을 일찍 여의었으나 정신을 가다듬어 집안일을 잘 처리하여 반석처럼 튼튼하게 만들었다.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모친상을 당하여서는 매우 슬퍼하여 몸을 지탱하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