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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일제강점기 경기도 지역 기념물 (기념탑 및 동상 포함) 조사 정리 카드 명칭 1 치산치수지비 고양 명칭 2 건립시기 1940년 6월 24일 제막 건립위치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 고양리 (벽제관 앞) 현 소재지 잔존 여부 미확인 사진자료 관련자료 - 『매일신보』 1940년 6월 28일자, 「벽제관 사방공사(碧蹄館 砂防工事) 총공비 15 만 원으로써 완성, 기념비 제막식(記念碑 除幕式) 성대」 [고양] 고양군 벽제관은 지나사절(支那使節)이 조선에 올 때는 반드시 벽제관에서 숙박하고야 경성(京城)에 들어오게 된 제도(制度)가 5백년간 매년 있던 곳이며 또 3 백 년전 문록(文祿)의 전역(戰役)이 이 땅에서 가장 격렬하였던 곳이다. 이밖에도 많 은 유물이 있는 벽제관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천을 따라 산(山)은 대머리가 되 고 전답(田畓)은 박토가 되어 그 참담을 말할 수 없던 바 경기도당국(京畿道當局)에 서는 차(此)를 중대시(重大視)하고 소화 6년부터 동 11년까지 6년간 계속사업으로 총공비 15만 원을 들여 고양리(高陽里) 외 3개리(個里)에 긍(亘)하여 사방공사를 시 행하고 부근 일대에 애림사상(愛林思想)을 환기하여 관민 일치 협력한 결과 금일에 와서는 부근 일대가 전부 녹화(綠化)하여 홍수(洪水)를 제지하고 한발(旱魃)을 극복 할 정도에 이르렀다. 당국과 민간에서는 차(此)를 영구기념(永久記念)키 위하여 벽제 관 앞에다 ‘치산치수지비(治山治水之碑)’를 건설하고 금월 24일 오전 11시에 장엄한 제막식을 거행하였는데 참석인원은 본부 임정과장(本府 林政課長), 히라마츠 도산업 부장(平松 道産業部長), 시라카와 고양군수(白川 高陽郡守), 관계 관민 백여 명이 벽 제사방림시업조합장(碧蹄砂防林施業組合長) 조인섭(趙寅燮) 씨의 안내로 때마침 무 전한발(無前旱魃) 끝에 감우(甘雨)를 맞으면서 일층 의의 깊이 식을 마치었다. (사진 은 동 사방림의 전후 대조 사진) 비고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