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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195 그토록 함께 염원했던 조국의 독립이었으나, 서로 다른 방향이 가져온 비극은 너무나 컸다. 이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하지만 사실이 무엇이든,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분들이 이 광경을 목도하고 크게 탄식했으리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송산은 아픈 기억 을 또 한 번 가슴에 묻어두어야 했다. 역경을 견디고, 다시 일어설 송산 한차례 수난이 지나가고 진세영 선생님은 한동안 고향을 떠나있었다고 한다. 7~80년 대가 되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다시 뿌리를 내렸다고 전하셨다. 이장 으로 취임한 선생님은 솔선수범하여 자신의 땅을 내놓아 도로를 만들고 사재를 털어 마 을을 정비했다. 이장 활동을 하실 당시에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특히 배려해주신 것 이 있었느냐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시급해서, 독립운동이고 애국자고 살펴볼 겨 를이 없었어. 그 사람들 스스로도 특별하다고 바라는 것도 없었고, 다들 알지도 못했 지. 독립운동 했다는 건 그냥 당연한 일이라 생각해왔고. 국가도 마찬가지였고.” 그 당시에는 제대로 빛을 보지 못 한 독립 유공자들이었지만, 최근 들어서 독립운동가 들을 찾아내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참으로 기쁘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어르신 에게 독립운동의 가치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여쭈어보았다. “일본사람들한테 억압당하고, 자유도 없이 살고. 사람대접도 못 받고. 간절한 마음이 터져 나온 거죠.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유별난 것도 아니고, 당시 어른들 마음은 다 똑같았어요. 그저 감사할 뿐이지.” Part 04 기억하는 사람들 기 억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