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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앞마을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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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시호는 문절이요, 공의 5대조이다. 고조 휘 종절은 진북 병마절도사요, 증조 휘 익령은 태종 때에 의성군사요, 가음면 순호리에 정착하니 영남 입향조이다. 조부 휘 장손은 호가 학강이요, 별시위이다. 부친 휘 숙원은 선략장군 용양위사직이다. 묘지에 호조참판으로 기록되어 있었다고 하나 그 연유를 알 수 없다. 모친은 의성김씨이다. 공은 성종 때에 순호리에서 태어나 중년에 덕천으로 이거하였다. 선대를 이어 유가의 경전을 공부하고 덕행이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문헌이 유실되어 전하는 것이 적은데 의성승람에 구건종의 호는 성천이요, 충의 구홍의 후손이다. 행동거지가 고결하고 학문이 깊었으나 명리를 구하지 아니하고 임천에서 생애를 마쳤다. 사우들이 공경히 받들었다. (구건종 휘 성천 충의 홍 후 행고학심 불구명리 종로임천 사우추중)라고 하였으니 공의 학문과 덕행을 증거할 수 있다. 공의 형제는 모두 뛰어났는데 백형 사종은 생원으로 호가 자허당이요, 회재 이언적 선생과 동방으로 교유하였다. 중형 찬종은 진사요, 삼형 계종은 호가 무첨당이다. 자손들이 영남의 각처에 거주하고 있다. 배위는 의성김씨이다. 묘소는 가음면 현리동 덕곡 해좌로 쌍분이다. 아들은 윤이요, 손자는 언련이다. 증손 익민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요, 옥생은 군기시주부요, 옥남과 옥량이다. 1931년에 후손 연우 연학 연선 주서 등이 덕천마을에 성천재를 건립하여 추모하였다. 공의 14대손 진 회장은 연우공의 손자로 의성군 사공종회 회장 대구경북종회 및 좌정승파 종회 고문 대종회 이사를 맡아 종회의 발전에 이바지한 바가 많았는데 금번에 문중의 종인과 협의하여 재실을 중수하고 또 유허비를 건립함에 아들 자일 원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