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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 의 보급 · 선전에 노력하는 한편 시국관계 각종 회의를 개최하여 중일전쟁과 관련한 시국인식의 강화에 노력, 또 출정군인과 군대에 대한 환송과 접대, 군인 유가족들에 대한 후원과 위휼, 국방헌금과 애국육해군기 헌납자금 모금 등의 업 무를 수행 1939년 4월 훈4등 서보장, 5월 고등관 2등으로 승급, 11월 조선유도연합회(朝鮮儒道聯合 會) 이사 1940년 1월~9월 함경남도 임금위원회 위원, 4월 훈4등 욱일소수장 1940년 9월 고등관 2등의 지사로 승진해 전라남도지사로 부임 1940년 9월부터 1943년 9월까지 재단법인 조선경찰협회 전라남도지부후원회 이사를, 1940년 9월부터 1943년 10월까지 재단법인 광주유린회(光州有隣會) 이사를 지냄 1940년 9월 전라남도유도연합회 회장, 10월 국민총력 전라남도연맹 회장, 11월 열린 기 원2600년축전 기념식전 및 봉축회에 초대되어 참석하고 기원2600년축전기념장 1941년 2월호 『국민총력』에 「연맹원의 각오」(聯盟員の覺悟)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 하여 전시체제하 국민총력 전라남도연맹원들의 정신무장을 강조하면서 국민총력 운동의 사명과 방침을 철저히 수행할 것을 독려 1942년 1월 1일자 『매일신보』에 「필승체제를 확립」이라는 제목의 신년사에서 전시 하 필승체제 확립을 기원하며 필승신념 앙양, 내선일체(內鮮一體) 구현 강화, 국 민개로체제(國民皆勞體制) 확립, 전시국민생활체제 확립, 생산력 확충계획 완성 등을 강조 1942년 3월 고등관 1등으로 승급, 5월에는 종4위에 서위되고 훈3등 서보장 1943년 1월 5일자 『매일신보』에 발표한 「(각 도 지사의 연두사)유기성(有機性)과 엄 숙미(嚴肅味)」에서 1944년부터 실시될 징병제도에 대한 사전 준비와 1942년에 발표된 의무교육제도의 실시에 대하여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 1943년 9월 경상북도지사(고등관 1등)로 부임 재직 중이던 1943년 9월부터 1944년 8월까지 경상북도농회 회장을, 재단법인 조 선경찰협회 경상북도지부후원회 이사를, 1944년 1월부터 9월까지 재단법인 경주 고적보존회 이사를, 1944년 5월부터 8월까지 경상북도 관할 내 소득심사위원회 회장 역임 1944년 8월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겸 중추원 서기관장, 제생원 원장을 겸임, 10월부터 11 월까지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과장 사무취급을 겸직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으로 근무하던 1944년 8월 조선교육회 부회장, 재단법인 명 륜전문학원 이사, 재단법인 조선총독부시정기념관유지회 이사, 재단법인 창복회 (昌福會) 이사 1944년 8월 전시체제하에서 조선에 대한 미군의 공습과 기타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방위계획의 수립과 방위상 필요한 조치를 행하기 위해 설치된 방위총본부(防衛 總本部)의 막료(幕僚)에 임명되었으며, 같은 달 조선총독부 기업정비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