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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 1928년 3월 조선 사찰 직원으로 구성된 ‘내지시찰단’에 참가해 23일간 일본 방 문 1932년 10월 송광사 주지취임(13년간 4회 연속 송광사 주지 연임) 조선총독 우가키(宇垣一成)가 주창한 심전개발운동(心田開發運動)에 참여해 1936 년 3월 송광사를 비롯한 송광면 낙수리 · 원평촌리에서 심전개발에 대하야라는 연제로 순회강연 1937년 2월 조선총독부에서 개최한 31대본산주지회의에 참석해 사회교화와 민심 작흥에 불교계가 기여해 달라는 총독과 학무국장의 훈시를 듣고 불교의 진흥책과 개선 책을 토의. 31대본산주지회의에서 부의장과 총본산 건설위원으로 선임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이종욱(31대본산주지 대표, 월정사 주지), 황금봉 (조선 불교 중앙교무원 재무이사) 등과 함께 같은 달 15일 조선신궁에서 개최한 ‘국 위선양 무운장구 기원제’에 불교계를 대표해서 참석 1937년 7월~8월 송광사에서 시국 극복 및 국위선양 무운장구 기원제를 지내고 국방헌 금으로 67원을 모아 헌납 1937년 11월 송광사에서 출정 군인과 유족 위문금으로 176원70전을 모아 조선불교 중앙 교무원에 헌납 1938년 3월 송광사에서는 국방헌금 99원80전, 위문금 393원70전, 합계 493원50전 을 거 두어 헌납 1940년 11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개최된 ‘황기(皇紀) 2600년 기념식’에 조선 불교계 전남대표로 참석 1941년 10월 조선불교 조계종 교무부장 1941년 12월 종무총장 이종욱, 서무부장 김법룡, 재무부장 박원찬 등과 함께 일본 을 위 한 기도회인 국도회(國禱會)에 참석 1942년 1월 종무총장 등 종단 간부들과 함께 불교계에서 모금한 비행기 구입 대 금 5만 3000원과 국방헌금 526원84전을 용산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군사령부를 방문해 헌납 1942년 4월 『불교』 신35집에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는 글을 발표해 일제가 도발 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성전(聖戰)’이라고 하면서 일본군의 승리를 축 하한 후, 국가에 목숨을 바친 영령을 애도하고 노고에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 조 선의 불교도는 최고의 불교정신을 발휘해 일본이 승리하도록 최대한의 능률을 발휘하는 것이 임무라고 강조 1942년 9월 『불교』 신40집에도 「친절운동과 무아(無我) 생활」을 발표하여 당 시 국 민총력조선연맹에서 전개하던 ‘친절운동’을 지지 1942년 6월 종무총장 이종욱, 서무부장 김법룡, 종정사서 허영호 등과 함께 경성에 있는 일본 사찰 본원사에 가서 시국강연회에 관해 협의했으며, 불교계에서 두 번째 군용기 대금을 모금하기로 결의 1944년 7월 송광사에 할당된 비행기 구입금 2507원을 총본산인 태고사에 헌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