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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훈(韓焄)은 충남 청양(靑陽) 사람이다. 1906년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민종식(閔宗植) 의병진에 가담하여 홍주성(洪州城) 공방전에서 활약하였다. 그후 부여(扶餘)·공주(公州) 등지에서 계속 활동하다가 악질 친일군수인 직산(稷山) 군수를 사살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경술국치 이후에 국내에서 항쟁할 목적으로 다시 귀국하였으며, 1913년 12월에는 채기중(蔡基中)·유창순(庾昌淳)·유장열(柳璋烈)·장두환(張斗煥) 등과 같이 풍기(豊基)에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을 조직하였다. 광복단원으로서 전라도 오성(烏城)에 있는 일헌병 분대를 습격하는 한편, 일본군 수명을 사살하는 등 계속 활동하다가 동지들이 체포되자 재차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5월(음)에는 만주 길림성(吉林省)에서 김동순(金東淳)등과 함께 조선독립군정서에 가입하였다. 1920년 초에는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재차 귀국하여 박문용(朴文鎔)등과 서울에서 독립운동 방략을 상의하고 같은해 2월말경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김 철·이동휘·이동녕·이시영과 회견하고, 서울을 중심으로 조선독립군사령부라는 독립단을 조직할 것을 승인받고 동년 3월에 서울로 돌아와 박문용과 함께 그 준비에 착수하였다. 동년 8월에는 미국 하원의원단이 내한한다는 소식을 듣고 재등실(齋藤實)총독 등 일본 고관들을 암살하기 위해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이때 김상옥(金相玉)등의 암살단과 합류하여 계획을 추진하던 중 체포되어 징역 8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의병활동이 발각되어 재차 23년형을 받았다. 그는 19년 6개월이라는 긴 세월을 옥고에 시달리다가 형집행정지처분으로 출옥하였다. 6.25동란 중에 북한군에게 납치 피살되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