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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189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송산에 터를 잡아왔다는 왕의항 선생님의 일가. 선생님은 젊을 적 건설 일을 하면서 중동으로 떠나고 한동안 고향을 비워두고 있었다. 다시 송산으로 돌아 오게 된 것은 17년 전, 아버지가 별세하시고 혼자 남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였다. “형제들은 그러는 거예요. ‘형님, 거기 조그만 곳에 살지 말고 아파트로 가라.’ 근데 내가 여기서 태어나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고, 장가간 곳인데 어떻게 버리겠어요. 나 죽은 다음에 팔든가 새로 짓든가 하라고 전했죠.” 비록 할아버지 대부터 지켜온 집이 불타 없어지는 바람에 새로 만든 집이지만, 왕의항 선생님에게는 조상 대대로 물려온 집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송산은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마을이지만, 그 후손들이 대대로 삶을 이어온 고향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특별히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하여튼 다 어려웠던 시기였죠.”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탓에 어려웠던 일은 없었는지 묻자, 왕의항 선생님은 차분히 대답 하셨다. 집안의 가장을 잃고 재산을 빼앗기는 등의 모진 수난을 겪었던 후손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문의 고난이 남들과 달리 특별할 이유가 없다고 답하는 모습 은 벅찬 감동을 전했다. 집을 잃은 왕의항 선생님의 부모님은 소작해서 모은 돈으로 조 금씩 땅을 샀고 어느새 번듯한 고무신 가게도 시장입구에 내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번 돈은 모두 아이들의 교육 밑천으로 사용되었다. 선생님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학교를 나오지 못해 한글만 겨우 깨친 분이었다. 매일 같이 일해 바쁜 삶을 살아온 와중에도 아이들 교육만큼은 절대 잊지 않았다. 그 옛날에 5남매 모두 대학 보내고 아버지 대신 직접 매를 들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새댁 시절에는 병든 시아버지 옆에서 수발들고, 아이가 생기니 농사일과 장사일, 교육을 도맡아 하느라 젊음을 모두 떠나보낸 어머니. 왕의항 선생님은 어머니를 회상하며 ‘고생 많으셨지’ 연신 되뇌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왕광연 선생님을 닮아 강직한 성품이었다고 한다. 살면서 술은 입에 대본 적도 남을 속 인 적도 없다고. 젊어서는 소방대가 따로 없던 송산 지역에서 의용소방대를 하는 등,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오셨다. 아들에게도 욕심 부리며 살지 말고 그저 풍족히 사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라 당부했던 어른이었다. 그 정직과 강직함은 왕의항 선생님에게도 대를 이어 고스란히 전해졌으리라. 국난이 오면 선봉에 서시겠어요? 문득 선생님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왕광연 선생님이 1919년, 3월의 만세운동 에서 선봉에 서셨듯이 왕의항 선생님 또한 국난이 찾아오면 선봉에 서시겠느냐고. 질문 을 받아들은 선생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럼요. 제가 할아버지의 후손이라서가 아니라. 국가를 지키기 위한 건데 당연히 해야 죠 . 무언가를 하겠냐, 말겠냐, 그걸 떠나서 의무인거죠. 국가가 없으면 우리가 또 어떻 게 사나요.” 과연 그 올곧은 정신은 우리 기록단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 다웠고, 나라를 위한 마음을 여전히 갖고 계시다는 사실에 감동받았다. 오늘날 애국과 같은 가치의 중요성이 옅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지금껏 존속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어르신들의 신념 덕분이리라. 그 마음을 미래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독립운동가 마을 을 조성한다고 말씀드리니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하고 있어요. 우리 손주한테. ‘그런 긍지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 라, 우리 손주.’ 그러죠.” 인터뷰를 빌어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 묻는 질문에 왕의항 선생님은 웃음을 띤 채로 이미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고 있노라 답변하셨다. 종종 찾아오는 손주 에게 독립운동의 역사가 적힌 책자들을 하나씩 건네주고 함께 읽곤 한다고. 그러다보 니 기특하게도 먼저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고 전하셨다. 마지막으로, 왕의항 선생님에게 미래 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렸다. “제가 대단한 자격이 있어 말씀드리겠습니까만, 지금 전쟁이 일어나면 이전보다 더할 겁니다. 엄청날 거예요. 우리나라가 온갖 침략을 받고 지배를 받아온 나라지만, 어떻든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서 지켜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는 비극이 없었으면 좋겠어 요 . 좌우 사상을 넘어, 일신의 욕심을 넘어, 나라를 생각해준다면 고맙겠습니다.” Part 04 기억하는 사람들 기 억하는 사람들