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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 - 해 조선신궁은 사실상 조선의 유일한 관폐대사였다. 관폐와 국폐는 국가가 신사 관 리 유지 비 용을 부담했던 신사로 분류되며 관폐가 국폐보다 격이 높다. 조선신궁 터 일부에선 현재 한양도성 남산 회현자락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 다. 서울시 는 이 공사를 2015년에 끝마칠 계획이다. 조선신궁 본관 자리엔 남산 중앙공원이 들어설 예 정이다. 원래 이 자리에 식물원이 있었지만 2006년 철거됐고 인근의 남산도서관은 지금도 그 대로 남아 있다. 조선신궁과 달리 1939년 충남 부여군 부소산자락에 짓기 시작한 부여신궁은 건설 이 끝나기 전 일제 패망으로 완공되지 못했지만 터는 그대로 남았다. 현재 신사 터에는 1956 년 국민성 금을 모아 지은 삼충사라는 사찰이 세워져 부소산을 지키고 있다. 관폐대사보다 사격(社格) 아래인 국폐(國幣)소사는 경성신사·강원신사(춘천)·대구신 사·평양신 사·광주신사·함흥신사·전주신사 그리고 용두산 신사(부산) 모두 8곳이 있었다. 나머 진 이보다 더 아래 등급의 작은 신사들로 전국에 1000여곳이 세워졌다. 전국 주요 거점에 세워진 국폐소사들 대부분은 현재 공원이나 학교, 호텔 등으로 완전히 변 신했다. 1913년 서울 중구 예장동에 있던 경성신사는 현재 숭의여자고등학교와 숭 의여자대학 교가 들어서 있다. 부산 용두산에 우뚝 솟은 부산 타워자리는 원래 용두산 신사가 있던 자리로 주변 터는 공원 등 시민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달성공원 역시 대구신사가 들어 섰던 곳이 다. 해방과 함께 철거된 대구신사 터엔 도서관, 박물관 등이 들어섰다가 1969년 달 성공원으로 공식 이름이 붙었다. 광주시민들은 광주신사가 있던 자리에 광주공원을 세워 광주의 대표 쉼터로 만들 었다. 현충 탑 등이 신사터 위에 그대로 들어서 있다. 전주의 다가공원 역시 일제 강점기 전주 신사로 쓰 이던 자리였다. 지금도 다가산 정상에 오르는 길을 참궁로(參宮路)라고 부르는데 눈 물로 참배 를 가는 길이란 뜻이다. 한편 춘천에 있던 강원신사 자리엔 호텔이 들어서 있다. 다만 신사터 위에 자리 를 잡고 있 는 세종호텔춘천은 입구 등을 여전히 일제 강점기 지어진 신사의 형태를 리모델링 해서 사용 하고 있고, 호텔의 건물배치가 신사가 지어질 당시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일각 에선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북한에도 평양과 함흥에 평양신사와 함흥신사 등 국폐소사 급 신사가 2곳 있었 다. 하지만 현재 신사터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는 전문가들조차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하고 있 다. 민족문 제연구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제 강점기 북한에 들어선 신사터도 대부분 해방 직 후 철거됐 을 것"이라면서도 "정확한 통계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현재 어떤 용도로 쓰이는 지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해방되자마자 조선인들이 일제 신사를 찾아가 철거에 가 담할 정도로 대단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며 "현재 대부분 신사가 들어섰던 자리엔 공원이나 사찰,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