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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참변 청산리에서 독립군에게 대패한 일본군은 그 보복으로 독립군의 모체인 한인사회에 대한 만행과 독립군기지 파괴등을 자행했다. 우선 독립군이 떠나고 난 북간도 연길현 명월구의 대한독립군 병영과 하마탕의 대한국민회군 근거지를 초토화하고 왕청현 십리평의 사관연성소를 불태웠다. 이어 한인사회에 눈을 돌려 민족학교는 물론이고 기독교의 교회까지 한인들이 공공장소로 만든 건물은 모두 불을 지루고 파괴했다. 용정촌 동북쪽의 장암동에서는 33명의 남자를 교회에 가두고 불을 질러 몰살시켰다. 일본군의 만행은 이듬해 4월까지 이어졌다. 일제의 만행이 가장 심했던 1920년 10월과 11월 두 달간 한인사회의 피해는 피살자 3,664명, 피체자 155명이었고, 민가 3,520채, 학교 59개교, 교회 19개소와 곡식 59,970섬이 불에 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