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page

- 49 - 1901년 10월 충청남도관찰사 겸 충청남도재판소 판사 1902년 2월 전라남도관찰사 겸 전라남도재판소 판사 1903년 1월 전라남도 지계감독, 9월 의정부 찬정, 중앙은행 창설사무위원 1904년 1월, 1905년 4월 경기관찰사, 경기재판소 판사, 8월 궁내부 특진관 1905년 2월 중추원 부의장, 5월 법부대신, 6월 경상북도관찰사, 경상북도재판소 판 사 1906년 1월 중추원 찬의 임명, 2월 육군 부장(副將) 1906년 4월~6월 일본 관병식(觀兵式)에 참석하는 의친왕(義親王)을 수행 일본행 1906년 5월 관병식 참여로 ‘한일 양국의 친교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가 주는 훈1등 서보장 1896년 6월~7월 독립협회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한 뒤 위원에 선출 1899년 1월 화폐의 융통과 상무(商務)의 흥왕을 목적으로 민병석(閔丙奭) · 민영 기(閔 泳綺) 등 31명과 함께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 창립 발기인을 맡아 정영두 (鄭永斗) 등 6명과 함께 설립청원서를 탁지부 대신에게 제출하여 설립인가를 받 은 후, 4월부터 1902년 4월까지 3년 동안 부장으로 재직 1900년 3월 직조단포(織造緞布)주식회사 부사장 1906년 4월 교육 확장을 위해 교과서 인쇄 · 출판을 담당하는 광학사(廣學社)의 창립 발기인으로 찬무원 역임 1907년 10월 한국 시찰을 위해 방문하는 일본 황태자를 환영하기 위해 전현직 대신과 관리들이 조직한 신사회(紳士會)의 환영위원으로 평의원에 선출되어 환영행사를 주관 1908년 2월 유림계를 회유하기 위해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후원으로 조직한 대동학회(大東學會)의 회원 1908년 7월 활민노동조합(活民勞動組合)을 설립하여 1909년 6월 총재로 재직 1908년 8월 기호흥학회 찬무원이자 본회 특별찬성회원으로 활동 1908년 11월 흥인학교(興人學校) 찬무장(贊務長) 선임 1909년 10월 대한산림협회의 명예회원, 회장에 선출, 11월 대한흥업회사 한국인 측 특별 찬성원으로 활동 1910년 3월 이지용(李址鎔) 등과 합자하여 대해어업회사(大海漁業會社) 설립 1910년 10월 「조선귀족령」에 따라 남작 작위 1911년 1월 은사공채 2만 5000원을 받았고, 2월 총독 관저에서 열린 작기본서봉수 식(爵 記本書捧受式)에 의복을 갖추어 참석 1912년 8월 한국병합기념장 수여, 12월 종5위에 서위 1915년 5월 조선총독부 주도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시정사업을 선전하기 위한 시정5 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의 유공회원으로 기부 1917년 10월 불교계 친일단체인 불교옹호회 고문에 추대 1918년 9월 경성구제회(京城救濟會)에 기부, 12월 정5위로 승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