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page

- 80 - 무국 사무관 겸 학무국 사무관을 겸임 1932년 10월 조선쇼와5년국세조사기념장 1933년 2월 훈5등 서보장, 12월 고등관 3등으로 승급 1934년 1월 중추원 통역관에서 물러난 뒤 조선총독부 사무관으로서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과장, 중추원 서기관, 제생원 서무과장 사무취급, 명륜학원 학감 사무취급을 겸임, 2월 조선총독부 농촌진흥위원회 위원 및 간사, 조선간이생명보험심사회 위 원, 조선총독부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회 위원 및 간사, 조선총독부 고적조 사위원회 위원 및 간사 역임 1935년 10월 시정25주년기념표창과 은배 1조를 받음, ‘심신개발, 정신작흥, 도의 향상, 건전한 사상 육성’ 등을 목표로 내세우며 조직된, 사회교화단체 전국 연합조직 인 조선교화단체연합회의 이사 1936년 5월 경상남도 참여관 겸 산업부장으로 부임, 5월부터 1938년 6월까지 경상남도 농회 회장 경상남도 산업부장으로 근무 중이던 1936년 7월 잠시 경상남도 내무부장 사무 취급을 겸임 경상남도 참여관으로 재직 중이던 1937년 1월 11일자 『매일신보』에 발표한 「(각 도 참여관 신년사)」 각반시설 확충강화(各般施設擴充强化), 치수공작(治水 工作 )에 전력(專力)」에서 일본 황실의 만수무강과 번영에 기원한 뒤 신년을 맞 아 관민일치를 통해 난국타개에 매진할 것을 강조 경상남도 참여관 겸 경상남도 산업부장으로 재직 시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군용 물자의 조달, 도민들의 시국인식 강화 등의 업무를 수행 1936년 11월~1938년 6월 경상남도 미곡통제조합연합회 회장 1937년 1월~4월 조선금융조합연합회 경상남도지부 감리관 1938년 1월 18일자 『경성일보』에 일본이 조선에서 지원병제도를 실시하기로 한 결정 을 환영한다는 「(조선동포 다년(多年)의 희망 실현)」이라는 제목의 담화를 발 표 1938년 3월부터 7월까지 경상남도 방공위원회 위원, 3월부터 8월까지 재단법인 경상남 도산림회 이사 1938년 6월 함경남도 참여관 겸 함경남도 내무부장, 7월부터 1940년 9월까지 함경남도 방공위원회 위원, 조선금융조합연합회 함경남도지부 감리관, 재단법인 함남육영 회(咸南育英會) 대표이사 함경남도 내무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함경남도 군사후원연맹 부회장, 일본군이 함 경남도 덕원군에 해군비행장을, 함주군과 정평군에 조선군비행장을 건설할 때 용지 매수 등의 업무를 지원 1938년 7월부터 8월까지 일본과 소련이 벌인 국경분쟁인 장고봉 사건(張鼓峯事 件) 이후 함경남도 지역에서 방공 · 방위 업무에 만전을 기하였으며, 국방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